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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아 Mar 18. 2018

3월 15일과 공중전화

가끔은 그리운 나의 조급함에 대하여

  "나 우산을 두고 와서, 잠깐 다녀올게."

  "응. 천천히 다녀와."


  '기다림'으로 가득찬 시간을 접한다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다. 항상 시간을 쪼개가며 살고, 이렇게 기다림으로 가득해서 공허한 시간에는 손에 들고 있는 책이나 핸드폰이 그 공백을 메워주고는했으니까. 다만 모든 시간이 기다림이라는 한 가지 생각으로만 가득차서, 오히려 눈과 코와 귀와, 모든 감각들은 자유로워지는 이 순간. 나는 괜히 그 시간이 반가워서 총총걸음으로 사라진 후배의 뒷모습을 두고, 뿌옇게 내려앉은 비안개와, 그 사이를 헤쳐 나가는 사람들과, 그 모습을 담은 캠퍼스를 눈과 코와 귀와 피부로 담는다.

  그리고 발견한, 공중전화 한 개. 괜히 수화기를 들어서 귀에 대본다. 적막. 혹시나 싶은 마음에 빨간 긴급전화 버튼을 누르자 뚜- 하고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뚜 소리가 날 때 1541 누르면 돈 없이도 전화 걸 수 있다?"
  "뻥치시네! 어떻게 돈도 없는데 전화를 거냐?"
  "아냐 진짜야! 우리 언니가 말해줬어!"

  "맞아! 그거 말고 또 다른 번호도 있댔어!"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갔을 때, 누구도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 동전을 넣어야 전화를 걸 수 있던 공중전화에서 긴급전화라고 적힌 빨간 버튼을 누르면 돈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아무도 콜렉트콜이라고 하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을 때의 모습도.


  "야 얘 1541인데 154만 누르고 안된다고 그런다! 푸하하"

  "이씨....아니야! 나 할 수 있는데 잠깐 깜빡한거야!"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라 어떻게 할 줄 몰랐던 것임에도, 할 수 있다고 우기면서 이 친구가 내가 진짜 못하는 걸 알게 되면 어쩌지, 하고 마음 졸이던 나의 어린 날도. 지금이라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배울 것을, 하는 마음에 괜히 웃음이 나온다.


  철컥-

  수화기를 내려놓자 공중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생각해보면 그 때는 전화 하나를 거는 데에도 얼마나 마음을 많이 졸여야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내가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가 집에 있을까 걱정하게 된다. 통화연결음이 뚜르르 날 때 '제발 받아라 제발 받아라'를 몇 번이나 마음 속으로 외쳤는지.

  그러다가 전화를 받으면 그것도 걱정이다. 콜렉트콜을 걸고 상대가 받으면 항상 '잠깐 연결된 동안 본인을 알려주세요' 라는 말이 나오고 5초 정도 연결이 되는데, 그때 나야! 하고 외치고는 상대가 들었을지, 아니면 못 듣고 그냥 끊어버렸을지 마음을 졸이게 된다. 나라고 하지 말고 이름을 말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그 짧은 순간에 몇 번이나 든 것인지.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마음을 졸이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고 배울 줄도 알게 되었고,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받지 않아도 콜백을 해달라는 문자를 남겨두고 나의 일을 할 수도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콜렉트콜은 걸 일이 많지 않다. 분명히, 그때의 조급함에서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가끔, 그때의 조급함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그때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그리운 걸까, 아니면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때의 사람들과 순간들이?


  "무슨 생각해? 얼른 가자." 

  "어? 어, 왔어? 그래 가자."


  저 전화기가 가장 최근에 전해주었던 소식은, 누구의 소식일까. 그 사람은 그때의 나와 같은 조급함으로 전화를 걸었을까?

  질문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우산을 되찾은 후배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Cover Photo by Amelia,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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