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or me to you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라이조던 Aug 29. 2018

편지를 많이 받고 싶어요

우리집 우편함에 관심이 없어진지 오래다. 뚜껑을 연다해도 카드 명세서나 관리비 고지서가 들어있을게 뻔하다. 생각해보면 오래전 우편함은 호기심 상자였다. 집으로 뛰어오르면서 항상 습관처럼 우편함 뚜껑을 들췄다. 무엇이라도 들어있으면 기다리던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한뭉큼 꺼내 든 우편물에서 엄마, 아빠, 동생의 이름을 스치며 내 이름을 찾기 바빴다.


고등학교 때는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우편함에 넣고 간 친구도 있었다. 우표 없는 편지도 오던 시절이었다. 여름방학 때는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있는데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엽서가 왔다. 일주일에 두통씩 꾸준하게 오는 게 아닌가. 마치 키다리 아저씨 같던 그 주인공은 우리 이모였다. 그땐 엽서를 기다리던 힘으로 무료하고 갑갑한 여름을 견디었다.


새해가 되면 빳빳하고 두꺼운 연하장이 도착하기도 했다. 좋아하던 사람이 군대에서 보낸 편지가 도착한 날은 그 편지를 가방 깊이 꽁꽁 숨겼다. 길에서 읽으면 그 글자들이 날아가 버릴까봐 집에 도착해 내 방 책상에서 한글자 한글자 귀하게 정독하던 기억도난다. 미국으로 떠난 친구가 제발 빨리 이 편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거금 몇만 원을 들여 급행으로 보낸 편지도 기억난다. 그들의 편지를 차곡차곡 운동화 박스에 모으곤했다.


내가 '제인 오스틴'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녀의 책 앞장마다 편지를 써 준 사람도 있었다. 가끔은 수련회나 연수에서 내가 미래의 나에게 쓴 편지를 받는 날도 있었다. 훗날 누군가가 내게 받은 편지 내용을 이야기해주면 "내가 그랬다고?" 하면서 편지 속의 내 모습과 생각에 부끄럽고 놀라기도 했다. 편지에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고 사랑과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감정을 쓰고 나누며 성장했구나 싶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오래전부터 편지를 좋아했다. 편지를 받으면 행복해했고 쓰는 것 또한 좋아했다. 편지를 쓰기 위해 교보문고나 MAKI에 가서 편지지나 봉투를 고르는 일 또한 즐거웠다. 사각사각 연필로 쓰고, 쓱쓱 펜으로 쓰고, 촉촉하게 묻어나는 만년필로 썼다. 다 쓴 편지를 봉투에 넣고 풀칠을 하고, 아껴둔 스티커를 붙이고 쪽~ 하고 뽀뽀하며 우체통에 넣기도 했다. 손으로 마음을 쓰고 보낸다는 행위 자체가 낭만적이었다. 받는 것은 또 어떠한가 편지를 받아드는 순간도 꽉 찬 느낌이지만, 봉투를 열 때의 묘한 설렘만 한 것도 없으리라.


요즘에도 편지나 카드를 쓰려고 노력하지만 예전만큼 쉽지 않다. 카톡카톡으로 실시간 안부를 묻고, 1~2분 조차 길게 느껴지는 답을 받는다. 글이 귀찮을 땐 이모티콘 하나 딱 찍으면 그만인 시대. 난 그런 시대에서 늘 가방에 만년필을 넣고 다닌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일을 맞이하면 그 사람에게 카드를 쓰려고 애써본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엔 비행기에 앉아 보고싶은 사람에게 여행지에서 산 엽서를 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가족들에게 카드를 쓰고, 만나거나 헤어질 때 한 문장이라도 주고 싶은 사람들에겐 쪽지라도 써서 몰래 책상에 붙이곤한다.

어떤 날 책을 보는데 '편지'와 관련된 문장이 나를 찾아와 마음을 울렸다. 잊지 않으려고 바로 만년필을 꺼내 줄을 그었다. 집에 돌아와 말끔하게 씻고 잡지를 열었다. 그날 책에서 만난 똑같은 문장이 나왔다. 이 문장은 나를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다.' 편지를 좋아하는 나를 찾아온 편지이며, 내 편지 사랑에 대한 응원이기도 하다. 그래, 편지를 쓸 일도 받을 일도 없다면 지금 곁에 사랑도 없겠지! 가능하다면 오래오래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대신 나 역시 가능한 오래오래 편지를 쓸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므로.


p.s 편지들

친구가 준 편지는 항상 우리집 냉장고에
엄마에게 쓴 편지, 스티커 붙이고 뽀뽀 쪽
아빠가 그려준 하트 (많이 안그려 보셔서 지우고 다시 그렸다는 ㅠㅠ)
'누가 나를 매일 생각해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듣고 긴 휴가 동안 매일 조금씩 써준 편지
내가 무한반복하던 노래 '편하다는건 뭘까'를 개사한 생일카드, 정말 세상에서 젤 웃긴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은 돌보지 않아도 남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