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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Dec 11. 2020

해고를 받아들이는 기술

해고 통보를 받고 청첩장을 내밀었다.

젖은 낙엽

오랜만에 비가 왔다. 가뭄 끝에 오래 기다린 비, 하지만, 너무 많이 와서 문제였다. 출근길 도로는 평소보다 밀렸고, 지하철 연착되었다.

도로에는 비가 넘쳤다. 마지막 가을을 붙잡고 있던 낙엽들 하수구를 버렸기 때문이다. 바닥에 붙어 떠내려가지 않으려 엽들을 보며  부장을 떠올렸다. 부장은 우리에게 늘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젖은 낙엽처럼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  달라붙어있어야 한다."


리는 그저 우스개로 넘겼지만, 얼마 뒤 사에는 짓말처럼 구조조정 소 퍼졌다. 일하는 시간보다, 옥상에 모여 배를 피우거나, 도는  얘기하는 시간이  다. 인맥이 있는 사람들은 그룹 내 다른 자리를 알아본나, 사에서 관리하는 인력들은 이미 인사팀이 열사로 이동시킨다는 소문이 들렸.

면담

12월 초 신규 임원 발표와 함께 조직개편이 이어졌다. 파도는 멀리서 보면 느리게 오는 듯 하지만, 결국 무섭게 해변에 들이닥치는 것처럼. 현실은 예상보다 빨리 변해갔다. 그리고, 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통의 메일왔다. '인사 면담 안내-귀하는 금번 인사 면담의 대상자입니.' 메일 제목을 읽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일이 왔다고 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영화 마진콜 스틸 컷 (출처-IMDB)

팀원 절반 정도가 면담 메일을 받고, 또 절반 정도는 메일을 받지 않았다. 받은 사람도, 안 받은 사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야 할까, 떠나야 할까, 아니 그런 선택의 여지가 기나 할까?'각들만 가득한 하루 연말 분위기와 무색했다. 면담일 새로운 본부장과 처음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내게 말했.


"미안하지만, 나가줘야겠다."

직접 목소리로 들으니 충격 훨씬 컸다. 둔기로 맞았다면 런 걸까, 렉이 걸린 컴퓨터처럼 생각이 멈춘 상태 되었다. '이건 초현실적다. 초현실적이야.'  내가 통제할 상황을 이미 넘어서버렸. 프린트를 보며 기계적으로 본부장이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는 건조했다. 위로금 몇 개월, 퇴직절차, 하지만 전혀  기억 나지 않았다

   

" 2주 뒤에 결혼합니다.. 여기 청첩장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거였다. 참 아니 슬프지만 청첩장 그에게 주는 일. 그게 내 할일이었다.  속에  고 싶었만, 현실은 렇지 못해서 유감이었다. 본부장과 만난 첫날,그는 내게 '해고'를 통보, 나는 '청첩장' 건네주었다.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시간, 의실 문을 닫고 나오며, 나도 도 생각할 리가 많아졌다.  

김부장

조직개편로 세 개의 팀 하나로 합쳐졌다. 소셜솔루션팀, 음악, 게임, 영화가 합쳐진 상상이 안가는 이름이었다. 렇게 팀은 합쳐지고, 보직을 받지 못팀장들 인사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 안에 김부장도 있었다. 그는 짐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첩장을 주기 위해 찾아간 김부장의 자리는  회의실이었다. 을 보고 있는 책상 하나 그의 명패가 올려져 있었다. 그의 자리였다. 전화도, 노트북도 없었다. 래진 회사 다이어리 하나가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영화 마진콜 스틸컷 (출처-IMDB)

"리해서 뽑은 지 새 차가 얼마 안 됐어."

사 옥상에 의 넉살은 여전했다. 그내게 그저 버티라는 말을 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퇴직급여조차 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진퇴사를 권유하는 면담 할 뿐이었다. 3개월의 위로금도 이 번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팀에서 반은 회사를 떠날 결심을 했다.


떠남의 이유는 각기 달랐다. 2세 출산, 육아나 유학과 같은 각자 품었던 이유들 말이다. 그리고, 이별의 시간이 따라왔다. 한동안 매일 엘리베이터 앞까지 누군가를 배웅하고 자리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처음에는 슬펐고, 지나니 애처로웠고, 나중에는 허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명한 건 살면서 다시 할 짓은 절대 아니라는거다. 처음 누군가 자리에 돌아와 훌쩍였. 하지만, 조금 지나자 우리는 다시 일. 은 몫까지 일을 해야 하니 더 바빠서 슬픔에 무뎌졌다.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로운 위계질서가 정립되었다. 리고, 우리는 또 적응했다.


산 자

결혼식장에 본부장은 오지 않았다. 신임 팀장이 본부장의 봉투를 대신 가지고 왔을 뿐이다. 신혼여행 후 돌아온 회사는 아직 어수선했다. 청첩장을 건 낸 그 날 이후, 나에게  이상 면담 메일은 오지 않았다. 밀린 일에 정신없이 하루를 보고, 본부장과는 가끔 만났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회사에 여기저기 업무의 공백이 생겼고, 회사는 채용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떠나보내더니, 다시 뽑는다니. 경력직 들어오고, 아르바이들이 들어왔다. 그렇게 빈자리는 채워져 갔다.   

영화 마진콜의 스틸컷 (출처-IMDB)

"다음 달부터 주말 부부 하기로 했다." 

김 부장 남은 팀원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회사는 인사팀 인력들을 그만둘 생각을 않자, 지방발령을 냈다. 서울에서 기차로 3시 반, 거기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곳었다. 김부장은 젖은 낙엽처럼 버텼다. 그는 공장 앞 원룸 다른 이와 함께 다고 했다. 는 아직 넉살좋게 얘기했다. 본인이 꿈꾸던 전원생활과 주말부부를 함께  수 있다고 말이다. 지만, 많은 이들 지방발령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 해 겨울

결혼 전부터 준비하던 이직은 연말, 연초맞물려 3개월 정도가 걸렸다. 그 해 겨울, 나는 내 발로 그 회사를 걸어 나왔다. 다시는 회사가 나를 버리는 일을 겪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나왔다. 그래도 한번은 되돌아보 됐다. 해빙의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때,   회사 앞 쌓인 눈은  서서히 녹고 있었다.

영화 마진콜의 스틸컷 (출처-IMDB)

겨울이 지난 또 다른 겨울, 어느날 나는 김부장을 서울 대형서점서 만났다. 재테크 코너의 신간 매대그는 여전히 좋은 웃음로 책 띠지에서 웃고 있다. 본인의 이름이 아닌, 닉네임소개 책,책을 펼쳐 저소개를 읽었다.


'국내 대기업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15년을 근무하다, 뒤늦게 재테크에 눈을 떠, 지방 아파트와 토지 경매 등, 역발상 투자로 30억대의 자산을 모은 투자자, 현재 경제적 자유를 이룬 뒤,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며 개인투자자를 위한 재테크의 글을 쓰고 있다.'


표 제지에 쓰여있는 그 문구를 보고, 1만 8천 원을 내고, 나는 기꺼이 그의 책을 구매했다. 결국 해피 엔딩이었다.


"어느 날 난 대기발령, 그것이 나를 바꿨다.  나는 그동안 너무 편하게 살았구나. 매달 나오는 월급, 좋은 차, 작지만 아담한 울의 아파트 한채, 하지만, 그다였다. 회사를 나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재테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그의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직장인 후배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언제든 퇴사할 수 있는 것처럼 회사도  신을 제나 떠나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잊고 지낸다. 나도 그랬다. 억울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내가 했듯이 당신도 할 수 있다. 건투를 빈다 "

영화 마진콜의 스틸컷 (출처-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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