오늘 날씨 맑음
오랜만에 그와 하룻밤을 보냈다
일찌감치 누운 안 방과 거실,
그 사이에 놓인 선풍기만이 번갈아 고개를 대며 서로의 온도를 섞었다
그리하여 그 밤은 끝내 표준시
아침을 안 먹으니 우유라도 마시라며
그는 부지런히 자전거를 타고 가 우유 두 갑을 사들고 왔다
난 속이 좋지 않다며 마시지 않았다
우리는 텅 빈 고깃집에서 점심부터 삼겹살을 먹었다
대부분은 중요하지 않은 얘기들이었다
새로 생긴 성당의 구조나 갈려나간 교구,
교무금을 3분 1이나 때어 준 통이 큰 주임 신부님
자세했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된장을 기다리다 그만 배가 불러와
밥은 두 세 숟갈만 입에 덜다 말았다
왜 이렇게 못 먹냐고 그는 어째 익숙한 음에 기대더니
어릴 때 내가 이유식을 세 되씩이나 먹었다고
자다가도 배가 고파 울고
엄마가 지친 밤 본인이 직접 타 준 이유식을 혼자 들고서 잘 먹었다고
남은 밥알을 긁으며 늦은 감상을 들려주었다
늦은 만큼
길게 웃었다
이쯤 하면 하고 시계를 보았다
미안하다 고맙다 잘해봐라
갈 거라면 일찍 가라며 남은 밥알을 입에다 다 털어 넣곤
그는 마스크를 꺼내 젖은 입을 가렸다
네하고는 나도 마스크로 덜 삼킨 입을 가렸다
더 가는 팔로 굳이 내 짐 가방을 들고 선 그와 함께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철 개찰구로 내려갔다
문은 더디게 열렸다
그는 문에 코를 댈 듯 나아가 서있었다
그 쯤 내가 가방을 뺐어 들었다
카드는 미리 찍었는데 그의 입은 안즉 멈추질 않네
들썩이는 개찰구
멈칫하는 사람들
손을 들어 어여 가라고 손짓을 하여 나는 넘어왔다
충분했다고
이제 다시 가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그가 개찰구 앞에서 한 이야기가 뭐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주임신부님 얘기보단 더 민망한 얘기였던 거 같은데 참
W 레오
202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