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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Aug 03. 2019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아이가 목을 힘껏 안고 불렀다 "아-뽜"

해인이가 아프다. 생후 50일 경에 잠깐 앓은 요로감염 이후로 두번째로 아프다. 이번에는 감기다. 다행히 열은 3일만에 금방 잡혔는데 기침과 콧물 때문에 아이가 많이 힘들어한다. 그렇게 잘먹던 밥도, 입맛을 잃었는지 통 안먹는다. 작디작은 몸을 들썩이며 기침을 하고 자기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콧물을 어찌할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볼 때 참 안쓰럽다. 앓는 탓에 통통하게 올랐던 살도 며칠만에 빠져보인다. 월령에 비해 커보인다는 말을 듣던 우리 딸이었는데... 한창 성장해야 할 때라 괜히 더 속상하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 했던가. 해인이 역시 아픈데도 잘 놀고 잘 큰다. 이제 만 10개월이 가까워오는 아이는 내가 하는 행동을 모방하기도 하고, 기억력이 좋아져 특정 상황에 대한 호불호를 드러낼 줄 알며, 박수, 만세, 짝짜꿍, 안녕, 예쁜짓, 주세요 등 간단한 몸짓들은 시키면 쉽게 하곤 한다. 무엇보다 인지력이 좋아졌는데 역시 가장 뿌듯한 건 나를 보고 '엄마', 아빠를 보고 '아빠'라고 불러줄 때다. 할 줄 아는 말이 아직 '엄마, 아빠, 맘마' 밖에 없으니 대상을 지칭하는 게 아니겠지 싶었지만 분명 엄마아빠는 정확하게 부를 줄 안다.


남편의 새 회사 이직 전 3주간 아이와 매일매일 살 부대끼며 밀도높게 애착을 형성했던 시간이 있었다. 해인이 신생아 시절부터 워낙 육아참여도가 높은 남편이었지만 해인이는 그 3주간 아빠의 존재를 특별히 더 각인했던 듯했다. 새 회사 일정상 야근이 많아져 평일에 잠들기 전엔 만나기 어려워진 희소성 높은 아빠라 그런지, 주말이면 아빠 바라기가 되곤 했던 딸.


오늘도 야근을 한다는 남편 말에 아이 목욕을 나 혼자 씻겼다. 새 회사 가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이 메인이 되어 함께했던 목욕시간. 아이를 안고 씻기는 게 너무 좋다면서 남편이 제일 좋아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해인이도 그랬던걸까. 목욕을 마치고 아이를 샤워타올에 감싸안고 나오는데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아뽜"한다.


"응? 엄마잖아, 해인아. 아빠는 아직 안오셨어"


우리 둘의 인기척 밖에 들리지 않는 집안이라 아이도 아빠가 아직 안왔다는 걸 알았겠지만 아빠가 목욕시켜줬던 시간이 갑자기 떠올랐던걸까? 허리가 아픈 나 대신 샤워타올로 아이를 감싸안고 화장실을 나섰던 건 늘 남편의 역할이었다.


아이의 잠잘 채비를 하고 젖을 물리려던 찰나,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 서둘러 집에 오고 있다고 거의 다 왔다는 남편의 연락. 잠들려던 아이를 안고 나와 현관 앞에 섰다. 띠띡- 현관문에 들어선 남편이 딸의 얼굴을 보자 미소가 환하게 번져온다. 해인이도 마주 웃어준다.


"잘 있었어 해인아?"


아빠를 향해 두 팔을 벌려 안아달라던 딸이 아빠의 어깨를 고사리손으로 있는 힘껏 움켜쥐고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제 딴에는 온 힘과 마음을 다해 끌어안았으리라. 그 모습만 봐도 가슴이 뭉클했는데 한참 아빠를 꼭 안고 있던 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ㅡ뽜"

 

평소 아빠를 부르던 어조와는 달랐다.

그저 가벼이 대상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 온 마음을 진하게 담아 뱉어낸 게 느끼지던 그 말.


말은 못해도 샤워하면서 아빠를 떠올렸을,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안보이는 아빠가 의아했을, 자기 전 아주 잠깐 보는 아빠지만 너무 반가워하는 딸의 마음이 녹아져있을 한 단어. 그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이되어 아이를 쓰다듬어주었다.


"해인이가 오늘 아빠가 많이 보고 싶었구나. 잠들기 전에 아빠 봐서 다행이다"


그렇게 몇 분을 아빠 품에 안겨있다 다시 내 젖을 물고 품안에서 잠든 아이.

잠든 해인이를 보며 생각해본다. 해인이에게 아빠란,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

우리가 아이에게 사랑을 흘려보내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해주는 딸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우리가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문득 깨달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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