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는 지금이 마지막이지만, 너에게 있어서 우리의 우정은 이제 시작인 거야
(영화 '테넷' 중 닐의 대사)
영화 '테넷'의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마주치기
퇴사한 지금, 나는 아직 회사 근처에 살고 있다. 그래서 가끔 전 직장의 동료들과 마주치는 일이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된다. 그럴 때면 서로가 어색할 것을 알기에 나는 그냥 모르는 척 지나친다. 회사를 나오면 우리는 그렇게 타인이 된다. 자기를 형이라 부르라 했던 이도, 친한 동생으로 생각해달라는 이도 예외는 없다. 사무실에서 하늘 같았던 임원도 회사 밖에서는 그저 나이 든 아저씨일 뿐이다. 무리 지어 있는 그들과 혼자인 나, 서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본 영화 '테넷'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는 두 개의 시간, 순행하는 시간과 역행하는 시간이 공존하며, 한 공간에서 두 개의 시간이 만나기도 한다. 영화처럼 나는 우연히 마주친 직장 동료들에게서 과거의 나를 보고, 그들은 나를 통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볼지도 모를 일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영화 마지막 닐의 대사처럼, 회사원에게 입사처럼 퇴사도 예정되어 있다. 우리는 그저 모르는 척하거나 잊고 살뿐이다. '테넷'에서 끝이란 종결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연결되어 있듯, 우리의 퇴사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과 연결되어 있다.
전부 사기당하고 있는데 사람들 머릿속엔 야구 생각뿐이야, 아니면 여배우 약물 스캔들이든지..
(영화 '빅쇼트' 중 마크의 대사)
영화 '빅쇼트'의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살아남기
세상은 갈수록 기울어져 간다. 갈수록 가팔라지는 암벽코스처럼 말이다. 얼마 전 재벌가의 결혼 소식이 뉴스로 채워진 날, 그 회사의 인턴과 계약직들에게는 일방적인 계약 종료가 통보되었다. 내가 다녔던 대기업은 핵심 계열사만 남기고, 나머지 계열사들을 처분 중이라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경영부진과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내외 메시지와 다른 면에는 그룹의 2세 경영승계가 걸려있음을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영화 '빅쇼트'에서 폴의 대사처럼, 세상에는 온갖 노이즈들이 넘쳐나고 있고, 정작 고민되어야 할 것은 잊혀지기 쉽다. 직장인들은 현재 최고의 고용불안 상황에 처해있다. 이는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는다. IMF 때 일부 아시아 국가만 위기였다면, 지금은 국경이 없는 범지구적 위기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떠나거나 혹은 내보내지는 직장인의 숙명이 더없이 엄혹하게 느껴진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큰 회사를 떠나 자리를 잡기란 누구라도 쉽지는 않지만, 고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무능력이 아닌, 그들의 탁월성 때문이다. 대기업 안에서 자신을 빛나게 해 주던 장점들, 예를 들면, 디테일을 챙기는 신중함과 논리적 분석력은 스타트업, 중소기업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고, 소위 악착같은 근성이 부족하거나, 업무 속도가 느리다고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회사 밖에서 생존하는 직장인이 되려면, 재무적이든, 정신적이든, 사업적이든 재무장이 필요하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야생성을 기를 필요도 있다. 결국, 매일 출근하며 퇴사를 생각하고 단련해야 한다.
여기선 미래가 없어. 네가 원하는 삶을 살 수도 없고..
(영화 '브루클린' 로즈의 대사)
영화 '브루클린'의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보물찾기
요즘 회사를 나와서 이직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차례의 인터뷰와 레퍼런스 체크의 관문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또 다른 직장인의 삶이다. 승진할 수 있는 한계는 정해져 있고, 월급은 물가상승률 수준과 같이 오른다. 전문성을 가지는 일이 아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든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오늘도 꿈을 꾼다. 상사도 없는, 정년도 없는, 월급만큼 벌 수 있는 나만의 사업을 하는 꿈 말이다. 꿈은 실행하지 않으면 공상일 뿐이지만, 운 좋게도 내 주변에는 그런 꿈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심지어, 회사를 다니면서, 차분하게 준비해 퇴사하자마자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과연 어떻게 시작한 걸까, 그들이 실행한 방법은 정리하면 3가지다.
첫 번째,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나에게 맞는 기회를 찾는다.
두 번째, 회사와 연관된 주변에서 숨겨진 기회를 찾는다.
세 번째, 나의 기호와 취향을 관찰하며 기회를 찾는다.
1. 회사의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 나에게 맞는 기회를 찾는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 외에 회사의 비즈니스 영역은 넓다. 지금의 업무에 지쳤고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절망하고 있다면, 회사 내 조직도를 살펴보자. 눈길이 가는 흥미로운 비즈니스가 있다면, 한번 공부해보자. 지금 영화배급사 대표가 된 회사원 A는 원래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마케터였다. 영화를 좋아하던 A는 자신이 좋아하는 해외 영화가 개봉이 지연되자, 차라리 자신이 수입해서 개봉해볼까를 고민했지만, 영화 수입과 배급에 대한 기초지식은 아무것도 없었고, 알려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A는 기다리기보다, 자신이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같은 회사 내 해외영화수입팀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A는 자신의 팀장에게 다른 팀의 업무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수락을 받았다. 그리고, 제일 먼저 영화 수입과 배급 업무를 담당하는 팀과 미팅을 했다. 해외 영화 마켓 참여, 수입계약, 개봉의 실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미팅을 통해 알게 된 A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사업임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관련 네트워크를 서서히 쌓아갔다. 8년의 시간이 흐른 뒤, A는 그동안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떨어, 자신의 첫 영화를 수입해 극장에서 개봉했다
2. 회사와 연관된 곳에서 기회를 찾는 방법
나의 사업을 하고 싶다면, 항상 주변의 촉각을 세우고, 세심하게 관찰하다 보면 보인다고 한다. 회사 내 업무가 아닌, 회사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찾는 비즈니스 기회가 역시 준비된 사람에게 보인다. 현재 무역회사의 대표인 B는 원래 대기업 동유럽 지사의 건축디자인 담당자였다. 1년에 한두 번 있는 현지 직원의 본사 교육이나 해외 바이어의 한국 방문을 동행하며, B는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서점에서 필기구와 문구류를 바구니에 대량으로 담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 여행 필수템으로 화장품을 많이 사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필기구는 의외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B는 현지 직원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현지 직원들은 한국은 필기구의 종류도 많고, 품질도 좋으며, 가격도 싸서 귀국 후,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면 좋아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B가 돌아본 동유럽 현지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현지 브랜드의 상품은 품질이 형편없었고,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수입하는 문구류의 가격은 너무 비쌌다. 현지에서 본인의 업무 외에 유통 담당자들과 교류를 하며, 사업기회가 있음을 알게 된 B는 결국 회사를 그만둔 뒤, 1인 무역회사를 차렸고, 문구류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현재 B의 사업은 문구류에서 안경까지로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3. 나의 기호와 취향에서 기회를 찾는 방법
개인적인 기호와 취향에 맞는 나만의 사업기회를 찾는다면, 사업이 아닌 하나의 놀이로써 발전시켜 나갈 수 있고, 또한 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로 태국 방콕에서 시작한다. 나는 회사 프로젝트로 태국 방콕에서 한 달 동안 지낸 적이 있었는데, 현지 담당자인 K는 자신의 차로 매일 우리의 출퇴근을 도왔다. 방콕의 교통체증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매일 차 안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종종 차를 세우고 현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기도 하며 동료에서 친한 친구가 되었다. 프로젝트를 종료하고, 한국에 귀국한 나는 종종 그와 라인(LINE)으로 안부를 전했는데, 어느 날 K가 내게 부탁을 해왔다. 한국에서 신발을 구해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평소 옷, 신발을 좋아하던 K는 태국에는 짝퉁도 많고, 모델이 많지 않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을 서울여행을 가서 알았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K 만큼 신발을 좋아했다.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유일한 즐거움은 잠시 시간을 내서 그 나라의 편집샵을 가는 것이었다. 출장의 추억이 담겨있는 신발을 사다 보니, 꽤 많은 컬렉션이 되었고, 신발에 더 관심이 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신발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K의 부탁으로부터 내 첫 사업이 시작이 되었다.
인생이란 곧 용기를 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중 셰릴의 대사)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출처-네이버 영화)마음먹기
회사원 시절, 잠들기 전 늘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은 '출근하기 싫다'였다. 그래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거나, 큰 혜성이 지구로 떨어지는 유치한 상상을 했다. 그렇게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퇴사한 지금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내일 매출은 어떻게 낼까?' '어떤 채널로 어떻게 팔까?'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로 잠들지 못한다. 사업은 늘 불안하기 때문에, 매출이 많은 날도, 매출이 적은 날도 고민이 생긴다. 사실 물질적으로 그렇게 나아지지도 않았다. 모두 나의 돈이기에 매번 절약하게 되지만, 누군가 내게 힘드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한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이다. 회사를 나와보니 알았다. 일하는 게 즐겁다는 것을, 신난다는 것을 말이다. 회사보다 내 행복이 소중하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