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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May 20. 2024

노란 우산을 씌워준 소년


긴장


정말 싫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잡히는 건 아닌가 늘 초긴장하며 근처에 이를라치면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쳐 달아나다시피 버스정류장까지 뛰곤 했다. 1년을 넘게 도망쳐도 잡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그녀를 잡을 계획이 그들에겐 딱히 없나 보다.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하필이면 차를 갈아타는 곳이 이곳이람.

서울 모 기업입사 얼결에  상경 그녀는 고모집에서 하숙인지 자취인지 모를 불편한 동거시작하게 되었다.


하도 오래전 기억이라 몇 번 버스였는지 까무룩 기억은 숨어버렸지만,  회사가 서소문에 있었고, 한 번에 집과 회사를 오가는 버스가 없어 퇴근할 때는  경동시장인가에서 내려 모퉁이를 돌아 그곳에서 답십리 가는 버스 갈아던 것 같다.(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붉은빛 유리상자 안의

봄도 여름도 아닌 간절기 어느 날, 버스에서 내리니 장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 피할 곳을 찾 두리번거던 그녀는 은빛 조명이 쏟아지는 투명 유리상자 안에 이 훤히 비치는 옷차림을 한 쁘고 앳된 소녀와 눈이 딱 마주쳤.  그 순간 사지가 덜 떨렸고 급기야 아랫니와 윗니가 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냈다. 음과 달리 이 얼어붙은 듯 꼼짝을 안했다.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손바닥 위에 껌을 '퉤' 뱉더니 마치 맷돌을 돌리듯 오른손을 왼손바닥 위에 엎어 빠르게 빙빙 돌려 비빈 후, 양손가락으로  늘여서 넓적하게 폈다. 그러면서도 선은 그녀에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뭐라 말을 하는 것도 같았다.


계속해서 는 껌  끝을 잡고 돌돌  말아 가운뎃 부분을 통통하게 부풀더니 마알갛게 부풀어 오른 풍선을 손톱으로 '톡' 터트다. 러더니 껌을 다시 입안에 넣고 혀 길게 밀어 동그랗 풍선을 불더니, 입술을 안쪽으로 오므림과 동시에  '호옥' 숨을 들이마 '펑' 터트렸다. 술을 삐딱하게 일그러트리며 웃는 건지, 비웃는 건지 모를 소녀의 눈빛은 자꾸 말을 붙이는 것만 같았다.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아니 그런 것 같은  착각이 들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유리상자 안에 있는 소녀뛰쳐나와 그녀를 잡을 것만 같 두려 정류장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인파 속으로 흡수되었다.  



소년과 우산

유리님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 옴

횡단보도 앞,  신호, 쏟아지는 비, 발목까지 늘어진 옅은 하늘색 트렌치코트에 빗물이 스며들어 얼룩이 지고, 긴 생머리 카락이 비에 젖어 등에 달라붙는 느낌이 드는 순간 머리  위로 노란 지붕이 씌워졌다

"여기 여자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집이 어디예요?"

"전농동이에요. 혜성여상 앞."

순순히 답하는 그녀는 스스로 당황스러웠지만 움을 주려는 것 같은 목소리에 바짝 의지가 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그쪽으로 가요? 방향이 틀리잖아요. 버스 갈아타려고 여기 내리는 거라면 제기동에서도 답십리 가는 버스 있어요. "


돌아봐야 하나 어쩌나 정신이 아득한데 미소년처럼 맑은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따라와요. 무서워하지 말고 버스 올 때까지 씌워줄 테니 도망가지 말고 같이 기다려요."

뭐라 대답을 해야 하나 오만가지 상상이 머릿속을 휘젓는데 소년은 뚜벅뚜벅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고, 그런 소년을  따라 그녀도 같이 걸었다.


 이방인 둘이 한우산 속에서 몸이 부딪힐 듯 걷는 긴장감. 기껏해야   삼사 분 밖에 되지 않는 그 시간이 게 느껴졌다. 소년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는 나지 않았.  키가 무척 크고 목소리가  참 맑다고 생각했다. 버스 금방 와버렸고 그녀는  야속한 생각이 다 들었다.  


소년의 노란 우산은 버스에 오르는 순간까지 그녀 머리 위에 곱게 씌워져 있었.  버스 몸을  '탕탕' 두드리며 발차 신호를 보 안내양 버스에 오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버스 발판에 한쪽발을 올리고 매달리다시피  버스 안으로 을 길게 뻗은 소년은 접은 우산을 그녀 손에 쥐어 주었다.

"쓰고 가요~~!!. 담부터 비 맞지 말고 다녀요. 그리고 두 번 다시 여기서 내리지 마요." 

안내양은 사고 난다며 소리를 질렀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차창 밖으로  소년의 모습이 그림처럼 스쳤, 그 순간 울~렁 멀미가 느껴졌다. 흰색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은 훤칠하게 잘생긴 청년이 비를 맞으며 서 있  버스가 출발하자 대편으로 걸어내려갔다. 그는 소년이 아니었다.



회상

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회사는 충무로로 이사를 했고, 회사 앞까지 한 번에 가는 57번 버스가 있어 두 번 다시 그곳에 내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곳은 오래전에 철거되어 사라진  청량리 588번지 집창촌 앞 버스정류장이었다. 그는 단순히 지나치던 길에 그녀를 본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보고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곳에서 일하는 청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고개를 흔들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도 가고...

다시 봄이 찾아왔다.  57번 버스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녀는 횡단보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고 그 버릇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 

세월이 두텁게 흘러가버린 지금, 뜬금없이 그 순간이 생각나 그녀는 가만히 웃다.


표지사진ㅡ티스토리에서 다운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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