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는 다 얘기하지 않아도 속마음이 빤히 보이는 친구가 되고 싶고,
또 그에게는 아무리 애써도 속마음이 보이지 않는 여자가 되고 싶다.
단 한번도 내게 당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강요한 적 없는 당신의 세월들을 지나
딱 내 나이였을 때 당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들을 찾아 한 두 개쯤은 대신 이루어주고 싶고,
내가 다시 한 번 당신의 자식으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당신의 지갑에 손을 대거나 눈에 빤한 거짓말들로 그 여린 가슴을 후벼 파는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용기보다는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들숨에 천방지축인 나의 날숨을 집어넣어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조금씩 침묵이 사라지면 좋겠고,
표현하지 못한 수많은 침묵들을 더 꾹 집어 삼키는 그의 들숨을 타고 들어가
그 심장 깊숙한 곳에 내가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내 걸고 앉은 적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
가공된 나 말고 날 것의 내 모든 것들을 그가 흠모하여
그러한 내가 그에게 아주 특별해져서 그가 원하는 유일한 한 가지가 되었으면.
숫자 따위에 연연하며 스스로 철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가는 내가 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이루고 산다던 그 패기짙은 삶을 사는 내가,
결혼식장에는 반드시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가겠다던 상식 밖의 다짐을 잊지 않는 내가,
엄마 뱃속에서 유영할 때 꾸었던 꿈 까지는 아니더라도 간절히 꾸었던 사소한 꿈들을 기억하는 내가,
나만은 늘 뜨거운 내가.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해 질 땐 어른 행세를 하고,
그 타이틀이 불리해 질 때는 금새 어리다는 핑계로 소녀처럼 위장하곤 하던 나의 어린 날을
좌심방 우심실에 나누어 놓아두고
여덟 살 더 먹은 듯이 사랑을 하며, 다섯 살 더 어린 듯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