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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봄여기 Sep 22. 2024

조카들과의 대화(1)

주니어김영사<정의란 무엇인가>를 조카들과 같이 읽고.

평생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던 나와는 달리 동생은 아이 셋을 낳았다.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땐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서울에서 분당까지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매주 왔다갔다하며 조카를 돌봤다. 첫 조카가 막 배밀이를 할 즈음이었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향해 첫 조카가 주먹을 쥔 양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현관쪽으로 배밀이를 하면서 기어오던 모습을 본 순간부터 나는 이 작고 여린 존재에게 평생 무한한 사랑을 줄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였나 동생이 일년 차이를 두고 둘째를 임신했다고 했을 때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나의 모든 시간과 애정을 첫 조카가 아닌 태어날 조카에게도 나눠줘야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다. 첫 조카가 엄마를 둘째에게 빼앗긴 기분이 들면 어쩌나, 이제 막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한 첫 조카가 새로 태어난 아기 때문에 소외감이 들면 어쩌지, 아직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하는 시기에 동생이 생겨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아 성격이 삐뚤어지면 어쩌나 그래서 나라도 더 많은 사랑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차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첫째 조카와의 첫만남과 애정이 너무 강렬해서 사실 둘째조카에게는 그만큼의 시간과 애정을 쏟지 못했다.


그래서 둘째조카가 초등학교 입학무렵 학교에서 적응을 잘 하지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마음이 아팠다. 이모는 언니만 좋아하고 언니만 찾는다는 말을 들었을때도 조금 미안했다. 그러다 2학년이 되었을 땐 학교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몇 번의 전화를 받고, 3학년 때는 다니던 수학학원에서 더이상 가르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했다. 4학년인 지금 세번째로 간 학원에서도 곧 짤릴 예정이라고 한다. 성적이 안나오고 학습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동생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정말 심각하게 느꼈던 부분은 학습을 대하는 둘째조카의 태도였다. 짜증이 많고, 정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고, 본인이 재미있고 흥미를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는 집중하지만 그렇지 않은 과목에서는 대체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안좋은 태도를 보여 선생님들을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한것도 문제였지만 그 나이에 가져야 될 기본적인 상식과 지식도 제 언니에 비해 너무 부족해서 나도 몇 번 지적했던 적이 있던지라 이번에는 책임감이 생겼다. 이번 추석연휴 며칠 만이라도 학습 태도를 길러줘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서점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사가지고 가서 연휴기간 내내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수학숙제와 독서를 시켰는데 첫날과 이틀날은 하기 싫다는 둘째조카와 치열하게 싸웠다. 억지로 앉아서 문제를 풀고 책을 읽는 언니, 동생과는 달리 온갖 이유를 대면서 시간만 끌고 어느것도 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둘째를 아빠도 엄마도 어르고 달래면서 때때로 훈육과 체벌로 지금까지 겨우겨우 끌고 온듯했다. 책상에 앉으면 책이 안 읽힌다, 동생이 소리내서 읽는 소리가 거슬려 한 책상에 앉기 싫다, 누워서 읽어야 집중이 잘된다, 어디서 읽든 무슨상관이냐 누워서 무조건 읽고 싶다고 울면서 떼를 쓰는 둘째조카를 억지로 책상에 앉혀 읽게 한 책은 주니어김영사의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총 8개의 챕터로 이뤄진 어린이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첫 이야기는 ‘균형있는 분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로 나도 읽고서 균형과 배려 그리고 공평한 분배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는데 읽는 순간 조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 궁금해서 같이 토론해보려고 산 책이었다. 집안 형편이 여유로운 태원과 강성,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 경제적으로 좀 어려운 광수, 이 셋은 절친한 친구사이로 방과 후 야구 시합을 즐겨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유명한 야구 선수가 오는 야구시합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에 태원과 강성이는 고민에 빠진다. 시합티켓비용과 놀러가서 먹고 마실 간식비까지 해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광수가 부담하기는 너무 큰 금액이라 이 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의논하기 시작한다. 태원이는 강성이에게 티켓비용과 간식비까지 다 합쳐서 필요한 금액을 광수 몰래 반반씩 부담하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강성이는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을 아무런 이유없이 매번 이렇게 나눠주는 것은 좀 불공평한 일이라고 반대한다. 고민하던 태원이는 광수를 빼고 우리 둘이 가는 것은 어떻냐고 묻자 강성이는 그러고도 마음이 편할자신있냐고 태원에게 되묻는다. 당연히 그러지 못할 것 같다고 태원이 고백하자 강성이는 광수에게 티켓값을 적게 말하고 모자르는 부분을 차라리 광수 몰래 부담하자고 제안한다. 태원이는 그러다 광수가 그 사실을 알고 자존심 상해하면 어쩌냐고 걱정한다. 날이 저물도록 태원이와 강성이는 어떻게하면 광수와 함께 야구시합을 가면 좋을지 의논하는 걸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나는 조카들에게 두 가지에 대해서 질문했다.


나 :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강성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첫째 조카 : 나는 강성이가 느끼는 불공평하다는 기분이 어떤건지 이해가 될 것 같아. 아무리 친구가 가난해도 우리가 가진 것을 매번 이유도 없이 나눠줄 수 없지는 않아?
둘째 조카 : 나는 친한 친구에게 무언가를 나눠주고 하는 것이 ‘공평’과 ‘불공평’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나눠주고 싶으면 나눠주는 거고, 아니면 마는거지.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해.


둘째 조카가 첫째조카처럼 어떤 질문에 대해서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나는 약간의 희망 같은 발견할 수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짜증과 비상식적인 학습태도 속에 숨겨진 아이의 착하고 순수하게 반짝이는 반듯함을 찾을 수 있어서, 우리 조카가 마음까지 망가진 것은 아니어서 안도가 되었다.


나 : 만약 너희가 이런 상황이라면 친구를 위해 어떻게 할거야? 이모는 광수 빼고 둘이 그냥 갔다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 방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첫째조카 : 광수를 빼고 가는 건 좀 아닌거 같은데… 나라면 광수에게 돈이 얼마가 있냐 물어본 다음 그 외 필요한 돈을 다른 친구들과 모아서 같이 갈 거 같아. 어떻게 되었든 광수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광수도 사실대로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
둘째조카 : 그건 나도 아닌 것 같아. 차라리 다 같이 가는 거 아니면 다 같이 안가든지 하는게 맞지. 누구 한 명을 빼고가는 건 좀 치사한 것 같아. 티켓값을 다같이 마련한 다음…음료수랑 먹을 거는 도시락을 싸거나 하면 간식비를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다같이 안 가는 옵션은 나도 생각해보지 않은 옵션인데 둘째조카는 다같이 가든지 아니면 안가야 한다고 말해서 사실 좀 놀랐다. 나와 첫째조카는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는 성격이라 다같이 포기하는 옵션은 사실 생각도 못했는데 둘째조카는 친구 한 명이 못 가는 상황이라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말해서 나를 좀 놀라게 했다. 짜증내고 비상식적으로 행동할 때는 그렇게 이기적으로 보였는데 사실 제일 마음 여리고 양보도 잘하고 좋은 것 있으면 가족과 먼저 나누는 아이의 근본은 이타적인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러고도 아이는 몇 번을 짜증내고 또 나를 화나게 하고 연휴기간 내내 둘째 조카랑 티격태격 하다가도 한 달동안 지속된 기침 때문에 콜록거리고 있으면 둘째 조카가 제일 먼저 묻는다.

“이모 괜찮아?”

“응 괜찮아.” 하고 안아주면 아이도 풀리고 나는 아이의 따듯한 마음에 감동해 잠시 기침이 멎고…연휴기간 내내 나의 기침 때문에 온 가족이 잠을 설치고, 일상생활도 불편했는데 그럴때마다 괜찮냐고 물었던 건 둘째 조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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