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영역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학창 시절 내가 제일 싫어하던 과목은 다름 아닌 언어영역 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었던 문제는 "작가의 생각을 고르시오.", "이 글의 주제를 고르시오.", "무엇 무엇이 의미하는 바를 찾으시오."였다.
세상에 어떤 일이든 기본적으로 쌍방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글을 읽는 데에 있어서 획일화된 생각이나 주제를 꾸역꾸역 집어넣어야 하는 언어영역이 싫었다. 그럴 바에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제를 외우면 되지 굳이 구구절절 그렇게나 긴 글에 시간을 투자해 읽을 필요가 없다는 거다.
한낱 비루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언어영역 시험지를 보고 우리나라 어른들이 내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습관을 들이려 이렇게 틀에 박힌 시험문제와 공부방법을 강요하며 내 생각을 몰살시키는가 생각도 했더랬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하게 사고하라 얘기하며 어떻게 너는 지금 그 글을 '틀리게' 읽고 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냐는 말이다.
즐겁고 화려한 필력을 뽐내는 글도 내가 슬플 때 보면 슬프다. 우울한 느낌의 글도 내 마음이 기쁘면 그다지 우울하지 않다. 같은 글도 읽는 사람에 따라 수백 가지 감정이 교차할 수 있고, 사람마다 얻는 교훈도 제각각이다.
이렇게 뷰티 인사이드 뺨치듯이 읽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게 느끼고 이해하는 글의 매력을 온전히 무시한 시험이 바로 언어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고등학생들 논술과외를 몇 번 해보고 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착실히 수행해내는 학생들의 글이 훨씬 진부하고 단순하다는 것. 그 아이들은 자신이 생각한 답이 아닌 세상이 원하는 답들을 몇 천자씩 뱉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말하지 못했다. 형식도 문법도 엉망이지만 지 멋대로 생각을 써 내려가는 통통 튀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충격도 받고, 이런 생각을 한 것이 대견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글로는 당시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전부와도 같은 대학 입시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이 옳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아이들을 주조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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