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
황혜경, <두부의 규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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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무너지는 것에 환상을 가지던 때가 있었다. 멋있어 보이니까.
모두가 박수칠 때 떠나는 뒷모습처럼, 내 할 일을 끝내고 조용히, 홀연히 사라지는 것 정도가 고요하고, 부드럽게 무너지는 우아함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행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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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안다. 우아하고 완벽하게 무너진다는 건,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그 정도 일상에서나 가능하다는 걸.
아름답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은 없다. 수 시간 불린 몸집을 짓이겨 짜내고, 짜내고, 짜내어 겨우 모든 물기를 빼내 굳어진 두부에게도 고요한 무너짐이란 없다. 우물우물. 입 속이 소란스럽다.
아무렇게나 두부를 자를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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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페어링은 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와 영화 블랙스완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