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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오뚜오 Jan 22. 2016

여행(旅行)의 의미

                                                                                                                                                                                                                                                                                                            


 사람들은 보통 마음에 이유모를 분주함이 생겨 여유롭지 못할 때,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을 갈망할 때 여행을 떠난다.  나 또한 여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어쩌면 조금 더 별났는지도 모르겠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너무나 따분했고, 특히 기계처럼 매 번 반복되는 일을 하는 것이 몸서리치게 지루했다. 예를 들어 매 초 마다 제품의 일부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생산 라인의 기계라면, 나는 그저 그 일의 완성 간격을 매 초에서 매일, 매 달로 늘린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틈이 나는 대로 주저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추운 한 겨울 중국에서 두 달간 여행을 다니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낯설거나 이국적인 광경이나 모습이 그리워져 떠나온 길에서도 현실에서의 나 자신을 버리지 못했던거다. 어느 학교에 다니고 무슨 공부를 하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으니 나는 이 곳에 그저 놀러 온 것이 아니랍니다 하는 자기위안 같은 것들 말이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하는 이야기들은 어디에서 왔어요 무슨 일을 하나요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였고, 그 때마다 나는 불현듯 나의 돌아갈 곳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스스로의 안정감을 느꼈더랬다. 


 눈 앞에 마주한 불투명한 현실이 싫어 먼 길을 떠나 왔는데, 그 곳에서는 현실의 끈을 놓지 못하고 위안하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한 것이 참으로 창피하고 한심했다. 별개의 나를 만나고 싶었는데, 껍질이 다 벗겨진 초라하고 누추한 스스로의 모습에 누더기 옷을 입히고 있는 자신을 처음으로 대면했던 것이다. 역시 인간이란 아무리 싫어도 살아온 곳과 환경에 대한 집념을 떨칠 수가 없단 말인가.


 하지만 이미 떠나온 길에서 이러면 어떠하고 저러면 어떠하리. 두려움과 초조함, 불확실함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르게 보낸 시간들은 생각보다 훨씬 소중했다. 차를 놓치면 놓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설렘을 즐기는 순간들에 쾌감을 느꼈으며, 타야 하는 배를 놓쳐 한참을 떠나간 배를 바라볼 때, 나는 바보같게도 그 순간이 세상 그 모든 것보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길거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차의 향기만 맡아도 너무나 행복해했고, 왜인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누구보다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신호등에서 건너편에 서 있는 낯선 사람에게 손이라도 흔들고 싶은, 그런 들뜬 마음을 내가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살아 있다는 것을 심장 아닌 마음으로 느낀 몇 안되는 순간들이었다. 


 온전히 나한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걸음이 가고 싶은대로 걸어가다 해가 지면 그 곳에서 머무를 수 있는 떠돌이 생활, 거리를 걷다가 예쁜 꽃을 한참 동안이나 서서 쳐다볼 수 있는 시간, 평소 같으면 급하게 봉다리에 넣어주는 만두를 들고 뛰어야 하는 아침 시간에 아기를 안고 만두를 파는 아주머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여행은 항상 나에게 이렇게나 소중한 시간들을 선사했고, 잠시나마 느리게 걸어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래서 입김이 푹푹 나오는 얼음장 같은 8인실 유스호스텔에서도,18시간을 멀미하며 탔던 담배 연기 그득한 기차에서도 나는 꽤나 자유로웠으며 행복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정도면 된다. 꿈꿔왔던 여행은 아닐지어도, 다녀온 후에도 기대만치는 내가 변하지 못했더라도, 낯선 땅 낯선 도시에서 가장 들떠있던, 가장 자유로웠던 모습을 함께하고, 그런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생각 만으로도 돌아온 현실에서는 큰 위안이 된다.

 너무 추웠던 겨울, 손발이 꽁꽁 얼어버려서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의 온기를 더 충만하게 느낄 수 있었고, 따뜻한 날이면 절대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것들이 훨씬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겨울을 여름처럼 보내고, 여름을 겨울처럼, 계절을 넘나드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것, 그게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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