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지윤 Feb 15. 2021

나, 라는 이름의 부족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이름 선물 받는다. 사람을 처음 만날  가장 먼저 묻는  또한 이름이다.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리의 뇌는 멋대로  사람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한다. 이름은   사람 자체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황정은의 소설 <계속 해보겠습니다>에는 독특한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라, 나나, 나기. 독백을 하듯 그들은 어쩌다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를 시작으로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다. 아버지는 금주 , 어머니는 애자. 자매가 어릴  금주 씨는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죽었다. 금주 씨가 죽은  애자는 빈껍데기만 남은  무엇에도, 심지어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애쓰지 않고 살아간다.
어느  눈부시게 아름다운 단풍 꿈을  소라는 나나가 임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만, 선뜻 나나에게 물어보지 못한다. 사실 소라는 엄마가 되길 꺼려한다. 사는  자체가 고통스럽고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이라곤 전혀 없으니 굳이 애쓸 필요도 없다며 입버릇처럼 말하는 애자. 소라에게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된다는  그런 애자가 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매에게 애자는 아름답지만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엄마였다.

나는 어디까지나 소라.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다.
멸종이야.
소라, 라는 이름의 부족으로.

자매는 금주 씨가 죽은  이사  반지하방에서 나기와 만난다. 나기는 소라에게 ‘우리는 모두 각자 이름을 지닌 부족이며  부족의 족장이자 부족민은 오로지 자신뿐이라는  일깨워준 소년이다.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나기의 엄마 순자 씨는  건넛방 자매의 도시락까지 챙겨준다. 투박하지만 새끼를 먹여본 손맛이 담긴 도시락을 먹고 소라와 나나와 나기는 성장한다.
소라와 나나는 엄마를 말할  이름 그대로 애자라고 부른다. 보통 엄마가  이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호칭을 따르기 마련이다. 소라와 나나는 엄마 역할을 놓아버린 애자를 순순히 엄마라고 부를  없었던 걸까. 애자는 그저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서서히 시들어가는  여자일 뿐이었다.

싫어,라고 나나는 말했다.
싫으면서 그렇게 챙겨주는 , 징그럽고, 싫어.

소라는 나나의 임신을 확인한  그녀를 챙겨주려 하지만 나나는 그런 소라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 엄마가 된다는  애자가 된다는 .  다른 애자가  나나가 싫으면서도 동생이기 때문에 챙겨줬던 소라. 나나는 어릴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친절을 베풀던 아이들처럼 행동하는 소라가 싫었다. 금주 씨에게 전심전력하다 그가 죽은  이제 존재마저 희미해져 가는 애자를 보며, 나나는  태어날 아기도 아기아빠 모세 씨도 감당할 만큼만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모세 씨의 부모님을 만나러  나나는 그곳에서 흔히 평범하다고 말하는 가족의 모습을 본다. 시선은 TV 고정한  무미건조한 대화를 이어가는 가족. 그리고 아버지의 요강. 모세 씨의 아버지는 요강을 사용하는데, 요강의 청소는 자연스레 어머니의 몫이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세 씨를 나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은 남이 아닌가요?
남이 아니죠.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않는 자매. 소라와 나나는 세상이 말하는 평범한 가족의 형태를 경험하지 못했다. 어쩌면 자매는 애자를 가족 구성원인 ‘엄마라는 틀에 가두기보다  인간으로 바라봤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애자는 엄마가 아닌, 애자라는 이름의 부족이었다.
그런 자매를 보살펴주는  다른 부족, 나기. 어릴  그는 어항  금붕어를 괴롭히는 나나의 뺨을 때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으니까 너는 아파. 그런데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 전혀 아프지 않은 채로 너를 보고 있어. 그럼 이렇게 되는 건가? 내가 아프지 않으니까 너도 아프지 않은 건가?

남들과는 다른 사랑을 하는 나기. 상대에게 거부당하고 상처 받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사랑을 지켜보는 그였기에 나나의 행동을 그대로 지나치지 못했으리라.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억해둬,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야.

, 특히 약자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한없이 약자인 이들은 가족이다. 그래서일까. 가족이기 때문에 양보와 희생을 당연히 여기기도 한다. 상처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다. 남이라고 여겼다면 어땠을까. 나기의 날카로운  말은  가슴속에 깊이  박혔다.
 
결국 나나는 혼자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물론 나나의 옆에는 소라와 나기와 순자 씨가 있다. 어쩌면 세상에게 그들은 무의미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아니라고 나나는 말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이름을 선물 받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소설을 덮으며 나는  가족 역시 각자 이름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벽장 속의 깜찍한 동거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