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에서 블라인드 되고 싶은 직장인에게
블라인드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동기와 놀지 말고 그럴 시간에 선배들과 소통하라
KT 구현모 대표는 2030대 직원들과 통통미팅 간담회에서 위와 같이 언급했다고 한다. 구 대표는 당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언급하며 '쓸데없는 짓'으로 평가했고, 매체들은 이를 옮기면서, 젊은 직원에게 소통하자더니 대표가 소위 '라떼'를 시전하는 꼰대짓을 했다고 언급했다. 그 기사에는 대다수의 부정적인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제 한동안 KT에서 통통미팅 간담회는 금기어가 될 듯하다. 하지만, 기사를 읽다 보니 좀 더 세련된 워딩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블라인드, 블라하다.
블라인드가 유명해진 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2015년이었다. 그 해 대한항공의 '땅콩 회황 사건'이 블라인드에서 촉발되면서, 블라인드는 직장인들의 가입이 폭증했다. 당시 나 역시 기억나는 것은 인사팀에서 모든 부서장들에게 직원들에게 블라인드를 하지 말 것을 지시하라고 연락을 받았다. 당시 회사는 이메일의 블라인드 가입인증 IP를 차단하고, 사내 와이파이를 통해, 블라인드 접속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강경하게 대응했었다. 이는 역풍으로 이어져 가입자 폭증으로 이어졌다. 2020년 기준으로 블라인드는 300만 명의 가입자수를 기록했다.
팀장이 법카로 스타벅스 별적립을 합니다.
(블라인드 라운지 게시글)
온라인 신문고
여러 달 전, 법인카드로 스타벅스에서 별적립을 한 팀장의 이야기가 회사 라운지에 올라와 사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결국 그 팀장은 감사를 받고,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부당이득을 취한 금액을 회사에 다시 납부했다고 한다. 잘못된 스벅 사랑이 만든 덕후 팀장의 결말이다. 최근 만난 인사팀 후배는 요즘은 블라인드를 사내 신문고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전담직원을 두고 24시간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다. 실제 게시판에 올라온 비리 혹은 문제는 즉시 윗선에 리포트가 되고, 조사된다고 한다. 그동안 회사에서 알게 모르게 줍줍하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이다.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프로파간다, 에드워드 버네이스)
프로파간다의 장
회사는 5년간 블라인드에 대해 학습했고,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이슈 게시글에 대한 대응은 신고가 누적되면 삭제되는 정책을 활용, 여러 계정을 활용해서 글을 삭제시킨다. 특정 이슈에 대해서, 댓글, 또는 반박글을 작성해 문제를 희석시키거나, 이슈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한다. 회사는 전략에 따라, 사전작업과 모니터링을 위해 은밀하게 블라인드를 이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사업 개편이나 구조조정을 위해 특정 조직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올리고, 사내 여론을 모니터링한 뒤, 뒤이어 조직개편을 하는 것이다.
“백인우월 단체, 안티파 가장해 폭력 시위 선동”…트위터, 계정 삭제 (동아일보 기사)
루머의 루머의 루머
최근의 미국의 인종차별반대 시위에서 폭력을 선동하던 트위터가 백인우월 단체의 소유로 드러났다. 트위터는 그 계정을 삭제했다. 미디어는 인종차별 시위를 폭력시위로 변질시켜 오히려 대중에게 흑인에 대한 반감을 더 불러 일으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도했다. 블라인드의 라운지는 자정 역할을 하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 이것은 블라인드의 양날의 검이다. 라운지는 사내 루머가 넘친다. 라인 간의 다툼일 수도, 조직 간의 알력싸움일 수도 있다. 루머를 퍼트리고,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
둔감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을 한껏 키우고 활짝 꽃 피우게 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와타나베 준이치)
이제 블라인드가 될 때.
나는 가끔 후배들에게 얘기한다. 둔감해지라고 말이다. 블라인드를 100% 믿지 말라고도 한다. 블라인드는 폐쇄 커뮤니티지만, 이미 모두에게 너무나 오픈된 공간이다. 직장인과 회사, 경영진 모두에게 말이다. 부정적인 기운으로 나의 감정과 에너지를 휘둘리지 않기 위해, 균형 있는 블라인드 활용법이 필요하다. 내가 취미 테마나 같은 직군 라운지에서만 활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요즘 날은 더없이 밝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외국어를 배우고, 나를 긍정으로 이끌 사람들을 만나자. 많은 것들이 내 주변에 있다. 오늘은 잠시 내가 블라인드 되기 좋은 날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