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의 동생을 기다리며
둘째 도담이를 뱃속에 품은지 22주차,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첫째와 다르게 태교도, 태담도, 운동도 잘 못하고 시간만 잘 가는 느낌이다. 더 챙겨주지 못해 도담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해인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는 게 둘째 태교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지낸다. 지난한 입덧 기간이 끝나고, 아이의 성장 에너지에 힘입어서인지 내 컨디션도 덩달아 좋아지는 기분좋은 임신 중기를 보내고 있다.
올해 4살이 되긴 했지만 아직 생후 29개월인 우리 첫째는 나날이 사랑스러움이 더해간다.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깊고 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평생 몰랐을 감정을 내게 가르쳐준 아이이기에 고마운 마음이 일렁인다. 도담이가 태어나도 해인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너무도 소중한 나의 첫째 딸.
'미운 네살'이라는 말이 왜 있나 싶게, 순한 기질의 해인이는 나랑 점점 더 합이 잘 맞아가는 느낌이다. 물론 장난도, 떼도 나날이 늘고는 있지만 귀엽게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다. "엄마, 해인이 마음이 슬펐어요"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을 포함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완성도 있는 문장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라서 대화도 참 잘 통한다. (비록 혀짧은 발음이지만 ㅎㅎ) 자기 조절력도 좋아서 영상도 약속한만큼만 보고 스스로 끌 줄 알고, 어린이집은 적응도 빨랐지만 아침마다 어린이집 가는 것을 기대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어린이집 선생님에 따르면 소근육 발달도 좋은 편이라고 한다. 오래 걸릴 줄 알았던 배변훈련도 거의 2주만에 큰 실수없이 끝내, 잔뜩 쟁여놓은 기저귀 박스가 무색해져버렸다. 소변과 대변을 한번에 가리게 되었고 새벽에도 요의를 느끼면 스스로 일어나 화장실을 갈 정도라 밤기저귀도 금방 뗀 게 어찌나 기특한지.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주체적이고 똑부러지는 딸을 키우다보니 다가올 둘째 남동생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자고 다짐하는 게 우리 부부의 숙제가 되었다.
감성이 풍부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찰력이 좋은 해인이는 눈에 띄는 질투없이 자연스럽게 동생 도담이의 존재를 잘 받아들이고 있다. 엄마의 임신 사실을 알고 갑자기 아기 짓을 하거나 퇴행을 하는 첫째도 꽤 있다는데 아직까지 해인이는 그렇지는 않다.
입덧으로 한참 괴로웠을 때 해인이는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다. 밥 짓는 냄새를 견디기가 힘들어 안방으로 피해있으면 방으로 쪼르르 따라들어와 야무지게 방문을 닫고선
엄마, 속이 안 좋아? 밥을 머그면 갠차나~ 밥을 머거바. 해이니가 두드려주께.
하며 고사리같은 손으로 내 가슴을 콩콩 때려주던 게 얼마나 고맙던지.. 호르몬이 제멋대로 일렁이던 그 시절, 마냥 아기라고만 생각했던 딸의 헤아림에 눈물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그외에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무수한 감동적인 어록들을 기억에서 지우지 않기 위해 기록해둔다.
*엄마, 내가 지켜주께. 도담이랑 엄마랑 지켜주꺼야.
*(간드러진 목소리로) 도담아~ 누나 좀 봐바. 나는 큰 누나라서 이거 할 수 있는데 도담이는 아직 쪼끄만 아기라서 못해. 크면 같이 하자. 나눠줄게~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가) 엄마, 도담이 춥대?
*(내 배에다가 젤리를 갖다대며) 도담아~ 이거 먹어. 굴(귤) 젤리야~
*(아침에 일어나서 내 배를 어루만지며) 도담아~ 잘자떠?
*(작아진 옷과 신발이 생길 때마다) 이거 이제 해이니한테 작아. 도담이 주까?
*엄마, 도담이는 언제 태어나? 더운 여름에?
*도담이 태어나먼 장난감 나눠주꺼야.
곧 함께할 동생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몸도 마음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해인이의 매일의 순간을 붙잡고만 싶다. 혀짧은 발음으로 종일 쉬지 않고 조잘거려 허공에 동동 떠다니는 해인이만의 단어들이 내 삶에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는지.. 언제 이렇게 빨리 컸냐고, 천천히 자라라는 육아 선배들의 공통된 읊조림이 크게 와닿는, 4살 아이 육아 황금기. 그래, 나는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