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은 S그룹 인사팀이었고, 본사 15층에 있었다. 늘 불이 켜져 있던 그층은 주로 기획지원부서가 위치해 있었는데,전략팀, 법무팀, 재무팀, 총무팀, 그리고, 비서실이함께 근무했다.입사 전, 야근이 많다는 소문에미리 각오는 했지만, 현실은 더했다. 일이 많아서라기 보다는임원, 팀장들이 출퇴근에 눈치를 주는분위기였다.매일10시간이상을회사에서지내다 보니돈 쓸 일이없고, 일을 빨리 배울 수 있다는 건 좋았지만,그만큼 몸이 고되었고,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그리고,가끔 사무실에서 이상한 사건을목격하면서 회사에는 독특한 사람이 참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상
(영화 유전의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악---"
그날도 어김없이저녁을 먹고 컴퓨터를 켰는데 소리가 들렸다.
"악---"
까마귀 울음 같은 비명소리였다.소리를 따라가보니 맞은편 재무팀 김주임의 자리였다.
"악---"
"왜-왜", "누구야?", "무슨 일이야?", "귀신 본거야-뭐야"
아프리카 초원의 미어캣들처럼 나 뿐만이 아니라다들 일어나서주변을 두리번하고 있는데, 회색낯빛으로 창백해진 김주임이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결혼반지에서 다이아몬드가 빠졌어요."
(영화 유전의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얼마 전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갔다 왔던 김주임,오늘따라예물반지를 끼고 출근한 게이사건의 시작이었다. 있어야 할 다이아몬드의 텅 빈 자리를 멍하니 보고 있는김주임.
'결혼반지에서 다이아몬드가 빠지다니,말도 안 돼...'상상이 안 되는 그런 황당한 일이벌어졌다.
"어디서 빠진 것 같아?"
총무팀장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주임에게물었다. 화재나 지진 같은비상사태에위기대응 책임자를 겸임하고 있던 그였다.
"네, 저녁 먹고 양치할 때만 해도 있었거든요. 화장실에서 손 씻을 때까지도있었는데..."
"그럼 사무실에서 빠진 거네"
총무팀장이 한 번 더 확인했다. 다들 황당함 반, 안쓰러움 반, 그저 자기자리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김주임의 샤우팅이 또 들렸다.
"저 이혼당할지도 몰라요. 아악-"
얼굴을 감싸 쥐며울고 있는 김주임때문에층끝에 있던 비서실 여직원들도 모두 나와 둘러보기 시작했다.
동요
(영화 오션스 트웰브의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자자, 여러분, 잠시 여기를 주목해주세요. 김주임 반지에서 다이아몬드가 떨어졌어요. 다들 동요하지 마시고,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대신 지금부터 다이아 찾을 사람들, 각 팀에서 1명씩 차출해서 찾아봅시다."
사내 대피훈련인 듯,민방위 훈련인 듯, 총무팀장은 어느새이상황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사수는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알, 다녀와"
그렇게 나는 갑자기 다이아몬드수색대원에임명되었다. 김주임,재무팀과 법무팀 인턴 1명씩과 비서 1명, 그리고 나까지이렇게 5명이 선정되었다.
"자자. 어려울 것 없어요. 여러분들, 이제부터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15층 바닥을싹쓸어 담는 겁니다. 다이아몬드가 나올 때까지,알았죠? 천천히 쓸다 보면 빛나는 게 있을 수 있어. 그럼 찾은 겁니다. 알았죠?"
사람은 너무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서는마음이오히려 평화로워진다고 했던가,어느새 내 손에는 책상 청소용 미니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쥐어져 있었다.매달 한번씩회사 청소의 날 때 쓰던 도구들이었다.
포복
(영화 알포인트의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갑자기 사무실의 수색대원이된 나는몸을 낮춰 엎드려 포복자세를취했다.바닥을 탐색하며혹여나 다이아몬드가카펫 사이에 끼거나, 먼지나 머리카락과 섞여 있지는 않을까, 빗자루질을 했다.모두들 나처럼 그렇게바닥에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복과 넥타이가쓸려서,자세가 참으로불편했다. 나는 그렇다 해도비서실에서 차출된미선씨는 치마를 입어서나보다 더 불편해 보였다. 옷 때문에 진척이 더디자 보다 못한 총무팀장은사내 헬스장의운동복을구해왔다.화장실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회사 로고가 프린트된 면티셔츠와 반바지는 그럴싸한 수색대의 유니폼이 되었다.
"너희 못 찾으면 퇴근은 없는 거다."
재무팀장이신문을 펼치며, 우리에게 농담을 했다.
"근데, 다이아 찾다가 자기 주머니에 넣으면, 알죠? 그거 절도죄입니다. 알죠? 하하하-" 맞은편 자리의 법무팀장도 한마디 거든다며농담을 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어디서나 밥맛은 있다.사무실은 어느샌가 조용했다. 직원들은 모두 자기 일하느라바빴다.
쓱쓱~쓱쓱, 나는 사무실 바닥을쓸었다.전전날 바닥청소로 바닥오염이 그나마 심하지 않은 것이그나마 다행이었다.사람들의 발밑을 요리저리 지나다니며 쓸고, 담고, 찾기를 반복했다. 쓸어 담은 먼지 덩이와 쓰레기들속을 휘저어 보았다. 혹시나빗자루 솔까지 살폈다.
외침
"찾았다아-!!"
(영화 금발이 너무해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1시간이 지났을까, 고요를 깬외침은 비서실 미선씨의 목소리였다. 4명이 자신의 팀 주변을쓸 동안 그 외나머지구역을 수색하던 미선씨가화장실앞 통로에서 무언가를발견한 것이다. 그녀는휴지에 싼 뭉치를조심히 가져왔다.포갠 휴지를 펼치자작은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있었다.진짜 다이아몬드였다.미어캣처럼 다시일어난직원들은우르르 미선씨 주변으로 몰렸다.
"맞아요. 이거 맞아요. 아으윽,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김주임이 소리쳤다. 책상에서반지와 다이아를 합체한뒤, 김주임은 흐느꼈다.모든 에너지를 토해낸 뒤, 오는 희열과 안도가 섞인 흐느낌이었다.
'이 큰 사무실에서 다이아몬드를찾아내다니.., '
먼지를 떨어내며,나는 생각했다. 김주임은비서실까지 따라가며 미선씨에게 연신 인사를 했다. 총무팀장이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자자,우리 박수한번 칩시다. 결국 찾았습니다."
"와와~"
직원들의 박수소리와 함성소리가 15층에 울려 퍼졌다.
(영화 울프오븨월스트리트의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
사수가 말했다. 시계는 이미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지하철을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하늘에는 꽉 찬 둥근달이 회사 건물을 비추고 있었고, 15층 만은유일하게 환하게켜져 있었다. 밤인데 낮처럼 밝은 이상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