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라는 병

by 아룬


내가 '나'라는 것은 어떤 병적인 징후 같은 것이었다. 고쳐보려 해도 어쩔 수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습관과 감정들, 그로 인해 해버린 행동들과 뒤늦은 후회들.


별 대단하지 않은 것들에 집착하여 누군가를 비난하고 화를 내지 않아도 될 순간들에 화를 낸다. 생각해보면 그리 중요할 것도 아닌 것들에 원칙과 규칙으로 세워 두고서 그 틀을 벗어나면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거나 내 얘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고 속으로 화를 삭인다.


소소한 것들에는 용기를 내었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비겁해진다. 거창한 말들을 내뱉지만, 행동은 따르지 못한다. 말로는 나라를 구해도 몇 번을 구했을 거처럼 굴지만, 아마도 고문장에 끌려가 발톱 하나만 뽑혔어도 변절을 했지 싶다. 하다 못해 밥 먹는 습관 하나 고치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꼭꼭 씹어야지 하고서는 또 어느 새 밥을 허겁지겁 먹는다. 누가 옆에서 아무리 알려줘도 소용이 없다


그날도 그런 오후였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일로, 회의 중에 성질을 한 번 내고는 나왔다. 따뜻한 햇볕을 쬐며 담배를 입에 물다 뭔가 스스로 난감하였다. 그러다 그런 하릴없는 생각들이 스며들었다. 한 평생을 함께했지만, 한 번도 '나'란 존재에게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 '내'가 '나'라는 존재로 선고받았다는 것. 나는 어쩌다 '나'라는 병에 걸려 이리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아니다. 그때가 아니었다. 고작 그런 일 때문으로 나 같은 인간이 반성을 했을 리 없다. 반백년 가까이를 지 ‘쪼대로’ 살아온 인간이 그렇게 쉽게 반성 같은 걸 할 일이 없다.


그러니까 그런 날의 오후였다.


10여년을 함께 한 이가 이사짐을 싸고 떠난 오후. 사무실에 있어봤자, 어차피 눈 앞만 그렁그렁할 테니, 오후 반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매일 열던 현관문을 차마 열 수 없었다. 그 안의 달라진 풍경들을 대할 자신이 없었다. 가만히 문고리를 부여잡고서 애꿎은 신발만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문을 열지 않고 가만히만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공간에는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배어 있는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다. 이삿짐이나 잘 챙기라, 뒷정리는 알아서 하겠노라고 말해 두었는데도, 그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여기저기 걸레질을 하고 떠난 마음들이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망연히 앉아만 있었다.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집 안 여기저기의 물건들을 옮겼다.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혼자 살아온 사람인 마냥, 그렇게 누군가의 빈 자리를 메우고, 흔적을 지웠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서 깨달았다. 딱히 그 무엇도, 딱히 그 누구의 삶도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는 걸. 그 누구의 삶에도 관심이 없어져서, 어느 새 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조차 무감해져버렸다는 걸. 시작하지도 못한 하루가 이미 시체가 되어 널부러져 있었고, 그 아침의 눈가에는 이미 서늘함이 배어 있었다.


돌아보니 걸어왔으나 걸어온 지도 몰랐던 길들이 뒤에 있었다. 수영장 속의 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굳어가는 콘크리트 속이었다. 서서히 굳어서 지나온 궤적을 만들었고, 이제 더 이상 자유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그 더께들이 들러붙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 그 꾸덕꾸덕 말라붙은 콘크리트 안에는 내 못난 성정과 습속,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이 섞여 있었다.


어디로 어떻게 더 걸어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걸어가야만 날들이 이어졌다. 어떤 날의 나는 내가 너무 못마땅했고, 어떤 날의 나는 내가 못내 안스러웠다. 더디 아파도 될 것들에 수이 아파하게 된 날의 오후에는 어떤 것도 반갑지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무용한 자기 연민이었고, 그 나름으로 추하였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이 미안했다. 무엇에 대해서인지, 누군가에게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총체적 미안함. 어떻게 버티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한다. 꾸역꾸역 보낸 하루를 그렇게 씻어내었다. 그렇게 하루치의 나를 하수구로 흘려 보내어도 깨끗해진 것은 아니어서, 꾸덕꾸덕한 마음의 더께가 남아 있었다. 그것을 씻어내는 법은 내가 미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들이었다.


그렇게 10여년을 이어온 결혼 생활이 이혼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마음 맞는 이들로 꾸린 회사에서는 어느 새 화만 내고 있는 상사가 되어 있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억지로 잠이 든 겨울밤이었다. 머리가 쪼개질 거 같은 두통을 느끼며 새벽에 잠이 깨었다. 몸은 식은 땀으로 가득했고, 옹그린 채 두터운 이불을 싸매고 있어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무얼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서 손에 잡히는 패딩을 아무거나 하나 걸쳐 입고, 한강으로 나섰다. 문을 열자 다가오는 찬 기운이 식은 땀에 닿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눈 앞이 하얗다. 아니 세상이 하얬다.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괜히 눈물이 날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랬다, 아름다운 것들은 늘 그대로 있었다. 다만 나의 눈길이 닿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 흰 눈을 뽀득뽀득 밟으며 강가를 거니는데. 다시 좀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다시'라니. 어쩌면 단 한순간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 '다시'라는 말은 거짓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제라도’ 좀 제대로 살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망가져 버린 인생이라고, 망가진 채로 두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냉큼 제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제대로 사는 법을 알았다면 애초에 그렇게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 답은 모른다. 세상에 그 답을 아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니 있기나 할까.


인생(人生)이라는 말보다 여생(餘生)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 나이가 되도록 나를 당혹케 하는 것은,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스스로 '성숙했다',’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었다.


철이 없던 아이는, 그냥 그대로 나이만 들어갈 뿐 그 모양 그대로였다. 철이 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조금은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졌다. 그 고민의 시간들이 조금은 나를 바꾸었으면 하는 바램이랄까.



누군가는 살면서 굳이 겪지 않았을 일들을 겪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은아니다. 허나 겪지 않았더라먼 여전히 나는 내 잘난 맛에 사는 미몽에 빠져 여전히, 못난 나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뭐 지금도 그리 잘 난 것은 아니지만.) 다만, 그런 경험들 또한 이번 생을 살아가며 거쳐가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무겁게 시작했지만, 사실 내가 찾고 싶었던 질문은 꽤 소박한 것이었다.


“나는 대체, 왜 이 모양인가?”


그러게, 말이다.



P.S 간만에 다시 연재해 봅니다. 뇌과학을 다루지만 뇌과학 이야기는 아니고, 불교도 곁들이지만 종교 이야기는 아닙니다. 보시기에 흥미로우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