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임신을 알았을 때 우리 부부는 망설임없이 첫째를 출산했던 GM제일산부인과에서 자연주의 출산을 다시 하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보면 이미 3년전 첫째 출산 때부터 결정되어 있었을만큼 자연주의 출산은 우리 가족에게 너무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출산 예정일은 7월 31일. 아이의 생일은 본인이 직접 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예정일을 넘기도록 별다른 진통의 징후가 없자 조바심이 났다. 코로나와 무더위를 핑계삼아 첫째 임신에 비해 운동을 많이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막달 초음파상 이미 둘째 도담이는 3.7kg까지 커있어서 경각심이 생겼다.
막달에 더 많은 운동을 권장하는 자연주의 출산 특성상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해, 기록적인 폭염을 피해 해가 진 후 부른 배를 안고 혼자 열심히 걷고 1층부터 18층까지 한번에 두 계단씩 올랐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때문에 습한 열감이 마스크 안에 배어들기도 했고, 혹여나 발을 헛디딜까봐 난간을 꽉 부여잡은 손과 등줄기에서 땀이 나기도 했지만 뱃속 아이를 빨리 만날 생각으로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첫째 임신 때는 남편과 둘이 하던 운동이어서 3년 전의 추억이 많이 생각났다.
첫째 아이도 출산 과정에 참여해 동생을 만나는 첫 순간부터 한가족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자연주의 출산의 큰 장점이자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많은 고민 끝에 우리 부부는 올해 4살이 된 34개월 딸도 출산날 데려가기로 했다.
출산 몇 달 전부터 조산사가 추천해준 <아가야 안녕>이라는 책으로 출산과정을 익히고, 동생이 생기는 내용의 책과 엄마와 잠깐 떨어져도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난다는 내용의 책들로 첫째 아이의 마음도 준비시켰다. 매일 뱃속 아이와 교감하며 태담을 열심히 해주고, 동생맞이 준비를 함께 해준 첫째의 노력도 참 귀하고 고마웠다. 물론 첫째 아이들만이 겪는 막연한 상실감과 불안함에 평온히 잠들던 아이가 새벽에 깨서 울거나 엄마 껌딱지가 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첫째가 이겨내야만 하는 과정인 것 같아 미안함과 응원을 담뿍 담아 보듬어주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하루하루 더 깊어지는 애정으로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8월 2일 새벽 2시, 가진통이 7분 주기로 규칙적으로 왔다. 전날밤, 첫째가 쉬이 잠들지 못하며 엄마 병원가지 말라고, 자기도 꼭 데리고 가라고 신신당부할 때부터 아이가 출산을 예감하나 싶었는데... 싸르르한 생리통 같은 규칙적인 진통에 자다가 절로 눈이 떠졌다. 30분을 지켜보다가 조산사에게 연락을 했더니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보고 조금이라도 잔 후에 새벽 6시쯤 다시 상황을 보자고 했다. 샤워를 하니 기다리던 이슬이 비쳤다. 잠깐 왔다 지나가는 매우 참을만한 고통이었기에 연습한 느린 호흡법으로 진통을 흘려보내고 살짝 긴장된 마음을 달래며 30분 정도 잠을 청하기도 했다.
6시에도 규칙적인 수축이 반복되자 남편을 깨워 출산가방을 최종적으로 쌌다. 집에 와계시던 친정엄마가 아침을 차려주시는 사이, 해인이 방으로 갔더니 아이가 깨어 있었다. 평소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눈을 뜨자마자 설레하며 병원에 가는거냐고 묻는 해맑은 첫째. 도담이 만나러 같이 가자고 하니 함박웃음이 입가에 퍼진다. 아이의 미소를 보니 미세하게 떨리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용기가 생겼다.
빨라지는 진통주기를 느끼며 아침을 조금 먹고 집을 나섰다. 평소와 조금 다른 분위기를 감지해서인지 차멀미가 난다며 카시트를 타기 싫어하는 첫째도 이날은 챙겨온 강아지 인형을 들고 의젓하게 앉아있었다. 진통주기는 점점 빨라졌지만 충분히 참을만한 고통이어서 첫째 손을 잡고 여유있게 병원에 들어섰다.
오전 7시반, 익숙한 출산실에 도착했다. 3년 전과 똑같은 풍경, 같은 조산사님을 마주하니 마음에 안정감과 편안함이 생겼다. 내진 결과, 자궁문이 벌써 4-5cm가 열렸다고 했다. 3년 전, 양막이 파수되어 덜덜 떨리는 몸으로 병원에 왔을 때도 자궁문이 반 정도 열렸다고 했는데 같은 상황이라니 참 신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동이 자유로울만큼 상태가 너무 멀쩡해서 내몸에서 출산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잘 실감나지 않았다. 출산을 한번 경험해봤기 때문일까. 3년 전 첫째를 낳을 때의 모든 장면과 나누던 대화까지 선명히 떠올랐지만, 신기하게도 이번 출산을 앞두고는 두려움이 거의 생기지 않았다. 여유롭던 마음 상태가 몸의 전체적인 이완을 도운 게 아닐까 싶다. 조산사님은 경산모는 보통 가진통이 길고 진진통이 짧다고, 짐볼운동을 하길 권하며 수중분만용 욕조 물을 미리 받아놓으셨다. 저 물이 다 식기 전에 내가 곧 들어간다는 뜻이겠지 싶어 열심히 몸을 움직여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도담이가 내려올 준비가 될 때까지 각자의 방법대로 기다리기 시작했다. 호텔방처럼 생긴 출산실을 둘러보며 여기가 진짜 병원이 맞냐며 재차 물어보던 첫째는 챙겨온 간식과 아침거리를 먹기도 하고 욕조물로 장난을 치며 즐거워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통의 강도가 점점 더 세지는 와중에도 우리 가족이 도담이를 만나러 여행을 온거라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코로나로 집에만 갇혀있다가 진짜 호캉스를 온 기분이 들었다. 간간히 찾아오는 진통의 파도를 호흡으로 흘려보내는 와중에 틀어놓은 음악 셔플 오류로 신나는 동요가 흘러나올 땐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해인이가 손수 챙겨온 추피책을 읽어주거나 "엄마 괜찮아?"하며 진통하는 내 허리와 팔을 남편과 함께 살살 쓸어줄 때 마음이 평온해졌다. 안 데려왔으면 어땠을까 싶을만큼 우리 첫째 해인이는 정말 훌륭한 둘라(출산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중력에 힘입어 도담이가 더 쉽게 내려올 수 있게끔 방안을 이리저리 걸어보고, 다리를 벌려 쪼그려앉는 개구리 자세도 해보고, 남편과 블루스 추는 자세도 해보고, 짐볼운동을 하다보니 몸의 변화가 감지됐다. 아이가 산도로 많이 내려와, 진통간격이 1분 내외로 줄어든 게 스스로 느껴졌다. 여전히 호흡으로 큰 고통없이 잘 흘려보낼 수 있을 정도였지만 아래로 힘이 들어가는 듯 마는 듯한 애매한 느낌이 들었다. 조산사를 호출하니 욕조에 들어가보자해서 당황했다. 벌써 다온건가? 욕조에서 내진을 해본 조산사가 자궁문이 이미 다 열렸다고 했다. 둘째는 진행이 빠르다더니 내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벌써 이렇게 진행이 됐구나 싶었다.
욕조 안에서 이완을 느끼며 진진통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던 중에도 내 옆에 다가선 첫째 해인이가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내 손을 잡아주고 작은 바가지로 내 배와 가슴에 따뜻한 물을 뿌려주는데 첫째를 생각해서라도 더 힘을 내서 빨리 둘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욕조 안에서 개구리 자세를 해보라는 조산사의 말대로 하니 저절로 아래로 힘이 들어가는 출산의 마지막 순간이 드디어 왔다!
긴 숨을 참으며 아래로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몇번이나 반복했을까. 남편이 내 뒤를 받쳐주러 욕조에 들어왔고, 조산사는 회음부 마사지를 해주며 뱃속 아이의 심박수, 산소포화도를 계속 체크했다. 불가항력적인 그 힘을 따라 정말 열심히 밀어내는데 왜 아이는 안나올까. 내가 왜 이 짓을 또하고 있나. 정말 내 인생의 마지막 출산이다!를 속으로 되뇌였다. 얼굴에 땀이 맺히고 열감이 오르는게 느껴졌다.
"엄마가 아기 나오는 걸 도와줘야해요. 엄마가 힘을 줘야 끝날 수 있어"라는 조산사님의 말에 이를 악물고 에너지를 쥐어짰다.
출산을 도우러 여러명의 의료진이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숨을 참고 아래로 힘을 줄 땐 방안에 있던 모두가 함께 숨을 죽였는지 고요한 적막만 흘렀다. 진통이 썰물처럼 지나가면 후하-후하- 내뱉는 내 거친 숨소리만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애기 머리가 보여. 호흡하자. 다 왔어. 조금만 더 힘내" 나를 격려하며 내가 힘줄 때 같이 뒤에서 힘을 주며 함께 호흡해주던 남편이 그 순간 제일 의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이 몸 전체가 한순간에 산도를 확 통과해 나왔다. 다부진 남자아이의 몸이 물에서 건져져 내 가슴 위에 얹혀지고 다리 사이로 물속에서 일렁이던 미끈한 탯줄이 느껴졌다. 아, 드디어 나왔구나. 산도를 통과하느라 뾰족해진 아이의 머리와 시커먼 머리숱, 가슴 위에 올려진 손끝에 붙은 아주 작지만 뾰쪽했던 손톱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휘몰아치던 진통의 파도가 거짓말처럼 사라지자 그제서야 욕조 옆에 선 해인이가 눈에 들어왔다. 동생이 나오던 순간에 읽어주려 했던건지 아이 손에 들려져있던 "추피에게 동생이 생겼어요" 책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책에서 수없이 봤던 장면을 눈앞에서 실제로 본 해인이는 신기한 듯 한참을 내 배 위에 올려진 동생을 바라보았다. 남편이 그런 첫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해인이가 태어났을 때처럼 기분좋은 햇살이 퍼지던 오전 시간. 10시 51분에 소중한 우리 둘째 도담이가 태어났다.
욕조 밖으로 나오자 태반도 자연스레 박리되고 이제 우리 네 가족이 하나되는 캥거루 케어시간만 만끽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아래가 너무 아팠다. 그날따라 분만하던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지라 담당 의사는 바로 나에게 와서 후처치를 해주지 못해 꽤 기다려야했다. 뒤늦게 내 상태를 본 담당의가 열상이 너무 깊어 항문까지 약간 찢어졌다며 수술실로 가야한다고 했다. 비몽사몽 간에 수술실로 옮겨진 나는 수면마취를 한 채 후처치를 한 후 다시 출산실로 돌아왔다. 출산 때보다 더한 고통에 제대로 캥거루 케어에 참여를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남편과 첫째는 내가 후처치를 하는동안 캥거루 케어시간을 온전히 즐긴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기를 받아준 조산사님이 침대에 누운 나를 케어해주며 이것저것 말씀을 해주셨다. 출산계획서에 수중분만을 원한다해서 그렇게 될 수 있게 도와주신 것. 해인이가 무서워하진 않을까, 낯설어하진 않을까, 숱한 밤 했던 우리의 고민이 무색했던만큼 너무 잘 협조해줬다는 것(물론 집에 가서 지속적인 아이의 정서와 감정을 묻고 케어를 해줘야한다). 회음부의 일시적인 손상은 몇일만 고생하면 금방 나을 수 있으니 힘내라는 응원까지. 우리 아이 둘을 모두 잘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신 것도, 그 귀한 인연을 한분의 조산사님과 이어갈 수 있었다는 것도 참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 후 보름 정도가 되어가는 지금. 건강하게 태어난 도담이는 어느새 3.93kg까지 커서 젖도 힘있게 잘 빨아 나와의 합을 잘 맞춰가고 있다. 출산 후 처음 몇 일은 좀 고생했지만 자연주의 출산의 또다른 장점인 빠른 회복력 덕분에 벌써 임신 전 몸매로 돌아온 것 같아 나날이 홀가분해지고 있다. 조리원 천국 만세!
아이 하나 키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육아 세계라지만 첫째 아이가 가져다준 행복과 기쁨이 너무 컸던만큼 둘째 아이와 함께하는 삶도 많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