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라이조던 Dec 29. 2022

매일 전화하는 남편

나는 매일 전화하는 남편과 산다. 이 사실을 특별하거나 귀하게 생각해본 적은 정말 한 번도 없었는데. 같이 점심을 먹던 친구들이 전화하는 모습을 보고 한 마디씩 해 준 말들을 통해서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근데 정말 (결혼한)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남편과 전화를 끊는 내게 말했다. 


"남편이랑 매일 전화해? 너랑 있을 때 항상 전화가 왔던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남편에게 물어봤어. 우리는 출근 후엔 톡은 해도 전화는 안 하거든. 넌 출근하면 내 생각해? 하니깐 매일 한다고 하더라" 


"그래도 니 남편은 정말 항상 전화하는 것 같아 너에게. 그거 진짜 관심 아니야? 전화 잘 안 하잖아" 


막상 까보면 우리의 통화내용은 지극히 평범하다. 일정 체크, 일과 확인 정도다. 뭐 해? 하고 시작된 통화는 지온이는 어린이집 잘 갔어? (응 잘 갔어. 오늘 딸기 선생님이 오신다고 신나서 갔어) 병원에선 뭐래? (응 감기라고 일단은 항생제 없이 약 먹어보자고 하더라고. 심해지면 오래) 밥 먹었어? (응 회의가 늦게 끝나서 이제 뭐라도 좀 먹으려고 점심 먹는 거야?) 같은 지극히 평범한 대화가 오간다. 그래 수고해! 라며 서로 2-3분 될법한 짧은 통화를 마친다. 


헌데 생각해보니 남편은 정말 꼭꼭꼭 매일 매일 전화를 한다. 행여나 점심시간 통화를 못하면 틈이 날 때 꼭 전화벨을 울린다. 그러고 보니 정말 퇴근할 때도 그 시간대면 집에 오는거 아는데 항상 전화를 한다. 뭐 하시나? 하면서 지금 출발해서 가고 있어. 나 이제 퇴근했어.라고 말해주거나. 저녁 뭐 먹을까?라고 묻기도 한다. 


둘이 친구였던 시절, 연인이었던 시절 우리는 전화통만 잡았다 하면 몇 시간씩 통화를 했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는 집에 있는 무선전화기가 점점 뜨거워져 배터리가 나갈 때까지 통화를 했다. 한밤중에 전화를 하다 둘 중 하나의 전화기 배터리가 나가면 한 명은 배터리를 갈고, 다른 한 명은 다시 전화벨이 울리면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바로 받으려고 각 세우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늘 이렇게 말했다. "못한 이야기는 만나서해" 그렇게 밤하늘의 별만큼 할 말이 셀 수 없이 많던 시절이었다. 


결혼을 하니 그만큼 전화통을 붙잡고 있을 일이 없었다. 뭐 같이 사니깐 매일 보니깐. 전화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더 익숙하고 쉬운 게 부부사이 같다. 어차피 집에서 볼 거고, 만나서 이야기하면 된다. 심지어 같이 있는 시간 동안 필요한 이야기를 다~~ 한다 해도 시간이 남는 게 부부의 시간이다. 이전같이 할 말은 산더미처럼 많고 시간은 없는 그런 상황은 연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편은 꼭 전화를 한다. 오히려 특별히 확인할 일이나, 물을 일이 없으면 전화를 하지 않는 건 내쪽이다.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나에게 전화해주는 거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전화가 오지 않으면 갑자기 무척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용건이 있거나, 지금 당장 확인할 게 있어서 전화를 하는 게 아닌 게 분명하다. 그럼 뭐지. 사... 사랑인가...! ㅋㅋㅋ


오늘 남편이 퇴근하면 물어봐야겠다. 하루에 한 번씩 나에게 꼭 전화하는 이유. 아 퇴근하면 말고 나도 지금 전화를 해봐야겠다. 잊지 말자 '나는 매일 점심시간 전화하는 남편과 산다.' 이건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문자통엔 광고 문자가 가득하고, 업무 카톡 시종일관 울리는 내 전화기에서 링딩동링딩동 사적인 벨을 울려주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는 것 잊지말자! 


개로 저장해놔서 미안;;;;


작가의 이전글 하리보와 함께 살게 된 사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