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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날다 haninalda May 15. 2020

오우드(침향)-쇼팽 녹턴 Op. 9 No. 2









이제는 벌써 몇 년 전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운 좋게 알게 된 대표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중국의 베이징에 위치한 침향 협회에서 침향 향수를 창작하려고 해서 추천하고 싶다고요. 언제든지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향 원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침향은 영어로 아가우드(agawood) 또는 오우드(oud)라고 불리웁니다. 아마 향수에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셨을 이름, 오우드(한국어로 '우드'로 표기하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다른 나무의 향들과 차이를 두기 위해 저는 '오우드'라고 표기할께요.) 아라비안 어로 오우드는 stick(나뭇가지) 입니다. 럭셔리 퍼퓸 브랜드, 니치 퍼퓸 브랜드에서 가장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향수들 중에는 이 오우드를 함유한 향수들이 많습니다. 프랑스 럭셔리 퍼퓨머리인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오우드 라인은 바로 그런 오우드의 진가를 지극히 프랑스적인 해석으로 고급스럽게 만나볼 수 있는 향수 라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옛날부터 그 향을 가치있게 보았습니다.  기원전 1400년경에 적힌 인도의 산스크리트 베다스의 책에도, 바이블에도, 그리스의 약학자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의 책 '약물지(De Materia Medica)'에도 그리고 12세기에 편찬된 <삼국사기>에는 신라시대에 이 향을 유입되었고 신분계급에 따라 사용케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우리와 함께 오랜 시간 해 온 향이기도 합니다.


오우드는 육지에서 나는 천연 향수 원료 중 가장 비싼 향료로도 유명합니다. 인공적으로 재배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인공향료를 섞어낸 가품들이 시장에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150개 이상의 화학물질로 구성되어있고, 나무의 나이, 종, 지역, 오일 추출경로 등에 따라 물질들의 밸런스가 다른 오우드. 제가 받았던 원료는 중국산, 인도네시아산 2가지로 자연 상태 그대로의 것을 활용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화 <타짜>에서처럼 손모가지를 건 침향 심마니꾼 이야기와 함께요.) 귀하게 얻어진 원료이기에 작업하기 전 많은 상상을 해야했습니다. 작업을 할 수 있는 원료의 양 자체가 적으니까요. 늘 그랬지만 프랑스적인 표현이 아닌, 그 풍성하고 묵직하고 두꺼운 그들에게 동쪽 방향이기에 '오리엔탈'이라고 여겨지는 그런 향이 아닌 한국인에게 조금 더 편안하고 익숙한 고급스러운 향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매우 진한 특유의 향이 납니다. 어떤 이들은 이 향을 플로럴함과 프루티함이 감도는 오리엔탈 우디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자고 나란 누군가는 절에서 나는 향같다고 하고, 누군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향이라고도 합니다. 제게는 한없이 무거우면서도, 한없이 가벼운 향이라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하늘 끝을 향해 올라가던 첫 호흡의 터치를 가진 향분자가 어느 덧 저를 발견하고서는 따스하게 저를 안고서 땅을 향해 부드럽고 차분하게 저를 이끕니다.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이 소피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하늘을 걷다 내려오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내게 찾아온 오우드의 향분자로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밖이 아닌 나의 안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조향을 하는 동안 제가 들었던 곡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쇼팽의 녹턴 Op. 9 No.2 입니다. 이 곡은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타고 흐르는 음 하나 하나가 마음을 다독여주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합니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던 오전부터 시작해서 오후 늦게까지, 오우드 오일이 들어가기 전 오우드 향수의 시를 만들어줄 다른 향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향작업을 하던 시간. 여러 향들의 경우의 수를 만나고, 그 과정에서 만남의 기쁨을 느끼기도, 또 이별의 아픔을 겪기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공간, 창가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과 오우드의 향과 쇼팽의 음표들이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었습니다. 그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충분히 고독할 수도 있는 창작 작업이었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따스하게 나를 받아주던 향의 기운이 음악과 함께 내게 말을 걸어주었으니까요. 그리고 내 안을 들여다보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참으로 평화롭고도 고요한 그러면서도 따스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신동이었고, 그 누구에게서도 피아노 레슨을 받지고 작곡을 배우지도 않았던 쇼팽. 살아서 사랑하는 조국을 그리워했고, 결국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사후 자신의 심장이 보내졌던 사람입니다. 파리에서 프란츠 리스트와 친구가 되고, 스무살 때 이 곡을 쓰고 난 후 약혼녀와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고 그 때 연애 조언을 구했던 상대가 바로 자식도 남편도 버리고 파리로 왔다고 소문이 무성했던 여인 조루즈 상드입니다. 쇼팽의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아주 안 좋았던 걸로 유명하죠. 그러나 그녀의 적극적인 구애로 연인이 된 쇼팽. 6살 연상으로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쇼팽의 연인 조루즈 상드와 파리를 떠나머문 지중해의 마유르카 섬. 아름다웠던 사랑의 시절을 뒤로하고 결국 성격차이로 헤어지게 되는 음악사에 남는 사랑 이야기.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들라크루아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가 그린 쇼팽과 조루즈 상드



그 뜨겁던 사랑이 떠나고 난 후 앓고 있던 결핵이 심해져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 쇼팽. 사랑이 끝난 후의 아픔이란 다시 생각해보고 싶지는 않는 아픔이네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데, 그 말대로 저 역시 아프고나서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러나 역시 할 수만 있다면 아프지 않고 성숙해지고 싶네요.


감염되기 전의 침향 사진출처 - Hafizmuar at English Wikipedia



그가 그렇게 아프기 전에 썼던 이 곡은 제게 오우드의 향과 따스한 아침 햇살을 가져다줍니다. 원래 오우드는 향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나무입니다. 나무의 심재 안에서 형성되는 곰팡이로 인해 감염이 진행되면서 오우드는 진한 향을 가진 송진을 만들어냅니다. 향이 없는 나무가 곰팡이라는 역경을 만나 향기로운 나무가 됩니다. 그런 오우드 향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성공한 사람을 상징하는 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우드 입장에서는 곰팡이로 인한 아픔으로 이토록 성숙한 향기를 남기게 되는 셈이죠. 그런 아픔이 선사하는 진리를 표현하는 '진(眞)'향, 마음을 다스리게 되는 '선(善), 성숙해진 아름다움을 담은 '미(美)' 이렇게 세 가지의 향을 만들었습니다. 파리의 저녁, 파티에 갈 때 입는 그런 화려한 오우드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에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차분한 아름다움을 담아보려 했습니다.







중국의 협회에서는 저 이외에도 중국에서 조향 활동하고 있는 다른 이에게도 창작작업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들은 제가 만든 향이 좋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자신들이 아는 그 오우드의 잔잔하면서도 힘이 있는 그 향을 더 잘 표현되었다고, 프랑스적인 그런 향이 아닌 동양의 문화가 가지는 정적인 느낌이 향에 어려져있다고 했습니다. 향기에 담고자 했던 의미가 전달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글자도, 그림도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향으로 그것이 전해졌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만드는 사람으로써 기쁩니다.


중국 VIP들에게 선보였던 향수


'오우드'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그 때의 그 창가로 들어오던 햇살과

이 곡이 자동으로 제게 펼쳐지고 귀에 울려퍼집니다. 오우드의 그 진한 향과 함께요.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앉아있는 제가 보입니다. 햇살, 음악, 그리고 향기 속에서 다른 어딘가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아닌 그저 온전히 내 자신의 내면으로 가는 시간


분명 저는 음악을 듣고 있지만

머리는 명상을 하듯

마음은 편안한 침묵을 즐기던

그렇게 고요히 저를 바라보던 시간


그런 시간이 제게 오게 된 것은 어쩌면

상처입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모질었던 순간들 덕분에 만들어진 저였기에 만날 수 있었던 순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모자란 사람이지만요.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저를 포함해 지금 아파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은 평온한 향기로운 시간이 함께 하기를 바래봅니다.



쇼팽 녹턴 Op.9 No.2

https://youtu.be/UaewK5gZcq4


* 붙이는 말


첫 번째 작업 후 두 번째 작업요청을 받아 또 한번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베트남산 오우드까지 받아서 작업하게 되었고,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프랑스의 조향사분들이 저 귀한 천연 오우드 원료를 가지고 마음껏 조향을 하고 있다고 부럽다는 DM들을 받았습니다. 저도 정말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해 조향작업을 마치고 여름에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달 지나 중국에서 오프닝 행사에 초청해주셨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 때 행사장에 등장한 귀한 오우드(침향) 나무 조각품등을 보고 그 향을 맡아볼 수 없었던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자유로운 창작작업을 하도록 해주신 관계자분들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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