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별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가 자네에게 가르쳐주었는지 모르지만 별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그냥 별일뿐이네. 사랑하는 자에게 별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배고픈 자에게 별은 쌀로 보일 수도 있지 않겠나."
소설로 읽은 은교는 영화보다 훨씬 섬세한 심리 묘사와 표현들, 흡입력 있는 문장과 스토리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영화로 봤을 때에는 아무래도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한 흥미 위주의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소설로 읽은 은교는 단순히 유희적이거나 자극적인 소재로 시선을 잡아끄는 소설이 아니었다. 특히나 시인 이적요와 서지우 간의 미묘한 감정선과 애증의 관계가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인간 본연과 본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소설에 그대로 묻어 나왔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서지우는 이적요에 대해 "나의 사랑하는 선생님."이라고 표현한다. 이적요 선생님에 대한 서지우의 솔직한 감정은 이적요에 대한 열등감이었을까, 아니면 은교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모시던, 존경하던 이적요 시인에 대해 스스로 가지고 있던 자신의 환상을 깰 수 없었던 것일까.
사실 우리는 대체로 늙은이의 사랑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가 그러하듯 젊은이의 사랑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예뻐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늙은이는 더욱 외롭다. 늙은이의 불 같은 사랑은 젊은이들에게 용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젊은 사람들과 다를까?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모든 방면의 욕망이 줄어들게 될까? 우리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사랑의 불씨를 원천봉쇄시키는 것은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한두 살 더 먹는다고 큰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듯이, 노인과 어린아이 또한 그저 인간일 뿐이다. 여전히 본능적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늙은 외모와 누적된 경험치 일뿐, 노인도 똑같이 배가 고프고 졸리다. 나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 욕망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