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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sm Dec 29. 2019

사고를 통해 잠시 내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70세 노모는 그렇게 쿠팡의 열혈 쇼퍼가 되셨다

내 취미는 등산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등반이다.


등산과 등반을 구분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 굳이 구분을 한다면..


등산정해진 탐방로를 따라 산을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면, 등반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일반인들이 오르지 못하는 암벽이나 빙벽을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017년에 등산학교에서 6주간의 암벽등반 교육을 이수하고, 그 이듬해인 2018년 6월에 전문 산악회에 가입한 후 매주 일요일마다 꾸준히 등반을 했다. (서울 근교의 북한산 인수봉은 수도 없이 올랐고, 도봉선 선인봉을 비롯하여 설악산 릿지 코스도 올랐다.)


그렇게 암벽등반에 미쳐가던 중, 2019년 5월에 난 사고를 당했다.

당시 대통령기 등산대회에 산악회 대표로 참석하여 선배들과 팀을 꾸려 열심히 산을 뛰어가던 중에 실수로 발목을 심하게 접질렸고 이를 악물고 완주는 했지만 발목 인대 파열로 약 2개월간 깁스치료 진단을 받았다.


발목을 접질렀고, 인대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T . T

매주 가던 산에 갈 수 없게 되어 답답하고 우울증이 걸리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한 가지 놀라운 반응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어머님께서 너무 좋아하고 계시다는 것!


등산대회에서 발목을 다친 날, 대회장인 부산에서 올라와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님은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솔직히 좀 섭섭하기도 했고, '난 친아들이 아닌 것인가?' 하는 잡생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 아니, 아들내미가 다쳤다는데, 뭐가 그리 즐거우셔?

어머님: ㅎㅎ 그렇게 산에만 다니더니 꼬셔서 그래. ㅎ

나: ㅡ.ㅡ

어머님: 이제 당분간 산에 못 갈 테니, 일요일에 엄마 마트에 좀 데려다주고 그래~~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생각해보니, 산에 다니기 전에는 주말마다 어머님을 모시고 마트도 가고 여기저기 많이도 돌아다녔었는데.. 이제 일요일마다 아들내미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어디를 가고 싶어도 운전을 못하는 어머님은 집에만 계셨던 것이다.


그러니, 어머님의 이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셈이다.

 

춘천 구곡폭포 빙벽등반


사실, 산을 다니면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오늘 산에 간다고 나왔는데, 와이프랑 한 판 했어
오늘 애들이 어디 놀라가자고 했는데, 애들 자는 사이에 몰래 나왔어~
(하산 후 뒤풀이 중에) 아이고... 마누라 전화 엄청 온다... 난 죽었어~


사실, 산이라는 취미를 가족이나 연인 등과 함께 나누면 좋겠지만 그러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등산(등반)이라는 것이 분명 좋은 운동이고 레저활동이긴 하지만,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취미를 나누기에는 정말 어렵다.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정말 집중해서 열심히 즐긴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내 주변의 다른 소중한 것을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산에 미쳐서 일요일마다 집을 비웠을 때, 어머님은 가끔 힘든 몸을 이끌고 마트에 가서 무거운 짐을 들고 오셨어야 했을 것이고.. 얼마나 아들내미가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그동안 나 자신만 생각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그들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어쩌면 산이 주는 수많은 교훈과 감동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오늘 모처럼 회사일로 일요일 산행을 못하고 출근을 했다가 집에 일찍 도착해서 어머님을 모시고 마트에 가려고 했는데... 어머님 왈.


쿠팡으로 다 주문했다


일요일마다 집을 비운 아들내미 덕분에,

어머님은 쿠팡의 열혈 쇼퍼가 되신 것이다! @.@


등반은 팀워크이다! (우이암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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