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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Feb 28. 2020

'바이러스'라는 이름의 일상

별 일 아닌 듯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바이러스 하나가, 일상의 틈새로 새어들어 꽤나 촘촘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씻지도 않던 손을 열심히 씻고, 마스크를 쓰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말도 아낀다.


예전부터 말많던 사이비들은 여전히 말만 많고,

예전부터 탈많던 사이비들을 문제를 키우고,

예전부터 사이비일까 긴가민가 했던 사이비들은 실체를 드러낸다.


사실 그런 것들은 그 자체로 위태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있던 균열, 그 살얼음 판 위로 툭 던져진 돌덩이 같은 것. 어차피 올 것이라 여겨지던 것들이기도 했을 테다.  


모처럼 점심을 먹으러 찾아간 남대문 갈치 골목은 휑하다. 점심시간이면 북적이던 식당도 오늘은 두 테이블 남짓다. 평소에는 주문 넣기도 바쁘던  사장님이 오늘 따라 잘 가라는 인사를 여러 번 해주신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로수 아래, 상인들이 배달을 시켜먹고 남은 점심 상들이 있다. 노숙자 한 명이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남은 잔반을 먹고 있다. 그렇게 그는 가로수 아래의 점심상들 하나하나 찾아 자리를 옮긴다. 약국에는 아직 마스크가 들어오지 않았다는데,누군가의 삶에는 여전히 코로나 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것들이 있다.


언제나 그렇듯  불행은 예상했던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팀원의 동생이, 교통 사고로 세상을 무연히 떠났다고 한다. 누군가의 삶에는, 아니 우리 모두의 삶에는 그렇게 마스크 따위로는  막을 수 없은 것들이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씻지도 않던 손을 자주 씻는다.아마도 조금만 더 지나면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엄지와 검지 사이, 중지와 약지 사이. 항상 사용하면서도 무감히 대하던 손이 그렇게 존재를 증명한다.


기실 손을 씻을 때마다 또 조금씩 놀라곤 한다. 손으로, 몸으로 일을 하는 직업도 아닌데 번번히 검은 비눗물이 흘러내린다.겉으로 봐서는 몰라도 알게 모르게 그렇게 묻는다.


아니다,

어쩌면 '손'이 아니라

'삶'에 그렇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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