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바다 Dec 09. 2022

Stratford in Autumn

 those days gone by

워털루 waterloo


워털루는 나폴레옹에게 패배를 안겨준 독일의 도시이고, 내가 즐겨 마시는 무가당 탄산수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온타리오에는 그 워털루의 정신을 살린 똑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다. 나와 남편이 이 도시를 선택했던 것은 워털루 대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공대답게 교정은 남편을 포함한 아시아계 남자 유학생들로 가득했다. 빌 케이츠는 여전히 이 학교 졸업생들을 총애하는지.... 어느 해 빌 게이츠가 가장 총애하는 직원들이 워털루 대학 출신이라는 기사가 나서 학교가 뜨거웠던 적이 있다. 이 시절 남편은 이 학교를 다니면서 예언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신기해 하곤 했다. 어린 시절 워워워워 워털루~~~ 노래를 부르고 다니면서도 가까이 가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그 학교 도서관에서 자기가 헉헉대며 공부를 하고 있더라고. 앞으로도 원하는 것이 있으면 늘 노래를 부르겠노라고....  


워털루 옆 스트라트포드. stratford by waterloo


세익스피어가 태어난 영국의 도시가 스트라트포드인데, 캐나다 온타리오에도 세익스피어를 기리는 똑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다. 그것도 독일색 짙은 워털루 옆에. 이 도시에선 해마다 세익스피어 축제가 개최되는데 축제철에만 인파를 느낄 수 있을 뿐 그저 조용하고 차분한 남부 온타리오의 교외 도시다. 여기서 한 시간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파리에 진입한다. 남부 온타리오는 유럽의 위성도시를 표방하듯 워털루, 캠브리지, 파리, 스트라트포드, 벌링턴 하며 영국, 독일, 프랑스의 도시 이름들이 마구 뒤섞여 산재한다. 유럽이 지각변동을 일으켜 지리적 위치가 마구 뒤섞인것 같은 인상이지만, 정작 유럽처럼 시간이 농축되어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없다. 어떻게 해도 솔직한 자연미 넘치는 신대륙이다. 인간의 손때와 문화가 녹아든 장구한 역사란 아직 없었기에.  

독일 마을 워털루에 살던 우리는 옆동네 영국 마을 스트라트포드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아빠는 공부하느라 숨이 가빴고, 엄마는 도닦듯 독박육아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네 살 된 아기는 유치원을 다녔고 두 살 된 동생은 그런 형아를 무척이나 부러워 했다. 애교로 무장한 두 살짜리는 진종일 생글거리며 깡총깡총 뛰었다. 하지만 부드럽고 착하기만 한 아빠도 두 살짜리를 보면서 가끔 짜증을 내 엄마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저 녀석은 작년이나 올해나 하는 짓이 똑같다는 이유는 어이가 없었다.

"아기니까....당연하지...."

그러나 아빠의 항변은, 큰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고...늘 변화 발전중이라며  장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내내는 아빠가 엄마 눈에는 좀 이상해 보였다.

"애기들이 빨리 자라 좋을 것이 무언가... 크고 나면 재미없어지는 걸...."


다소곳한 아빠와 다소 도전적인 눈빛의 네 살 짜리. 아이의 도전성은 이때부터 드러났다. "오늘 학교서 뭐 했니 엄마 좀 가르쳐 줘." 라고 물으면 번번히 "아무것도 안했지" 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엄마바라기였던 아이는 지금은 엄마와는 잘 맞지 않는 난해한 성격의 청년으로 성장했다. 바위를 뚫고 직진하는 추진력과 똘끼를 갖춘 로켓 사이언티스트가 되었다. 미국과 한국을 하루 생활권으로 만들어 줄 비밀 프로잭트를 진행중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나 성장한 지금이나 여전히 엄마의 지론은 험한 세상 빨리 자라 좋을 것이 무엇이냐. 괴랄한 세상에 빨리 나가 좋을 것이 없고, 인생은 즐기라고 있는 것이라고…늘 아이를 제지시키지만, 부모가 뭐라든 자녀들은 각자의 속도대로 각자의 특성과 재능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부모들은 조금 안심을 하셔도 좋지 않을까.

https://www.npr.org/2022/12/08/1141578966/boeing-747-last-jet?utm_medium=social&utm_campaign=npr&utm_term=nprnews&utm_source=facebook.com&fbclid=IwAR2-2PfWjtU828BZUXpet_EO1glU39kpgQFfM_bDxqadmlY_6GsmGTHVZ3s

작년이나 올해나 똑같은 모양이라고 아빠가 혼내던 아기는, 여전히 오래 오래 엄마 곁에 머물기를 원하며 광속으로 추진중인 형아와는 다르게 천천히 자기 속도로 예쁘게 살아가고 있다.  


카누의 곡선과 색상이 가을과 참 잘 어울렸던 호수 정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들은 젊은 부부나 연인이었을듯 하지만, 그들의 차분함과 고요하던 연못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왠지 연륜있는 커플같은 느낌이었다. 나도 이런 나무 카누를 한 채 갖고 싶었다. 이로부터 몇 년쯤 지난 뒤에서야, 실용적인 이유로 가볍고 접을 수 있는 빨갛고 예쁜 inflatable cayak 을 두 채 장만했다. 나의 예쁜 카약 두채는 미국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힘들게 박사 논문을  끝낸 것을 축하하시는 아버님의 금일봉에서 마련했다. 건강이 여의치 않은 상태라  열 대여섯시간의 비행을 감행하며 학위 수여식에  참석 못하신 걸 미안해 하시며 아버님은 금일봉을 보내셨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데, 곁에서 돌봐드리지도 못하고 여전히 멀리 사는 마음은 죄송스럽기만 하다.




홍콩에서 온 천재 소년 스탠리와 공산당 간부의 아들이나 반체재적 인물이었던 토니. 토니는 너무도 진중한 사람이었는데 아버지가 당간부임이도 불구하고 캐나다로 와버린 그의 페북엔 천안문에 대한 이야기가 게시되곤 했다. 자유주의 인사 토니는 지금은 두 딸을 거느리 가장이 되어 성실한 캐나다의 tax payer로 살아가고 있다. 천재 소년 스탠리는 졸업 후 홍콩으로 돌아갔으나, 지금은 향방을 알 수가 없다. 짐작컨데 캐나다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록과 열람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