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읽을 땐 그저 그랬는데, 독서모임에서 토론하고 나니 조금 좋아졌고, 완독하고 나니 더 좋아진 책이었다.
50명의 등장인물들을 이렇게 짜임새 있고 섬세하게 엮을 수 있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고, 누구나 다 자신만의 사연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 물론 등장인물이 많으면 못 외우는 나였지만 그 관계도마저 찾아보며 독서하는 즐거움도 꽤 컸다. 다른 것보다도 내가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해주는 독서모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다시 좋게 느껴졌던 발제 책. 쟁여두었던 정세랑 작가의 다른 책도 얼른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웃음기를 띤 깨끗한 얼굴들을 발견하면 갑자기 화가 났다. 불행을 모르는 얼굴들을 공격하고 싶은 기분이 되곤 했다. 당신들은 불행을 모르느냐고 묻고 싶었다. 어리고 젊고 아직 나쁜 일을 겪지 않은 얼굴들이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건 비틀린 위로였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는 사람들을 매일매일 만나는 건 일종의 면역처럼 작용했다. 화가 덜 났다. 그것이 인간의 습성인 것이다. 확률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가끔 벌이 귓속에 들어오는 미치광이 같은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인생이 오로지 나쁘지 만은 않다고.
거짓말 너머를 알고 싶지 않다. 이면의 이경 따위. 표면과 표면만 있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턴테이블은 굉장히 낯선 물건이었다. 부모님이 그걸 사왔을 때는 약간 의아했지만 어떻게 다루는지 배우고 나니 깨끗하지 않은 소리가 오히려 매력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끔 정빈은 어른들이 뭘 너무 많이 묻는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귀찮은 존재일 거라고는 생각을 잘 안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넘기 전에는 희미하다. 넘고 나면 선이 아니라 벽이 된다. 아주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꽤 힘들어진다. 살면서 그런 선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될까. 넘어가게 될까.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안전법들은 유가족들이 만든 거야.
우리도 그렇게 변하면 어쩌지? 엉뚱한 대상에게 화내는 사람으로?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지쳐서 변하면 어쩌지?
처음부터 틈새를 찾는게 나을 것이다. 아름다운 틈새, 연모를 위한 틈새가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아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읽고 나서 환타지 소설에 대한 선호도가 낮은 나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는데, 독서모임에서 같이 의견 나누고 나니 좋아진 책이었다. 생각하지 못하고 넘겼던 호랑이에 대한 의미부터 각 인물들에 대한 생각까지, 혼자 읽고 넘길 수 있는 책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준다는 면에서 독서모임은 정말 알차고 좋은 것 같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쓴 동서양의 조합이 묘하게 뒤섞여 낯설면서도 신선했던 책.
- 나 같은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배우게 된다는 이야기. 내가 해온 일이 바로 그것이다. 내 테두리를 밖으로 밀어내 내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 알아내는 일.
뿅의 추천으로 읽은 책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너무 좋다는 생각보다는, 한번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 더 남는 것 같다.
마음 깊숙이 느꼈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던 속마음들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이야기를 풀어낸 부분들은 참 좋았던 것 같다. 불행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탄하고 있기 보다는 그것을 고쳐나가기 위한 연습들에 대해 책에서는 늘어놓는다. 이해는 쉬워도 실행은 어려운 것들. 한번 더 자각하게 된다.
듣고 싶은 말을 최대한 수집하기를.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그에 어울리는 선택을 해나가는 일인데, 이 레이스는 너무 혹독해서 처음에는 호기롭게 시작했어도 어느새 남들 사이에 묻혀 편하게 갈 궁리를 하게 된다. 둘러가더라도 목적지는 잊지 않으려면 언젠가 한번쯤 들었던 호의의 말, 진짜라고 믿고 싶은 말을 눈에 띄는 곳에 두어야 한다.
부모를 내 불행의 근본 원인으로 삼으면 내 삶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불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부모는 그들의 인생을 살게 하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자.
세상에는 열두 가지 색 크레파스 만으로 칠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풍경이 있는 법이다.
정작 덕후에게 중요한 질문은 '왜 입덕하였나'가 아니라 '왜 탈덕하였나'가 된다. 간절했던 마음이 끝날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자신을 이해하고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삶을 견디기 위해서 무엇이 절실했던 걸까?'
내게 주어지지 않은 걸 아예 필요치 않은 것처럼 대하는 식의 대응이 반복되면 시니컬한 자세가 인생을 사는 전반적인 태도가 된다. 그저 담담하게 찾아서 내 근처로 길어오면 된다.
나에게 이유 없이 미움받은 사람들은 그 시기 내가 가장 벗어나고 싶었던 콤플렉스와 연관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미워했던 사람의 리스트와 시기마다의 강렬한 결핍이 일치했다.
불쌍한 아이라는 자기연민의 힘으로 어찌 됐건 살아남았다면, 어른이 된 후에는 자기 인생에 쓰인 기록을 더 나은 쪽으로 고쳐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더 나은 사람을 주변에 두기 위해서. 더 나은 상황을 마주하기 위해서. 한참이나 남아있는 결말을 위해서. 나무도 상처가 깊을수록 옹이가 남아 결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자체로 개성 있는 멋이 되기도 한다.
나의 상태를 마지노선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게 관리하기, 적당히 이기적으로 나의 상태부터 챙긴 뒤에 다른 사람을 이타적으로 대할 수 있도록 해보기, 상처받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자꾸만 모든 것에 무감해지려는 마음을 잘 다독여 생기있게 유지하기. 회사 생활에서 습득한 나와 주변을 지키는 기술이다.
불운했던 과거에 짓눌려 있을 때가 잦았는데 중요한 건 내게 일어난 사실 그 자체가 아니고 그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대단해 보였던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알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나만의 그림자는 유독 고독하고 길게 드리워 있다 여겼는데 딱히 그렇지 않다는 자기객관화도 됐다.
여유가 없어 다급해진, 절박함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그 어떤 이와의 파워게임에서도 진다.
시간의 운용이란 결국 어디에서 아끼고 어디에다 쓸 것인가의 문제인 듯 하다.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 질문하고 순위를 조정하면서 덜 중요한 일에는 최대한 시간과 체력을 아끼는 것.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정된 조건 속에서도 당장의 가능한 것들을 찾아갈 수 있다.
물건이든 상황이든 대충 선택하는 습관을 들이면 인간관계처럼 정말 중요한 문제에서도 자기에게 어울리는 대상을 찾지 못한다.
얼굴에만 상처가 없다 뿐이지 등이나 엉덩이나 가슴에 있어서 옷으로 가린 채 살아가는 걸까?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이 감정이 지나치게 격렬한 건 아닌지,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긴다고 말하는 부정적인 현실 인식에 갇혀 시야가 희끄무레해져버린 건 아닌지 살폈다.
자존감이란 객관적인 조건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자기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데서 나온다.
처음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고 그저 여러 가지 우연의 합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더 좋은 조건이 주어졌어야 했다고 억울해하는 걸 그만두었다.
휩쓸림 속에서 한계를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작더라도 온전한 자기만의 것을 찾아내면 좋겠다.
자존감은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 같은 불순물을 없애고 순도 높게 벼려낸 보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성정을 발효시켜 오래 기다려 구워낸 빵에 더 비슷할 것이다. 정말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고통에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뛰어넘었고 더이상 그 흉터에 집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승리자들이니까.
진짜 흡입력 있게 읽어서 이틀만에 완독한 최은영 작가의 신간.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에 이어, 이번 책도 최은영 작가만의 분위기가 묻어나 너무 좋았다. 보이는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그 아픔의 깊이까지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오랜만에 책 읽으면서 눈물나게 해준 올해의 스물네번째 책. 김애란 작가에 이어 애정하는 한국 소설가가 생긴 것이 너무 좋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재촉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잖아. 아무도 겨울 밭을 억지로 갈진 않잖아.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 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그동안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치받치던 두려움이 그제야 몸밖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이었다. 두려움이란 신기한 감정이었다. 사라지는 순간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니까.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있었으니까. 아무리 불안에 떤다고 해도, 좋은 순간을 그대로 누리지 않으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으니까.
감정이 소화가 안 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처로부터,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부터. 그런 감정적인 가능성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미지근한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아껴두면서 오랫동안 읽고 싶게 만든 책이었다.
기획자로서 왜 독서를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독서를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기획이라는 일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대함으로써 독서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재밌었다. 책을 통해 공감대 형성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작가의 바램에, 나 또한 독서모임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경험들이 정말 소중하기 때문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엇보다 소소하게 남기는 내 독서 피드를 보고 책을 읽고 좋았다는 지인들의 후기들이 이런 나의 독서경험을 더 좋게 만드는 부분이 되는 것 같다.
실무와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
좋은 기획이 나오려면 다양한 스타일의 기획자가 많아져야 하는 것 같아. 각자 다른 무기 하나씩 들고 싸울 수 있는 기획자들 말야.
저는 기획자로서 관찰하는 습관이 중요한 이유는 딱 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바로 '이해하는 힘'이죠. 관찰을 하면 그 대상의 특징적인 부분들이 레이더에 포착되고, 그걸 밀도 있게 반복해서 들여다보면 더 잘 이해되기 마련입니다.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 더 궁금한 것들이 생기고 때로는 다른 대상과의 공통된 연결고리가 발견돼서 의외의 가지치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지루한 반복처럼 보여도 2주마다 새로운 책을 고르는 건 일상 속에서도 참 의미있는 일입니다. 작게는 내가 2주간 관심 가질 분야를 선택해보는 것이고, 크게는 내가 앞으로 2주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과도 맞닿아 있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내 속에만 가둬두지 않는 게 중요하다."라고요. 그저 어슴푸레한 감상이나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담아두지 말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끄집어낼 필요가 있는 거죠. 꽃도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도 그 이유를 찾아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것일지 모릅니다.
'수렴'과 '발산'의 책 읽기를 해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경험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수렴의 책 읽기가 '구심력'에 의한 독서라면 발산의 책 읽기는 '원심력'에 의한 독서거든요. 내가 정한 주제의 한 가운데를 깊이 파는 즐거움과 그 주제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해보는 재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으니까요.
서점이란 공간에서 마주하는 '기분 좋은 의외성'들은 저를 하얀 도화지로 만들어주곤 해요. 무엇인가를 기획할 때 선입견을 가지고 있거나 이미 스스로 답을 내리고 시작하면 좋은 가능성들을 다 놓친 채 시작하는 셈이잖아요. 그러니 나를 비우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워밍업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워밍업을 서점이란 공간에서 해보는 걸 적극 추천합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루트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익숙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낯선 것에도 덜 어색함을 느낀다고 봐야겠죠. 그러니 여러분의 삶 속에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끼워 넣어보세요.
편집하는 사람은 '자기가 버린 것'들 속에서 크는 법이니까. 맘에 쏙 들어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버려져야 했던 애들이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거라고.
소설을 쓰는 사람과 기획을 하는 사람은 언뜻 봐선 큰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인생의 큰 질문들과 마주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책의 흐름은 비단 기획자뿐 아니라 어느 직업을 치환해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것도 이 동선을 설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안내하고자 하는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으로 가는 길을 설명하듯 글을 쓰는 게,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를 위해 좋은 것 같거든요. 그리고 그 안에 독자가 이대로 거쳐왔으면 하는 나만의 동선을 만드는 거죠.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지 그 속에서 발견한 생각과 감정은 또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어떤 스타일로 책을 읽는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남기고 기억하고 전달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공유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바람을 타고 흘러간 책의 씨앗들은 분명 누군가에게 내려앉아 꼭 맞는 쓰임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거든요.
읽어야지, 하고 오랫동안 책꽂이에 모셔두기만 했던 책. 이번에 김영하 작가의 온라인 북클럽에 선정이 되어서 기회삼아 두꺼운 책을 다 읽게 되었다. 초반에는 이야기의 높낮이가 없는 잔잔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보니 속도가 너무 나지 않아 분량을 매일 정해두고 읽었는데, 뒤쪽으로 갈수록 흡입력이 강해져 속도가 붙게 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은 시각적 느낌부터 바람에 나무가 흩날리는 소리와 새소리를 묘사한 청각, 섬세하게 다루어지는 요리 묘사들을 기반으로 한 미각,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 느낌의 촉각적인 부분까지, 오감이 모두 느껴지는 표현력에 텍스트만으로 이렇게 느낌을 전달할 수 있구나, 해서 감동이었다. 무엇보다도 정말 싫어했던 여름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책이었다. 스톡홀름에서 보고 온 도서관을 기반으로 풀어낸 책이라 더 이해가 잘되어서 좋았는데 김영하 작가는 이러한 경험의 확장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언급하였고 그 말에 참 공감되었다. 누군가는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고도 했는데, 그래서 뒤로 갈수록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함께 느껴져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원래 제목이 '화산 자락에서'라고 한다. 제목을 유지했다면 이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았을텐데, 국내에서 참 소설 전반적 느낌을 잘 담아 출간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유리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름 별장이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간다.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여닫이가 나쁜 문짝 같던 내 행동 거지가 조금씩 덜컹거림이 줄어들면서 레일 위를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같이 느껴졌다.
연필을 더 깎아야 하는 것은 필압이 너무 강하거나 너무 난폭하거나 너무 서두르거나 그중 하나로, 즉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선을 계속 긋고 있으면, 어느 지점부터 의식이 흐트러지는 때가 있다. 그 틈을 노려서 실수가 미끄러져 들어오니까 연필이 어떻게 닳는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꼼꼼하다느니 이류라느니 말하지만 야생동물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간단하고 간결하다는 것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설명하지 않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저절로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건축에서 사소한 장치를 생각할 때도 사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그 장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거야."
"인간의 내면 같은 것은 나중에 생긴 것으로 아직 그다지 단단한 건축물은 아니라는 증거일 거야. 집 안에서만 계속 살 수 있을만큼 인간의 내면은 튼튼하지 못해. 마음을 좌우하는 걸 자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찾고 싶다,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마지막에는 밀린다 해도 자기 생각은 말로 최선을 다해 전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생각하는 건축이 아무 데에도 없게 돼. 자기 새각을 자기 자신조차 더듬어갈 수 없게 된다고.
씩씩한 쪽을 고르면 그 피아노로 둥근 음을 내면 되지. 둥근 음이 나는 피아노도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서 좀더 긴장되게 만들수 있고.
이번 달에 올해 들어 가장 많은 책을 읽은 것 같다.
가장 좋았던 책을 꼽자면 ‘피프티피플’과 ‘밝은 밤’. 그러고 보니 기획자의 독서 빼고는 소설을 꽤 많이 읽었다. 한동안 소설 많이 못 읽어서 좀 읽어볼까, 했는데 참 알차게도 몰아서 읽었네.
소설은 다양한 관점과 열린 이야기로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번 달 독서모임도 여러 이야기와 해석을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다.
비록 코로나로 인한 집콕이 나의 이번 달 독서량을 늘려주었지만 또 이 때 아니면 이렇게 책을 많이 읽나 싶기도 하다. 매달 말에 이렇게 독서 기록과 좋았던 구절들을 살펴보면, 한달 간 내가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뒀는지 고민했는지 생각했는지 알 수 있어 좋다. 올해 42권 읽기 실패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능성이 점차 보이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