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런 날도 있지
오늘은 해인이가 유독 낮잠에 들기 힘들어한다
평소 같았으면 쉽게 잠들었을 오전 첫 낮잠.
습도높은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인지, 이제는 많이 줄어 잘 나오지 않는 젖 때문인지, 책을 읽어주고 백색소음을 틀어줘도 너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다 얕은 선잠에서 금방 깨버린다.
옆에 누워있다 황급히 토닥여 잠을 연장하려 해보지만 유독 잠에만 예민한 너는 역시나 오늘도 잠 연장 실패경험만 한번 더 안겨준다.
너를 안고 거실로 나온다.
조금 놀다가 아까 못잔 잠이 금세 몰려오는지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고 온몸을 타고 기어오른다. 재워달라는 너의 무언의 제스처.
경험상 눕혀재우기는 그른 것 같아 아주 오랜만에 아기띠를 맸다. 약한 허리디스크가 온 뒤로 웬만하면 매지 않으려는 아기띠지만 이런 날은 방법이 없다. 에어컨을 켜서 실내공기를 쾌적하게 만들고 집안을 하염없이 걷다가 짐볼을 타다가... 너를 재우려 꽤 오랜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래, 이런 날도 있지... 나도 잠잘 안오는 날 있잖아.
오늘 하려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걸 애써 흔들어 지우고 너를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을 앞세워본다. 의지적으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 짜증이 밀려온다는 것 또한 지난 여러 경험들을 통해 체득했다. 이유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새로운 이유식 재료 장을 보고... 남은 일정 모두 아이를 위한 것들인데 잠 못드는 아이 탓을 하게 되면 본질이 흐려지는 건 한순간이다.
마음의 조급함을 내려놓는다.
아이를 키우며 예정된 일정대로 소화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변수가 생기는 일도 부지기수다.
한참의 칭얼거림 끝에 품에서 잠든 너를 안고 바라본다. 활동량이 많아진 뒤로 세심하게 아이를 관찰할 수가 없었는데 뜻밖의 소중한 기회다.
온몸에 돋아난 보드라운 솜털, 짙어진 눈썹, 잘라줘도 금세 자라나는 손톱, 숨이 부지런히 오가는 작은 콧망울에 맺힌 땀, 입냄새마저도 향기로울 수 있는 걸 보니 정말 내 아이가 맞나보다.
아이를 위한 일에만 노력과 시간을 들였는데 벌써 정오다. 그래, 이런 날도 있지. 괜찮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