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겁이 났다.
미치도록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너무 두려웠다.
또 다시 현실에 복종한 채 살아가면 어쩌나, 그러한 현실이 날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현실 부적응자가 되어 한국에서는 도저히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건 아닐까,
많은 것들이 변해있지는 않을까, 내 사람들은 여전히 내 사람들일까.
한국이라는 나라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앞둔 사람처럼 긴장했고, 설레었고, 무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야만 했다.
가족이 그러했고, 내 꿈이 내 심장을 방망이질했고, 무엇보다 당신을 봐야 했기에.
이틀 후면 한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가야 하는 내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여정은 남아공의 가든루트였다. 투어버스를 타고 가든루트 라는 드라이브 코스를 3박 4일동안 돌며 유명한 관광지들을 둘러보는 투어다. 그 코스 중 치치캄마 국립공원에는 세상에서 제일 높다는 번지점프가 있었다.
투어 일행들이 저마다 하겠다고 각서에 서명을 하고, 장비를 착용한 후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 다리를 건너갔다.
번지점프 반대편에는 다른 사람들의 도전을 구경할 수 있는 TV와 음료나 과자를 구입할 수 있는 작은 가게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시키고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투어 일행들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대기했다.
내가 번지점프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심각한 고소공포증이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줄이 끊어지지 않더라도 저 아찔한 다리를 건너가는 동안 아마도 나는 심장마비로 죽지 않을까 싶었기에.
두 번째 이유는 그랬다. 또 언젠가 내가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자고, 죽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일에 뛰어들면 어쩌면 죽음이 주는 공포에 내가 정신을 차릴지도 모르니까.
마지막 이유는 그랬다. 이 사람과는 함께 죽어도 좋겠다 싶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때 함께하고 싶어서. 함께 죽어도 아쉬울 것 없는 사람과의 번지 점프는 무섭기는 해도 두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뛰어내리기 전 긴장감 넘치는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 해 보여주는 TV 화면에 한 번 웃었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그들의 비명에 역시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도전을 보고 있던 중 차례로 뛰어내리는 그들에게서 나를 보았다.
무서워서 눈을 꼭 감고 뛰어드는 사람, 의연하고 담담하게 뛰어드는 사람, 잔뜩 굳은 얼굴로 뛰어드는 사람. 마치 그들의 모습들이 나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가는 내 마음도 저것과 다르지 않았다. 까마득한 곳으로 내 몸을 내던지는 일,
줄이 끊어질 확률은 극히 적어 대부분 죽지 않고 살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공포.
투어 일행들이 번지를 마치고 돌아왔다.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내 말에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정말 너무 무섭고 짜릿했는데, 끝내줘.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안 했으면 후회 했을 거야.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한국으로의 내 번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긴장되고 무섭고 두렵지만 결국 한국 땅을 다시 밟는 순간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겠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 짐을 꾸리던 날, 잠시 내려둔 이 모든 것들을 다시 짊어지려니 참 무거웠는데 지금은 처음처럼 무겁지 않았다. 안개에 가린 것처럼 막연했던 나의 내일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왠지 그 길을 걷다 보면 밝게 비추는 햇빛이 비로소 내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 같다는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떠났어도 별반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나는 확실히 달라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