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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Jul 25. 2021

회사로 택배를 받으면 안 되는 이유

문서수발실의 여러 추억들

매일 주문을 처리한다.

적게는 1~2시간

많게는 3~4시간

내가 하루 중에 쓰는 유일한 노동, 밥벌이의 시간다.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고객 금씩 보인다.

무슨 언증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

주문  상품 배송지 주소,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받는 분누구일까 조금은 상상 된다. 


신입사원 때가 떠올랐. 

내가 다닌 첫 직장, X그룹 인사팀.

그 시절 나의  수발실에 시작됐다. 일 아침 출근 전, 인사팀 칸에 올려진 우편물 택배. 그걸 고, 각자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로 나의 일과가 시작됐다. 


단순했던 일이 재밌어 진건 서너 달이 지나면서부터였다. 각자의 우편과 택배 일종의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헌혈 결과가  E, 아프리카에서 감사 엽서받는 D, 쇼핑을 자주 하는 A, 드럼 악기를  K, 고시 소식지를 받아보는 G까지, 매일 들고 가는 우편물과 택배에서 각자의 취향을 짐작해보는 소소한 재미 생겼다.


그리고, 나의 짐작들은 얼마지 않아 현실로 이어졌다. 고시 소식지를 받으며 사법고시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G는 결국 로스쿨 진학을 위해 회사를 퇴사했고, 드럼, 악기 관련 상품을 구매하던 K는 직장밴드 오디션에 합격했다.


옷 사는 걸 좋아하던 A는 션지 기자와 결혼했지만 곧 다시 싱글로 돌아왔고,  D는 TV 뉴스에 출연했다.  그가 후원하던 아프리카의 아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분노케 한 것이다. E는 장모가 회사에 찾아오는 소동을 통해, 헌혈하는 이유가 성병검사를 위한 것이었임이 뒤늦게 알려다.


가 지나며, 더는 문서수발실 가야 할 이유는 사라졌지만, 나는 그곳을 종종 찾아가곤 했다.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내가 회사에서  발견한 가장 한적한 었기 때문이었다. 햇살이 비추는 남향의 작은 공간, 그곳에서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쉬다 오기도 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 가끔 도심 기차가 지나는 걸 볼 수 있었다. 으로 팀 우편물을 챙겨 오면 되는 내게는 완벽한 휴식장소였다.


첫 해외파견을 갔을 때는 직원들이 종종 가끔씩 Pigeon room, Pigeonhole에 간다고 하길래 회사에서 비둘기키우나 오해했던 기억이 있다. 뒤늦게 그게 우편함이 있는 우리로 치면 문서수발실을 이라는 것을 알고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곳도 한국처럼 조용한 곳이어서  우편함은 없었지만 가끔 가기도 했다.      


마지막 회사에서 감사를 받은 이후, 나는 더 이상 개인 우편물과 택배를 회사에서 받지 않았다. 감사팀은 기본적인 근태 기록 외에도 수년간 내가 회사에서 받았던 우편, 택배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일자와 발송인, 품목을 법인카드 구매 기록과 대조하며, 의심스러운 거래가 있었는지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수년 전의 기억을 불러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로 오는 택배들이 기록으로 남아 보관된다는 것을 잊고 살 것이다. 기업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관리부서 또는 담당자가 있는 경우 자료를 보관할 확률이 높다. 송장번호와 일자, 취인, 발신인, 품목까지 모든 정보가 개인별로 쌓여 보관되는 것은 확인용도로 꼭 필요한 정보지만, 언제나 다른 쪽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아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공적인 일 외에서 사적인 택배는 보내지 않은 것이 좋다. 만에 하나라도 말이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위해 조심해서 나쁠 건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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