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첫째 딸 자연주의 출산기
2018년 10월 7일, 자연주의 출산으로 우리 첫째 딸을 만났다.
주변 몇몇 지인들이 자연주의 출산을 하긴 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분만방식이긴 했다.
임신 전, 자연주의 출산을 고려하고 있다는 내 생각을 전하니 대뜸 '원시적인 방법으로 고통을 왜 참나,' '너같이 마른 사람이 어떻게...,' '아이를 안낳아봐서 얼마나 아픈지 모르나본데' 등 근거없는 주변인들의 한마디가 내심 신경쓰여 자신감이 사라졌다, 어느날 갑자기 생겼다 했다.
1월에 임신소식을 안 후 안정기에 접어들자 분만방식에 대한 생각을 남편과 본격적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평소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나의 생각과 주변인들의 체험기를 남편도 같이 들어 어느정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자출은 기존 분만방식과는 달리 분만 시 남편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서 남편과의 합의가 꼭 필요했다.
자연주의 출산 관련 책과 영상도 찾아보고, 남편과 여러 날 이야기도 많이 나눠본 끝에 우리는 자연주의 출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인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건 역시 남편이었다. 평생 몇번이 될지 모를 출산의 순간에 본인도 꼭 동참하고 싶다고, 나를 혼자 두지않고 같이 고통을 나누겠다는 그의 다짐과 약속을 믿자 확고한 확신이 생겼다. 물론 가장 자연적인 방법으로, 의료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산모의 선택권을 가장 우선적으로 존중하는 자연주의 출산방법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
임신 16주차, 집에서 15분 거리의 자연주의 출산 전문병원으로 옮기고 순조로운 출산을 위한 사전준비에 열심을 냈다. 대중교통으로 통근하며 최대한 계단으로 걸으려 노력하고, 임신 35주차까지는 주2회 수영, 집에서 가끔 요가를 했다. 35주차 넘어서는 자궁경부 길이가 조금 짧아진다하여 걷기와 요가 위주로 운동을 했다.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이레(아이 태명)가 나올 기미가 없자 운동의 강도와 횟수를 높였다. 하루 만보 정도 걸으려고 노력하고(비오는 날 혼자 우산쓰고 부른배 안고 공원을 몇 시간이나 왕복했는지..), 남편 퇴근후 함께 아파트 계단을 한번에 두칸씩 오르내려 자궁문을 열었고, 스쿼트나 요가도 열심히, 식단도 나름 조절했다. 주차에 딱 맞게 자라던 이레가 출산 전 마지막 3주 정도에 몸무게가 급격히 올랐지만 나는 몸무게 변화가 없어 막달까지 내 몸무게는 9kg 정도 증가했다.
예정일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보통 출산이 다가올수록 가진통을 슬슬 느끼든, 진통의 징후가 온다던데 나는 이렇다 할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자출은 태아 몸무게가 적을수록 덜 고생한다던데 이미 뱃속 아이는 초음파상 3.5kg 정도로 나오고 있었다. 막달에 식단 조절하느라 나는 늘 허기져 있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이레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의사는 만삭 임산부치고 별로 부르지 않은 내 배를 살피며 '태아 몸무게가 이 정도일리가 없는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국 목요일 진료 때 주말까지 기다려보고 차주 월요일쯤엔 유도분만을 할지 내가 선택하라고 했다. 완벽한 자출을 꿈꿨는데 유도분만이라니. 그 상황까지 가기엔 그간의 노력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나오는 길에 우리에게 배정된 조산사를 만나 상황을 전하고 주말에 미팅을 잡았다.
10월 6일 토요일, 임신 40주 6일. 유도분만의 순간까지 가지 않기 위해 조산사는 애써주었다. 내진 결과, 자궁문은 2cm 정도 열렸지만 이레 자세가 맞지 않아 아이가 제대로 된 길로 못 내려오고 있는거라며 배에 멍이 생길 정도로 배마사지로 이레 자세를 맞춰주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잘 안 맞던 우주선끼리 딱 맞게 도킹되듯이 이레 머리가 자궁입구에 툭 걸린게 느껴졌다. 조산사 말대로 유축기로 유축을 하고나니 바로 가진통의 파도가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날도 조산사님이 알려준대로 만보 이상 열심히 걷고, 계단 두칸씩 3번 오르고, 자기 전 또 한번 유축을 했다. 어제와 다르게, 걸을 때마다 잠깐 멈춰서야 할 정도로 규칙적인 가진통의 파도가 오고갔다. 곧 이레를 만날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자정이 되자 말로만 듣던 이슬이 처음 보였다. 가진통이 3-4분씩 주기적으로 강하게 왔지만 매우 참을만한 진통이라 느껴졌다. 이 정도로는 병원 갔다가 다시 돌아올 거 같아 갈 생각도 안하고, 왠지 새벽에 병원을 가게 될 거 같아 출산가방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10월 7일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더 강한 진통에 잠못들겠지 했는데 왠걸, 누워 있어 그런가 자궁이 수축되던 느낌이 모두 사라졌다. 이대로 유도분만까지 갈 수 없어, 조급해진 마음에 잠이 안와 짐볼을 탄 후 새벽 어둠 속에서 유축을 했다. 유축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에서 툭- 소리와 함께 양막파수가 된 게 느껴졌다. 갑자기 양수가 안에서 주르륵 흐르는 느낌이 나고 화장실에서도 실제로 똑똑 떨어지며 나왔다.
조산사님께 급히 연락을 드리니 양막파수되면 진통이 급격히 진행되니 바로 병원으로 오라셨다. 당황하긴 했지만 전날 평소보다 강도높은 운동으로 약간 허기진 상태로 잠들어 힘을 주기 위해 뭐라도 먹고 가려하는데 갑자기 진통이 강해지면서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차분히 나를 진정시켜주던 남편에 의지해 차에 올랐다. 가는 내내 양막이 줄줄 새서 속옷은 물론 원피스까지 일부 젖고, 진통이 강해졌으나 참을만했다. 진통 진행이 빠르다는 걸 느끼며 병원에 도착했다.
남편과 나만 들어갈 수 있는 출산실에 도착하니 출산 준비가 되어 있었다. 드디어 이레를 만나는구나, 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아기의 심박과 자궁수축 검사, 내진을 시작했다. 이레 심박은 정상. 내진 결과 자궁 4-5cm 정도 열렸다고 했다. 10cm 정도 열려야 아이가 나온다는데 겨우 이 정도 진통으로 절반 정도 왔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도 잠시, 점점 강도높은 수축의 파도가 몰려왔다.
조산사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남편과 바로 분만자세를 잡았다. 자궁수축이 올 때마다 아래로 힘을 주라 하셔서 열심히 연습한 호흡을 최대한 하며 남편과 규칙적인 진통의 파도를 흘려보냈다. 정말 파도가 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파도가 해안가로 밀려오듯 통증이 훅 왔다가 금세 밀려나가며 멎었다. 그동안 물마시고 이완하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수축이 진행될수록 점점 진통의 강도가 강해졌지만 호흡 조절을 하며 흘려보낼 수 있을 정도의 통증이었다. 너무 신기하게 경과가 진행됨에 따라 자궁 안에서 이레가 몸을 돌리고 점점 아래로 내려오고 산도에 머리가 끼이는 느낌이 진통 중에도 느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침대에 누워 분만자세를 몇 번 안한 것 같은데 조산사님이 화장실 다녀온 후 욕조에 들어가자 하셨다. 수중분만의 시간은 진진통 거의 막판에 온다는 걸 알았기에 속으로 내심 기뻤다. 욕조에서 이완이 되다보니 통증은 확실히 조금 경감되었다. 이완을 위해 준비해간 출산 음악이 이때서야 비로소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욕조 안에서 3가지 다른 자세를 취해보아도 이레 머리만 아주 조금 더 내려온 느낌 뿐, 침대에서보다 진행이 더디다는 게 느껴졌다. 조산사님도 초산모는 보통 수중분만이 어렵다며 침대에서 다시 시도해보자 하셨다. 욕조에서 나와 출산의자에서 조산사님이 시키신 포즈를 취하니 쑥 더 나온 이레의 머리가 느껴졌고 조산사님이 직접 만져보게도 해주셨다. 이 정도 통증에 아이가 이만큼 내려왔다니 이제 정말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워 남편이 뒤에서 받치는 자세를 취했는데 산도에 머리가 낀 이레가 나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 수축이 왔을 때 최대한 아래로 밀면서 호흡을 하려고 애썼다. 나중에 알았는데 계속 심박이 좋던 이레가 마지막 진통 단계에서 산소포화도가 약간 떨어졌었던 것 같다.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고 불필요한 쪽으로 힘이 분산되지 않도록 이끌어주시던 조산사님. 이런 채로 40분이 경과되었다.
마지막 진통 때는 짐승소리가 절로 났다. 이제 마지막 단계까지 다 온 것 같은데 왜 아이 머리가 아래 끼인 채로 이렇게 안나오는지… 나중에 남편 말로는 아이 머리가 내가 밀어낼 땐 나오다가 이완할 땐 다시 들어가기를 꽤 오래 반복했다고 한다. 조산사님이 계속 회음부 마사지를 해주시며 산도를 넓혀주시고, 당직 의사 선생님까지 오셨지만 '쉽지 않다'는 걱정어린 말만 반복했다.
결국 나의 살성이 지나치게 탄력이 있고 열상이 이미 깊어, 부득이하게 1센티 정도 회음부 절개를 하여 아이가 쉽게 나오게 도와주자고 하셨다. 완벽한 자연주의 출산(자연분만과 달리 무통주사, 회음부 절개, 관장 모두 안함)을 꿈꿨던 나는 한번만 더 힘줘보고 안되면 따르겠다 하였고, 결국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회음부 절개를 약간 할 수밖에 없었다. 출산후기를 보면 마지막 순간에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하던데, 내 스스로 한번의 밀어내기 시도를 더 해보겠다 할만큼 수축 사이 이완의 시간 덕분에 나는 진진통이 이 정도면 정말 참을만한 고통이라고 느꼈다.
절개를 살짝한 후 마지막 힘을 주자마자 이레의 머리가 쑥 나왔고, 어깨를 비롯한 나머지 부위가 물컹하고 나와 내 가슴 위에 뜨거운 이레가 얹혀졌다. 정신이 혼미한 채 아이를 안고 남편을 보는데 남편은 우느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조산사님에게 무통주사 없이도 출산할만하다고 했더니, 조산사님의 말이 허를 찔렀다. 남편이 무통주사 역할을 해준거라고. 나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아이를 잘 낳은 줄 알았는데, 고통의 순간에 함께해준 남편이 너무 고마웠고 쉽지 않았을 길을 혼자 뚫고 내려온 이레도 너무 기특했다.
그렇게 10월 7일 오전 9시 31분. 병원 도착한 지 4시간 반만에 초스피드 출산을 끝냈다. 이레는 3.6kg의 건강한 여자아이였다. 언제 진통이 왔었냐는 듯, 이레가 나옴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수축의 파도는 싹 사라졌다. 자출의 또 다른 장점인 캥거루 케어시간. 나와 남편과 이레, 우리 세사람의 귀하디 귀한 첫 애착시간. 남편의 가슴 위에 얹혀져 꼬물거리며 울던 작디작은 이레를 만져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엄청난 힘으로 내 가슴을 처음 빨던 이레를 드디어 만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아이를 쓰다듬으며 품어주었다. 커튼을 열어젖히자 환한 아침햇살이 우리 세 사람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하나되는 눈부신 순간을 축복하는 듯했다.
결혼한지 5년만에 찾아와준 귀한 우리 첫째딸을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방식을 통해 만날 수 있어서 남편도, 나도 매우 크게 만족한다. 둘째를 만약 갖게 된다면 주저없이 같은 방식을 선택할만큼. 상상할 수 없는 큰 고통이라며 출산의 공포를 조장하는 이들에게 이제는 경험자로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 내 아이와 더이상 가깝고 친밀할 수 없을만큼 임신기간은 정말 신비롭고 아름다운 경험이고, 출산은 호흡과 파트너의 도움으로 수축의 파도만 잘 흘려보낼 수 있다면 여자만이 겪을 수 있는 더할나위 없이 숭고한 경험이라고.
출산한지 두 달여가 지난 지금. 눈부신 가을의 시작에 만난 이레가 겨울이 성큼 다가온 오늘, 이제 56일이 되었다. 50일의 기적을 맞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우리 딸아이.
기억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평생 잊을 수 없는 2018년 10월 7일을 기록하며 아름다웠던 그날을 다시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