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회의를 느껴 그만두겠다는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런 희망 없이 일을 시작한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목표 하나 없이 흘러가는 시간대로 지냈던 내가 지금은 업이 되어 매번 새로운 의미를 되새기는 기분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치과'에서 'ㅊ'자 조차도 몰랐던 시절을 지나, '치과'를 알게 되니 '사람'이 보였고, '사람'을 따라 가보니 그들이 사는 세상이 보였다. 방문하는 사람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각각의 치아와 치아 사이에도 존재하는 처연한 사정에 금방 감정이 이입되어 불러본 적 없어도 그들은 내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려운 난이도의 매복된 사랑니 발치를 예약하고 온 환자였다. 비슷한 종류의 발치 수술을 앞두고 있는 다른 환자들보다 유난히 질문이 상세했고, 걱정되는 표정이 대기하는 내내 사그라지지를 않았다. 치과에 내원하는 모든 환자의 상담을 도맡아 하는 것이 주 업무인 나였기에, 그의 태도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의 질문은 'Yes, or No'로 선택할 수 없는 주관식 서술형 문제와 같아 오늘 발치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 가지고도 30분가량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있다. 가령, 사랑니 발치를 앞둔 환자들의 질문 대부분이 "아파요?", 이거나 "마취해요?" 혹은 "피가 나와요?" 정도로 간단명료하게 답하고 끝날 수 있는 질문들이라면, 그는 "오늘 발치를 하고 나면 어떤 종류의 일상생활을 동반할 수 있을 정도의 통증을 느끼게 될까요?", "제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그 시험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이 통증이 시험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감당하기가 힘들까요?"와 같은 매우 주관적인 것들이었다. 그가 쏟아내는 질문을 듣고 있다 보니 오늘 이 진료는 더 이어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불안한 표정으로 가득 둘러싸인 그를 그냥 집에 돌려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그리고 동시에 물음표 가득한 그의 질문이 나의 궁금함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ㅇㅇㅇ님, 혹시 실수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시는 편이세요?"라고 대답을 대신했다. 잠깐 멈칫하며 말을 멈추던 그는 결국, 눈물을 왈칵 보였고 "네. 저 실수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데, 사실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도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이러고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시험 전날에 이 치아가 저를 아프게 해서 준비한 것들이 통증에 가려질까 겁나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며 말을 이었다. 순간,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금세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곪고 있던 속내가 터뜨려진 것 마냥 누런 고름을 뿜으며 애써 눈물을 삼키려는 것을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안타까웠다.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았고, 모든 날이 불안하기만 하였던 나의 과거가 그를 덮었다. 어떻게든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지금의 당신은 '실수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동안 경험해왔던 여러 환자의 다양한 통증의 양상과 행동 변화를 곁들여 발치 직후부터 열흘 정도를 어떤 컨디션으로 지내야 하는지를 설명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자세하게 발치의 과정을 이해시켰고, 준비하고 있는 시험의 중요도를 위해 발치는 시간 여유가 될 때로 미루자는 설득으로 마무리했다. 본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많은 요소 중, 다른 건 몰라도 치아에 대한 걱정만큼은 나에게 버리고 가면 내가 잘 처리해 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아프면 응급처치 정도는 언제든지 해주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후에, 그에게서 시험을 잘 마무리하였다며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담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나는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현장에서 일을 하거나, 누군가의 마음을 치료해주는 직업은 아니다. 그렇다 해서 그 날일을 계기로 나의 직업을 더 사랑하게 되고 자부심을 느낄 정도의 보람을 느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보람을 느끼는 것은 내가 목표로 삼았던 것들이 목표지점에 도착했을 때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공부하며 경험해왔던 것들이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게 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또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건 아닐까. 꼭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 멈췄던 심박동기를 다시 작동하게 해 주거나, 절단된 손가락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야만 나의 직업이 존엄성을 갖추게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종종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자로 재현해 보려고 한다. 나의 어린날의 시절처럼 힘겨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공유함으로써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주된 목적이긴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진 않는다. 생각을 옮기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환상과 다른 직업의 처우로 회의감이 들어 방황하는 시절 속의 당신이라면 적어도 당신은 더 빨리 꽃길을 걷게 될 거라는 점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1일 8시간,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근무한다 했을 때 1만 시간이 되려면 우리는 최소 250주, 그러니까 5년 하고도 3개월을 꽉 채워야 겨우 채워지는 시간인 것이다. 나보다 윗길에서 걸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과거 10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우리 직업의 처우는 늘 그대로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품고 있는 세상 또한 그대로인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방황하며 흙 길을 걸었던 후배들이 시간이 흘러 선배가 되었을 때는 지금의 그 기억을 꼭 되살려 언제 어느 시점에서 자부심을 갖게 되었는지를 지쳐있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기를 바란다. 한, 두 사람 정도로는 인식이 개선되기 어렵겠지만 여러 사람의 목소리는 분명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날을 위해 새로운 돌파구가 보이지 않다 할지라도 조금 더 버티어 주길 바라는 바이다.
더불어 아직 시작 선상에 있는 후배들에게는 꼭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출발지점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니 조금 더 버텨보라고". "버티고 있는 이 시간이 결코 쓸모없지 않을 것이라고." 또, 그와 더불어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나태해진 나의 윗길의 선배들에게는 저 멀리서 버티고 있는 후배들을 꼭 생각해 달라고 하고 싶다. 같은 일의 반복이라는 변명으로 지루해 마시고, 당신들이 겪은 길들 위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꼭 열매를 맛보게 해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