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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봄여기 Jun 12. 2022

After Yang…. After Being.

존재 이후의 존재적 의미에 대하여.

요 며칠 죽음에 관련된 소식들이 안팎에서 들려왔다. 대구에선 보복성 방화로 인해 7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가까운 지인과 안부를 묻는 전화에서는 부모의 짙어지는 병색에 대한 걱정과 친척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이틀 전 가까운 친구의 동생이 자살시도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동생이 다시 깨어나 자살시도를 할까 봐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친구 때문에 주말 내내 우울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우울이 짓누르는 나의 일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춰지지 않았다. 고양이를 돌보고, 감자조림을 만들고,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지만 하지 않으면  되는 일들이란 언제나 있었다.  주일째 바닥을 청소하지 않아 고양이 모래로 어석어석한 거실의 바닥을 닦으면서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미열 때문에 식은땀이 흐르는데도 나로 하여금  바닥을 닦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하고. 이런 사소한 것조차 하기 싫어서 삶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끝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그런  믿어? 끝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
애벌레한테는 그렇겠.”
다른 것들에게도 그런 말이 적용된다고 생각해?”
 모르겠어요.  신념을 갖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지 않아서당신은 어때요?”
나는 믿고 싶어.”
가끔 생각해. 인간은 그런  믿도록 프로그램되어있지만그게 도움이 되나.. 하고.”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괜찮아요. 끝에 아무것도 없어도요.”
그래?”
아마 이것도 프로그래밍된 것인지도 모르죠.”
그것 때문에 슬펐던  있어?”
:
아무것도 없이 존재할 수는 없다.”
(양과 키라의 대화 중에서..)


양은 중국인 입양아 미카를 위해 제이크 부부가 가족으로 영입한 휴먼테크노이다. 동양인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양은 미카와 친남매처럼 지내지만 어느 날 알 수 없는 오류로 인해 기능을 멈추고 만다. 양을 친오빠처럼 믿고 자란 미카에게 양의 부재는 너무 컸고 제이크는 양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회생시키기 어렵다는 통보만 받는다. 양의 메모리칩을 연구자료로 관심 있어하는 박물관에서 양의 메모리칩을 전달받은 제이크는 양이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보고 저장해둔 알파, 델타, 감마의 기억들을 보게 된다. 제이크는 양의 눈으로 그의 가족들의 일상과 양이 사랑하고 좋아했던 빛과 나무, 자연의 색을 본다. 거슬러 거슬러 양이 만났던 다른 가족들의 연대기와 애정하고 아꼈던 에이다, 그리고 에이다 이전의 에이다(에이다의 고모할머니)를 알게 된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랑하고, 늙고, 죽어가는 인간의 삶을 몇십 년에 걸쳐 지켜보던 양이 “끝에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고 말한 건 어쩌면 자신에게는 없는 인간의 유한성이 결국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든다는 상징으로 읽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 세상 모든 존재 중 시작과 끝이 없는 존재는 없다. 태어나면 자라고, 자라면 늙고, 늙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듯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시간과 함께 태어나고 죽는다. 흔적은 사라져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에이다 이전의 고모할머니가 있었듯이, 빛이 있으면 어둠이 오듯이 우리는 조금 다른 모습과 이름으로 이 세상이 내어주는 한 공간을 빌려 쓰다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내어주고 ‘無’로 돌아가 다른 존재의 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삶을 시작과 끝의 환원의 연결고리로 생각해보면 이 시간을 견디는 태도를 조금 공손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무기력과 우울이 압도된 어떤 때는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고양이들도 나 몰라라 하고 며칠을 누워만 있으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어쩔 수 없이 침대 밖으로 걸어 나와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료가 떨어져서 고양이들이 서럽게 울 때, 모래를 제때 치워주지 않아서 밖에다 녀석들이 실수를 하기 시작하면,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도 사료를 부어주고, 물통을 닦아주고, 화장실을 치워준다. 쓰레기를 모아서 밖에 내 다 버리고, 어석해진 바닥을 다시 쓸고 닦다 보면 어느새 일상이 시작된다. 나에게는 고양이가 그런 존재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식 혹은 부모, 형제가 이런 일상들을 지속하게 해주는 존재일 것이다.


<애프터 양>은 이런 작은 일상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차를 끓이고, 설거지를 하고 행주로 싱크대를 닦는 제이크, 미카를 챙기고 자기 일을 하러 나가는 키라, 건조대에 널려있는 빨래, 소파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옷가지, 카메라 앵글이 보여주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양’이 없는 제이크 가족의 일상이 그려진다. 양이 없는 이후의 삶은 그런 일상들의 연속일 것이다. 의미가 있든 없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과 의미 있는 일들과 재미있는 일들 사이에서 다양한 일상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지속되는 것이 인간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아무것도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일상은 우리가 살아왔다는 흔적이고 일상이라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존재한다. 그러니 별 대단한 것도 없고 가끔은 너무 지리멸렬해서 혹은 때론 너무 고통스러워서 일상을 멈추고 싶은 때도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양이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묻는 제이크의 질문에 에이다가 비웃으면서 한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냥… 정말 인간다운 질문이잖아요? 다른 존재들이 꼭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는 생각, 인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죽음이라는 허공에서 허우적 되지 않으려면 인간의 삶이 뭐 그리 대수라고 코웃음 치면서 별 대단할 것도 없는 존재들이 아웅다웅하면서 사는 일상의 연속일 뿐이라고 비웃으며 웃어넘길 필요가 있다.


#애프터양 #코고나다감독 #In the world of my br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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