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포터 <사라진 것들>
앤드류포터의 전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2011)>을 대학원 다닐 때 처음 읽고 그의 열렬한 팬이 된 지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줌파라히리와 함께 소설가라면 대단하고 역사적인 이야기, 숨 막히는 서스펜스와 스펙터클한 반전의 미학이 넘치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관념을 깨게 해 준 작가 중 하나였다. 줌파라히리, 앤드류포터, 레이먼드카버, 마일리멜로이, 존윌리엄스 나의 삼십 대를 꽉 차게 해 주었던 작가들... 이제 그들이 나이 들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들, 사라지는 시간, 사라지는 젊음, 사라져 가는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응집된 열정, 열린 희망, 끊임없는 변화와 시도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던 시간에서 안정과 상실의 세계로, 인정과 비움의 시간으로 이끄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약간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직도 열정과 희망이 열린 시간에 머물고 싶어 하는 욕망과 서서히 사라져 가는 체력과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마흔네 번째 생일이 이주 전에 지났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p.127, 라인벡)
서른네 살의 나는 마흔네 살의 내 삶이 이토록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지극히 불안했고 닿지 못하는 인연에 연연했으며, 잘 쓰지 못하는 글에 매달리며 가난했지만 여유롭게 살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했지만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그 여유로운 삶이 좋았고, 안정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가끔 나를 내쫓을 일 없는 인심 후한 집주인의 연희동 전셋집에서 하루 중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만 잠깐 창가로 비치는 은은한 빛 속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고양이들과 늘어지게 오후를 즐기는 그 시간들이 종종 꿈에 나타나곤 하는데 그러면 낯선 이의 꿈속에 있는 것처럼 일어나서도 서늘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나인데 나인 것 같지 않은 기분, 무언가 큰걸 잃은 듯한 기분, 근데 결코 되돌릴 수 없고 가질 수도 없는 막연한 상실감은 더더욱 내가 예측하지 못한 현실.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 펼쳐놓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p.92, 첼로)
그러니까 나는 안 늙을 줄 알았다. 삼십 대에도 이십 대 같다는 이야길 들었고 사십에 들어서는 삼십 대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이에 걸맞은 특정 나이대가 가져야 하는 역할과 태도에 대해서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나'인 채로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마음가짐과 별개로 불현듯 일상에서 갑작스러운 당혹감을 동반한 채로 일상을 압도한다. 십 년 넘게 다녔던 수영장에서 앞줄에 섰던 내가 서서히 중간에서 뒤로 밀려갈 때, 휴대폰 화면의 글자들이 뿌옇게 흐려질 때, 눈을 깜빡일 때마다 검은 점들이 시야를 방해할 때, 평생 걸린 적 없던 장염에 걸려 3일을 앓아누울 때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과 같은 체력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다다를 때 과거의 막연하게 그립고 여유로웠던 젊은 나를 추억하던 감상은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힘을 잃는다.
그해 봄에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은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p.267, 히메나)
나이가 든다는 건 두 가지를 견디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점점 빗겨나가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인식과 언제든 나의 육체가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나를 허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 그러므로 나는 사실 잘 견디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이 상황을,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상실과 소외에 더더욱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읽을 때만 해도 나에겐 상실과 소외와는 결이 다른 불완전하지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잠시 스며들었다 사라지는 오후 한낮의 햇살 같은 감상이었어도 좋았는데 지금은 잃어서는 안 되는 사업체도 있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도 있고, 늙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봐야 하는 슬픔도 있다.
나는 소설을 한 달여간에 걸쳐 천천히 읽었다. 누군가의 일기를 몰래 읽는 기분으로, 제삼자의 심정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불현듯 습격하는 일상의 상실감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노력으로 조금씩 조금씩 꺼내 읽었다. 쉰네 살이 되어 이 글을 들여다본다면 비웃을 미래의 더 늙은 나를 생각하며, 지금 쉰네 살에도 열심히 달리기와 글쓰기에 매진하며 나이 들어감을 찬찬히 받아들이는 지인을 생각하며,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마흔네 살이 되어서도 모르지만 이 또한 견뎌질 것이라고 자문하면서 앤드류 포터는 텍사스 어딘가에서 노년의 삶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위안하면서 "밤중에 자다가 깨어 뒷마당을, 세탁실을, 차고를 확인하는 일, 이상한 소음의 정체를 알아보는 일, 창문을 단속하고 잠금장치를 더 단단히 채우는 이런 일" 들이 "우리가 들어온 새로운 세상, 우리가 꾸기 시작한 새로운 꿈의 일부가"(p.24, 오스틴) 된 것을 인정하면서 때때로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다른 삶에도 주눅 들지 않고 지금 이곳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사라져 가는 것들, 사라진 것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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