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 맑은
아프다. 몸이. 입술이 부르트고 온몸이 몸살에 걸린 것 같다.
하고 싶다는 생각만큼 강력한 진통제도 치료제도 없다. 그나마 잠깐 웃고 또 숨을 쉰다. 언젠가 이 시간이 다 지나면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워도 지워도 또 지워야 해 시절을 통째 지워버린 사진들처럼 오랜 기간 애를 썼지만 다른 이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내 영화처럼 나는 늘 마지막이라는 문을 따는 열쇠가 없어 되돌아간다.
아주 고약한 미로 속에 갇힌 것처럼 나가고 싶어 고작 하나의 작은 단계일지라도 잘했다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 안겨서 자격 있는 긴 잠을 자보고 싶어 또 기억을 지우고 어둠을 더듬어 걸어간다.
운이 좋아 긴 통로를 걸으면 잠시동안 믿음에 취할 수 있다. 이렇게 긴 통로가 딱딱한 벽에 가닿을 리가 없어.
의미를 쌓고 결과를 모른 채 오래도록 애를 써야 하는 일이 점점 무서워진다. 시험처럼 짧고 쪼개진 문제들을 마주하고 쓱쓱 펜을 굴려 풀고 해가 지기 전에 결과를 받아 들고 돌아가 화를 내거나 웃거나... 붕 뜬 얼굴로 달려가고 따라가고 품고 쓰고 하는 내가 이젠 징그러울까 밤에 잠이 쉬이 들지 못한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한 명절 때 내 손을 잡고 몰래 얘기하셨다. 이제 해 볼 만큼 해 봤으니 그만하라고. 매일 같은 길이의 활주로를 달려 같은 하늘로 같은 날개를 띄우는 일 같은 것들, 같은 문장을 읽어주고 그 뜻을 외우게 하는 일들 그런 일들이 내 분수에 맞은 일이었던 걸까.
차라리 빠져나오지 못하더라도 저 깊은 숨이 나오는 동굴에 들어가고 싶어. 손을 펴보면 도무지 열쇠는 없는데.
흔들리는 배를 품는 가느다란 방파제. 계선주에 단단히 당겨지는 느낌.
수고했다는 말. 잘 왔다는 말. 도착이라는 느낌.
어딘가에는 내 이름을 단단히 적어 보고 싶다. 영영 안 지워질 것처럼. 내가 선택하고 애를 쓰고 끝을 냈다는 사실을 하나도 부정하지 않게.
건드리고 일으키는 글이 아닌 닫는 글을 써야지. 작더라도 더 클 것처럼 꾸미지 않고 유령처럼 흔들리지 않고 조약돌처럼 단단히 존재하는 글을 이젠 써야지.
10⁻¹³
202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