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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아 Nov 09. 2017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줄타기

여행을 앞둔 너에게 #1

1년 전의 나- 

나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너무도 절실했어. 지금까지 너에게 적었던 것들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말이야.

그래서 휴학을 하고 잠깐의 시간을 가졌는데, 결국 그조차도 만족하지 못하고 여행하는 방법을 선택했지.

저번에 말했듯이 인터넷을 통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알아보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시간을 내어 만나게 된다고 해도,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친구들을 만나게 되거든. 

는 일상을 잠깐 접어두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일상이라는 놈은 닦아도 닦아도 계속 묻어나와서 떨쳐버리기 힘들었던 거야.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혼자서 여행이라는 것을 떠나보기로 했지.


오늘부터는, 

같은 선택을 하고 1년 전의 이 자리에 있을 너에게 하고 싶은 말도 좀 적어볼까 해.

특히 혼자서 하는 여행이니만큼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을테니까 말이야. 어디까지 준비를 해야 하는지 감도 잘 안 잡힐 수도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하라고 말하기 전에, 그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둬야 하는 것이 있어.

여행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도, 그렇다고 지극히 일탈적인 것도 아니라는 거야. 여행을 한다는 것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줄타기와 같아.


흔히 우리는, 여행은 일탈이라고 생각을 하지.

실제로 '여행'이라고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하면 '이벤트', '허니문'과 같이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만드는 것들이 연관검색어로 뜨거든. 

나 같은 경우에도 처음 여행을 할까, 생각할 적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좀 더 현실이나 일상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내 고민들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이 있었지.


하지만 여행은, 특히 혼자 떠나는 여행 그리고 중/장기 여행은, 현실에 가까워.

오늘 내가 얼마를 사용할 것인가(혹은 오늘 내가 얼마를 사용할 수 있는가), 혹시 내가 이것을 하게 되면 다른 일정에 차질은 없을 것인가 등 되려 새로운 생각거리가 생기기도 하거든.

일주일 내의 짧은 여행이라면 여행지에 가서 그 아무리 살찌는 음식이라도 다 먹고 다닐텐데, 그 이상이 되니까 외식에만 의존하기에는 돈도 많이 들고, 몸에도 좋지 못해서 집에서는 자주 하지 않았던 식단 고민까지도 하게 되고 말이야. 

게다가 여행 분위기에 도취되어 다니기에는 이 세상에 무서운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아. 특히 해외 여행을 갈 때는 소매치기나 총, 테러 등 우리나라에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까지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지. (방심하다간 나처럼…. 내 지갑...잘 있니..?)


이렇듯, 여행을 할 때에도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고 있을 필요가 있어.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여행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네 삶의 한 페이지라는 것을 잊지 말고 말이야.




하지만 내가 '여행도 현실이야, 정신차려 이 자식아.' 하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야.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거든.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껴보고 싶어서. 일상과는 다른 경험들을 하고 싶어서.

여행을 하면서 현실 감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안 되지만, 계속해서 현실적인 고민만 하다가 하고 싶은 경험들을 하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바보같은 일이야.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그 언젠가 그 앨범들을 넘겨볼 때, 또는 그 때 갔던 곳에 대한 글이나 사진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지금의 여행을 돌아보며 후회하게 되는 타이밍들이 존재할 거야.

그런데 이때 우리가 후회하는 것은 '아, 나 여기 갔을 때 돈을 진짜 많이 썼어. 바보 같이.' 같은 것이 아니라, '여기 가서는 이걸 못해본 것 같다. 아, 여기엔 못가봤는데?'와 같은 것들이야.

한 번 쯤은, 현실적인 고민들을 모두 떨쳐버리고 너 자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는 것도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


내가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사운드 오브 뮤직>이 촬영되었던 Schloss Leopoldskron이라는 곳에 갔었어. 

잘츠부르크 시내에서도 꽤 떨어져 있어서 무거운 배낭을 맨 채로 버스를 갈아타며 우여곡절 끝에 갔지만, 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들을 꼭 보고 싶었거든.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몇 십 번을 보면서 대사와 가사를 거의 모두 외울 정도니, 한 번 쯤은 가봐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Schloss Leopoldskron은 지금 호텔로 사용하고 있어서, 촬영에 쓰였던 곳 이곳저곳을 둘러보려면 호텔에서 투숙을 해야만 했지. 아니면 울타리 너머로 미세하게 보이는 호수만 볼 수 있었고. 

그래서 큰 맘을 먹고 1박을 묵었어. 내가 갔을 때는 꽃이 만발하거나 수풀이 우거진 때가 아니어서 완전히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지만, 영화 속에서 보았던 그 고요한 풍경은 그대로였어. 미리 다운로드 받아두었던 영화가 귀에서 흘러나오도록 하고, 호텔 로비와 마당을 거닐고 나니 나는 어쩐지 영화의 일부가 된 것 같았어.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 예쁜 정원도 발견해서 한참 머물기도 했고.


내가 만약 '안돼, 돈을 벌써 이만큼 썼으니까 이건 절대로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 돌아갔다면 나의 잘츠부르크 여행은 반쪽짜리로 남았을 거야. 그리고 다시 <사운드 오브 뮤직>을 틀게 되는 어느 날, 나는 '그때 저기만 못 가봤어.'라고 말했겠지.

가끔은 이렇게, 과감하게 한 번 나를 위해 선물하는 것이 있어야 여행 아니겠어?




그래, 여행은, 특히 혼자서 떠나거나 중/장기로 떠나는 여행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줄타기 같은 것이야.

맘대로 길을 잃어도 되지만, 온전히 헤매서는 안 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혹은 추구하고픈 이상이 있을 때 동력이 주어지고,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때 그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듯- 결국 여행도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너무 들뜨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침착하지도 말고.

적당한 설렘과 적당한 긴장감 속의 그 떨림을 기억하면서 즐기기를 바라.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칠게.



From. 삶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1년 뒤의 내가,

To. 여행을 하겠다고 마냥 신나있을 1년 전의 나에게.


Cover Picture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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