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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윤 Feb 15. 2021

간절한 한 모금

제법 공기의 무게가 느껴질 만큼 쌀쌀한 계절이 찾아오면, 먼지 쌓인 책장에서 꺼내어 읽고 싶은 책이 있다. 흔한 작가 이력 하나 없이, 달랑 우연히 커피 볶고 내리는 사람이라는 소개만 되어있는 책. 표지에 볼록하게 도드라진 눈물 세 방울이 시선을 끄는 책. 향긋한 커피 한 모금이 간절해지는 날이면 자연스레 손이 가는 책. 그리고 책을 펼쳐 들면 새록새록 스며드는 추억에 어느새 눈물 세 방울은 흘리게 되는 책.
바리스타 용윤선이 조용히 읊조리듯 써 내려간 《울기 좋은 방》에는, 일흔여섯 종류의 커피 냄새가 밴 일흔여섯 가지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실 나는 몇 년 전 커피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종류의 커피가 있었나 싶을 만큼, 다양한 커피 이름을 듣고 커피콩을 볶고 커피를 내렸다. 주위 사람들은 내게 커피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온통 커피 생각뿐이었다. 커피 볶는 사람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그녀의 이야기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이 커피 어때요?”
“독특한데…… 고무 향이 나요. 나는 별로예요.”
“별로인 것이 당신 같잖아요. 히히.”
 
그녀는 사람에게 커피를 내려줄 때, 그 사람과 닮은 커피를 내려주거나 그 사람이 맡아보았으면 싶은 향의 커피를 내린다. 냄새만큼 정확한 기억은 없고, 냄새는 기억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군데군데 흘러넘친 커피 자국과 함께 그 기억 속에는 항상 사람이 자리한다.   
살아보니 책 읽은 것과 여행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이 남는다고 하지만 가장 먼저 슬며시 사라지는 것이 사람이라며, 자신의 곁을 떠난 사람들을 기꺼이 잊고 살겠다고 담담히 말한다. 하지만 《울기 좋은 방》에는 온통 잊지 못할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나는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 앞에서 커피를 마셔요.”
 
몇 번이나 함께 커피를 마셨던 사람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데, 그 사람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단다. 그저 그 사람을 앞에 두고 창밖만 바라봤다고 살짝 후회도 한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과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던가. 숱하게 커피를 마셨지만 제대로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마신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커피에 얽힌 그녀의 사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나 또한 내 추억 속의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만다.
 
“아무리 걸어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더라고요. 많이 걸으면 내가 바뀔 줄 알았는데 돌아오니 결국 예전의 나였어요.”
 
그녀는 함께 있는 사람과 단 한 번도 온전히 섞이지 않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자신에게 여행은, 다시 이렇게 태어날까 봐 어떤 노력이라도 해보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걸어 다니며 쓸쓸함을 털어내려는 듯 여행을 한다.
 
당신,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당신, 이란 말은 꽃 같다. 나는 당신, 이라는 말에 오랫동안 몰입해왔다. 내가 말하고 쓰는 당신은 한 사람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그러하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녀가 커피를 내리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결국 ‘사람 곁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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