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혼자서’란 말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혼자 술 마시는 남녀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가 하면, 혼자 밥을 먹거나 홀로 여행을 떠나는 이도 늘어나는 추세다. 커피숍에 가면 홀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노트북이나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다. 언제부터 이렇듯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바라게 된 걸까.
형제자매 많은 집에서 자란 나 역시 늘 나만의 공간을 찾아다녔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곳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안도감을 느끼고 일상에 지친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담백한 문체로 풀어나가는 소설 키친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데뷔작으로, 소설 속 주인공 ‘사쿠라이 미카게’에게도 그녀만의 치유 공간이 있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나와 부엌이 남는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 그나마 나은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미카게는 그런 할머니마저 여의고 천애 고아가 된다. 혼자가 된 후 그녀는 매일 부엌에서 잠이 들었는데, 윙윙 소리가 나는 냉장고 옆에서만 편히 잠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죽는 순간이 오면 그녀는 부엌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혼자 살 궁리를 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기적이 찹쌀 경단처럼(작가는 실제 이런 표현을 썼다!) 찾아온다. 꽃을 좋아한 할머니가 생전에 자주 다니던 꽃가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다나베 유이치가 미카게를 찾아온 것이다. 용건은 단 하나, 홀로 설 준비가 될 때까지 다나베 집에서 함께 지내자는 것. 미카게는 뜬금없는 그의 제안을 무작정 받아들인다.
유이치는 엄마와 둘이서 살고 있었는데, 사실 유이치의 엄마 에리코는 트랜스젠더였다. 에리코도 예전에는 남자였고 아빠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유이치가 어릴 적 아내가 병으로 죽어버리자, 유이치의 엄마로 살기 위해 스스로 여자의 길을 택한다.
미카게가 이처럼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가족의 구성원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다나베 집의 부엌을 한눈에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키친은 미카게에게 그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받는 안식처다. 다나베 집 부엌은 미카게가 꿈꾸는 안식처의 조건을 충분히 갖춘 공간이었고, 이는 그대로 유이치와 에리코를 향한 신뢰로 이어졌다. 이렇게 미카게가 다나베 집으로 들어오면서 셋의 묘하고 따스한 동거는 시작된다.
물건, 그것도 큼직한 전자제품 사들이기를 좋아하는 다나베 집 사람들. 유이치는 워드프로세서를 사서 미카게와 함께 엽서를 쓰기도 하고, 에리코는 커다란 주서기를 구입하며 받은 유리컵을 미카게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두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미카게는, 훗날 그리워할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한없이 되풀이되는 낮과 밤 속에서 우리는 시간에 무감각해지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지금 이 순간도 어느새 과거가 되고 만다. 저자는 에리코의 인생철학을 통해 절망 속에서도 빛을 찾으라고 말한다.
정말 홀로서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뭘 기르는 게 좋아. 아이든가, 화분이든가.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게 되거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살다 보면 누구나 외로울 때가 있고, 반드시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미카게가 자신에게 찾아온 절망과 외로움을 키친이라는 공간을 통해 극복해냈듯, 우리 또한 삶의 역경에 지지 않도록 자신만의 키친을 만들어 두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