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라이조던 Feb 17. 2023

아기를 낳고 바뀐 것들  

내 인생의 가장 큰 변화는 출산 후 찾아왔다. 취업도 결혼도 이사도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출산은 그동안 살던 삶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렸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말하지만 아기를 낳은 뒤 삶은 마음먹어도 쉽지 않을 때도 많다. 출산 후 마음들을 한번 쓰고 싶었다. 매우 사소하고 나만 그럴 수 있는 이야기지만 써본다. 언젠가 이 마음과 생활도 잊지 않기 위하여.



다시 돌아간다면 낳을 거야? YES라 말하게 된다.

아기를 낳고 나서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아기 낳으니깐 좋아? 그다음으로 많이 받은 질문이 '다시 돌아간다면 그래도 아기 낳을 거야?' 하는 것이다. 일단 답을 하라면 아기 낳으면 좋고 다시 돌아간다면 그래도 낳을 거야 가 내 답이긴 하다. 하지만 난 아기를 낳고 알았다. 출산 후 아니라고 답할 수 있는 엄마는 아마 없을 거란걸. 응애 하며 세상에 태어난 작은 아기를 안아본 사람이라면, 꿈틀 거리는 아이의 작은 발을 만져 본 사람이라면, 그 아기의 옹알이를 듣고,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워본 사람이라면 다시 돌아가면 아기 안 낳는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이미 만난 사람을, 그것도 자식을 어찌 안 보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건 진짜 불가능한 거다. 육아가 너무 힘들고 눈물을 훔칠 수 있어도 내 옆에 있는 우리 아기얼굴을 본 뒤에는 NO라는 대답은 절대 못한다. 낳기 전에는 가능하지만 낳은 후에는 할 수 없다. 적어도 난 그랬다.


돈도, 과일도, 맛있는 음식도 아끼게 된다.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상위 5% 정도에 해당되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나를 너무 사랑해서.  진짜 너밖에 모른다는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 나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에  쓰는 것도 아까워해본  없던 사람이 나였다. 그런 내가 돈도, 과일도, 고기도 아끼게 되었다. 이게 진짜 묘했다.  딸도 샤인머스캣, 딸기, 망고 듬뿍 먹이고 나도 듬뿍 먹을  있을  알았는데...  딸에게 듬뿍 썰어 먹이고  남은 과일을 먹거나  먹는 삶을 살게 되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러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눈치주지 않았다. 근데 스스로 그러고 있다. 비싼 음식 좋은 음식도 아기에게 주려고 아끼게 된다. 요즘은 의식적으로 나도  먹자, 아끼지 말고 먹자라며 주문을 걸고 있다니 나에 대한 사랑의 본질은 남아있겠...?


진짜 아기옷(만) 보게 된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했던 영향도 분명 있을 거다. 나에겐 출근을 위한 외출복이 필요하지 않으니깐. 아이를 낳고 한 1년간 내 옷은 한벌도 사지 않았다. 그때는 옷에 대한 욕망이 생기는 몸도 아니었거니와 외출도 못하던 시절이라 정말 옷에 있어선 금욕주의자로 살았다. 근데 아이는 달랐다. 클수록 머리도 자라고, 다리도 길어지고 입히면 태가 났다. 피부는 어찌나 좋은지. 진짜 말 그대로 아기피부라 예쁜 옷을 입히면 또 잘 어울렸다. 진짜 인형놀이 하는 기분으로 옷을 고르고 그 옷이 도착하면 입혀보는 재미에 빠지게 되더라. 백화점에 가도 진짜 아기옷 코너를 보게 되다니.


다른 집 자식도 그렇게 예쁘다.

내 자식 말고 남의 집 자식도 귀하고 예쁘다. 아기를 낳기 전엔 크게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정말 어디서 아기 모델 같은 아이가 웃어야 귀엽다 정도였다. 근데 자식을 낳고 나니 진짜 이 집 자식, 저 집 자식 다 각자의 이유로 사랑스럽다. 저 아이가 가족에게 얼마나 큰 행복이고 보물 같은 존재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이를 보거나 대하는 시선도 달라지고, 어른 사람을 대할 때도 좀 더 휴머니즘을 장착하게 되더라. 사람에 대한 무게감이 더 확 추가되었다.


남편과 비교했을 때 억울하단 생각이 든다.

둘이 살 때는 어느 정도의 희생(?)도 기꺼이 할 수 있었다. 내가 더 자주 밥을 하고 빨래를 하더라도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반드시 내가 해야 할 역할이어서가 아니라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는 범위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또 남편이 잘하는 일, 필요한 일을 하면 되니깐. 한데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게 되면서 내가 가사 노동+ 육아를 더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억울함이 치밀었다. 복직해서 일을 시작하니 그 마음은 더 커졌다. 나도 똑같은 직장인으로 사는데 나는 아침도 해야 하고, 아기 목욕에 등원도 시켜야 하고, 설거지에 빨래에 청소에 아기 이유식까지 다 내가 한다니깐 억울함에 스팀이 부글부글 올라왔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일단 내가 졸리고 피곤하고 쉬고싶으니깐 몸이 힘드니 자연스럽게 마음보도 쫄아들더라.


그렇게 부모님 집을 찾아가게 된다.

불효녀스럽지만 자식 없던 시절엔 그렇게 엄마아빠집에 찾아가지 않았다. 월례행사처럼 인사차 한 번, 생일에 두 번, 명절에 세 번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나니 그렇게 부모님 댁을 찾을 일이 많다. 아기를 맡길 수 있다는 점도 크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아기를 동반하고 몸도 마음도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 생각 보다 많지 않았다. 그리고 내자식을 나만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는 유일한 곳은 진짜 부모님 집이었다. 고로 부모님 집이 멀리 있는 사람들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기도...자식이 크는 순간순간의 놀라움과 기쁨을 부모님과 나누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내 자식의 순간순간에 대한 공감이 엄청 필요했던 시기였다.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모다. 이 사실은 변함없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유대감의 힘을 느끼게 된다. 같은 팀 사람들이랑 일할 때나 같은 동아리 사람들과 취미를 즐기는 것과 다른 유대감이다. 내 자식의 보호자는 나지만, 내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나 말고도 양가 부모님,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 원장 선생님등의 힘을 모을 때 가능하다. 특히 여성 연대의 힘을 강력하게 느꼈다. 여성을 돕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여성인 것 같은 느낌을 육아를 하며 무척 많이 받았다. 남편과의 유대감도 포함된다. 그전에는 정말 이혼서류에 도장 찍으면 남남이 될 수 있는 게 남편이라면.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 아빠로 쇠고랑같이 굵고 절대 끊어지지 않는 사슬로 묶인 것 같은 연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로 인해 더 강하게 가족으로 연결되는 건 분명하다.


이 외에도 많지만 일단 여기까지 적어본다.

인간을 바라보게 하는 시선을 바꾼다거나, 자주 찾아가지 않던 부모님 댁에 매번 초인종을 누른다는 삶의 변화는 출산정도가 아니면 오지 않았으리라. 마냥 좋은 것도 마냥 싫은 것도 아닐 수 있지만 삶의 가치관과 방식을 바꾸는 엄청난 힘이 출산을 통해 온다는 건 분명해 보이네! 그렇네. 이어서 2탄도 써보겠어.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