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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작가 Jun 12. 2020

유럽인이 되었던 기억

<유러피언> - 올랜도 파이지스

유럽인이 되었던 기억

유럽이라는 곳에 살았던 적이 있다. 모두가 인정하는 유럽의 핵심 국가인 독일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냈었다. 내가 살던 곳은 뮌헨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동쪽으로 달리면 도착하는 데겐도르프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에 있는 작은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국제경영학을 공부했다.


교환학생도 학생인지라 주된 목적은 공부가 되어야만 하지만, 내가 교환학생을 지원했던 가장 큰 목적은 공부가 아니었다. 내 인생 버킷리스트였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1년간 살아볼 것!'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고의 기회 중에 하나는 바로 교환학생이었다.


당시 나는 지방대에 다니고 있었다. 지방대라고는 해도 나름 그 대학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계자동차공학과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가 남부럽지 않은 충실한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 속에 들어있는 열정을 발견했고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계속 충족되지 않던 마음속의 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외국에 나가서 1년간 살아보는 것이었다. 곧 기회는 찾아왔다.


우리 학교 최초로 독일에 있는 학교와 교환학생 협정이 체결되어 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 것이다. 그런데 교환학생을 주고받는 학과는 경영학과에 한정되어 있었다.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바로 경영학 복수전공을 신청했고 그 자격으로 교환학생에 지원했다. 결과는 합격! 일 년간 생활비 서포트를 해 주시겠다는 부모님의 승인을 받고 독일로 떠날 수 있었다.


나의 몸보다 큰 이민가방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린 후 기차를 타고 뮌헨으로 간 다음 다시 다른 기차를 갈아타고 약 1시간을 달려 중간에 다른 기차도 또다시 한번 갈아타야지만 도착할 수 있었다. 힘겹게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난 후 ,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을 때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유럽에 와 있구나!


기차로 연결된 유럽

교환학생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혼자 하는 '기차 여행'이었다. 독일은 유럽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여러 나라로 여행하기 정말 좋은 위치였다. 유레일패스라는 것을 사면 국가를 가리지 않고 유럽 내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로 기차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하루 동안 거리와 횟수 상관없이 무제한 기차를 탈 수 있는 티켓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점은 너무나 컸다. 휴일도 많고 시간도 많았던 나는 긴 연휴가 생기면 무조건 기차에 올랐다. 하루에도 몇 개의 나라를 거치며 멀리 이동했고 창밖으로 여러 나라의 풍경을 지켜보았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8,9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달렸는데, 그럴 때마다 기차에서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고 메모를 남겼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그 나라를 천천히, 오래도록 둘러보았다. 조용하고 차분한 나의 여행 스타일은 이때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여행은 딱 여기까지였다. 조금 더 깊게 '유럽'이라는 나라는 이해하는 데에는 나의 지식이 너무나 얕았다.


유럽의 도시들은 제각각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각 도시를 들리면 어김없이 관광안내 책자나 가이드에는 유명한 미술관, 오페라극장, 유명 인물의 생가 등이 소개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몇 번씩 둘러보았으나 이내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 그 배경이 어떠한 것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하나의 유럽으로

올랜도 파이지스 교수가 쓴 <유러피언>은 유럽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음악, 미술, 문학 등 전반적인 예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준다. 또 이런 발전이 어떻게 여러 개의 국가로 이루어진 대륙을 하나의 '유럽'으로 뭉치게 만들었는지 알려준다. 이 책은 중요한 세 사람의 이야기 중심으로 펼쳐진다. 가수이자 작곡가인 폴린 비아르도(1821~1910), 언론인 겸 저술가인 루이 비아르도(1800~1883),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가 그 주인공이다.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19세기 유럽이 어떻게 하나의 '유럽'으로 성장했는지 그 과정을 볼 수 있다.


유럽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가 되는 데에 가장 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바로 철도였다. 유럽 곳곳에 철도가 연결되면서 사람들의 생활권이 넓어졌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오페라와 극단, 예술작품들도 유럽 곳곳으로 빠르게 전달될 수 있었다. 이렇게 유럽 사람들은 서로의 문화, 예술, 가치를 공유했고 그들이 한 나라의 시민을 넘어 '유럽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수십 년 동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오페라와 극단, 예술 작품의 순회 전시, 작품 낭동회에 나선 작가 등이 문명의 이기인 철도를 이용하여 폭넓게 여행했다.


당시 이런 배경이 없던 나는 기차를 타면서도 큰 감흥이 없었다. 다만 기차 고유의 감성적인 낭만을 느끼고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도 '독일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것보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인식하고 있던 이유도 동일했다. 마음만 먹으면 유럽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내 인식을 바꾸었다. 하루 만에 파리도 갈 수 있고, 스위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러시아 등 기차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놀라운 사실임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독일로 간 유학생이 아니라 유럽으로 간 유학생이었다.


19세기의 발전은 돈의 흐름이다

19세기의 발전을 큰 흐름으로 보면 돈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반 유럽은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위대한 곡을 작곡한 작곡가도 그 악보를 처음에 팔아넘길 때만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그 후에는 수많은 복제본이 생겨도 보상은커녕 막을 수도 없었다. 19세기 초반 위대한 오페라 작곡자들이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써낸 이유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저작권이 인정되고 인세를 받게 되자 동일한 작곡가의 작곡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학작품의 경우에도 똑같았다. 특히 국가 간에 저작권 협정이 없던 19세기 초반에는 한 나라에서 인기를 얻은 작품은 저자의 동의 없이 다른 나라게 번역되어 값싸게 팔려 나갔다. 이런 방식이 서로 다른 나라의 예술을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하고 교류를 넓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정작 수많은 해적판 번역책이 인기를 얻는 작은 나라에서는, 자국의 실력 있는, 그러나 무명인 작가들이 빛을 볼 수 없는 구조였다.


투르게네프가 생애 동안 주장해온 작가의 저작권 보호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결실을 맺었다. 1886년에 10개국간에 맺어진 베른 협약은 오늘날 세계 172개국이 참여한 저작권 등의 기초문서가 되었다.


1886년 9월 9일에 10개국(프랑스, 벨기에, 영국, 독일, 아이티, 이탈리아, 라이베리아, 스페인, 스위스, 튀니지)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문학 및 예술 작품을 위한 베른 협약으로 체결되었다.


그러나 투르게네프의 고향 러시아는 이 협약에서 빠져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러시아 문학을 많이 번역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이 당시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무교육이 실행되어 글을 읽을 수 있는 국민의 숫자가 대폭으로 증가했고, 이와 동일하게 출판시장이 급성장하는 시기였다. 이 당시 여러 출판사가 생겨 났는데, 신생 출판사의 경우 작가에게 저작권료를 주지 않아도 되는 외국작가의 번역서는 작은 자본으로 큰 수익을 노릴 수 있는 좋은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이미 유명한 프랑스나 영국, 독일 작가들의 책이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시장이 작은 나라로 활발하게 공급되었다. 이는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에서는 서유럽의 이미 유명한 작가들의 번역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번역되어 유통되는 러시아 문학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베른협약 이후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국제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받지 않는 러시아 문학은 서유럽의 많은 출판사들에게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1886년 후반부터 러시아 문학의 번역본이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와 같은 러시아 작가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출판기술과 더불어 철도의 발달은 작은 소도시까지 빠르고 신속하게 새로운 도서를 공급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출판사들은 다수의 대중을 타깃으로 한 저렴한 문고본을 내기 시작했다. 출판업자들은 책값을 낮추어 많은 대중에게 판매하기 위해 독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저작권이 소멸한 고전 작품의 발간에 집중했다. 고전 목록은 일종의 출판 기획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기획물은 학교와 공공도서관, 기차역, 공원, 광장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퍼져 나갔고 문학 작품들의 고전 목록을 더욱 확고히 했다.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세계 문고> 시리즈는 1880년대 매해 1백5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미술작품과 음악의 흐름도 동일하다. 새로운 사진 기술과 복제기술이 발달하면서 미술 또한 그 대상이 부르주아에서 일반 대중으로 옮겨 갔다. 대중으로의 여러 판로가 개척되자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인기 있는 고전 미술 작품들에 기획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기념품, 안내서, 소장용 엽서 등은 대중 개인들의 아트 컬렉션이 되었고 그 작품들은 고전의 지위를 더 확고히 누리게 되었다.


일반 대중이 음악을 소비하기 시작하자 극장 관계자들은 실패할지도 모르는 신곡을 연주하기보다는, 이미 대중들이 잘 알고 인기 있는 오래된 고전음악들을 주로 연주했다. 고전을 연주하면 악단의 리허설 횟수도 줄어들고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도 많았으므로 운영비 또한 절약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오래되고 이미 유명한 음악들이 '고전'으로 굳어지는 과정이었다.


이 모든 발달 과정에 철도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새로운 정보와 기술, 물자, 책, 예술품, 가수, 작가, 대중들은 열차를 이용해 여러 나라 구석구석 다닐 수 있었다. 지방에 있던 사람들도 열차를 이용하면 대도시에 있는 극장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기차를 이용해 전달되는 다양한 책과, 예술품은 시골 상점에도 그 유행을 전달했다.  

19세기의 마지막 몇십 년 동안에 국가 기념행사와 최고의 책 목록 외에, 경제적 힘에 의하여 유럽의 카논이 결정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동,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 드는 돈과 상품, 인쇄와 새로운 사진 기술, 대량 유통과 수송, 국제 저작권법 등의 확립 등으로 1880년대에 이르러 유럽 전역에 음악, 오페라, 발레, 미술, 문학 분야의 '클래식' 작품들의 안정적인 레퍼토리가 정립되었다.


다시 유럽에서 기차를 타고 싶다

폴린과 투르게네프도 열차를 이용해 많은 곳을 다녔다. 파리와 독일, 영국, 러시아 등을 거치며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고 투르게네프 또한 열차를 이용해 고향에 있다가도 열차를 이용해 금방 다시 폴린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폴린이 러시아로 공연을 갈 때도, 여러 도시를 거치며 오페라 순회공연을 할 때도, 투르게네프가 폴린을 그리워하며 다시 파리로 돌아올 때도 모두 철도는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나의 유럽에서의 생활 1년은 좀 더 풍요로웠을 지도 모른다. 미술관을 다니며 작가가 누구인지 보았을 테고, 어떤 사람의 손을 거쳐 이 곳의 컬렉션이 되었는지 궁금해했을지도 모른다. 모차르트와 괴테의 생가를 구경하며 그들이 폴린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모습으로 음악과 글을 썼는지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기차역 플랫폼에 들어서는 기차를 바라보며 그 옛날 최초로 개통된 기차를 반기며 환호하던 대중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몇 시간씩 타던 기차 안에서는 빈자리를 보며 그곳에 앉아 폴린을 그리워하는 투르게네프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폴린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오페라를 찾아 관람했을지도 모른다.


같은 1년의 시간이었겠지만, 19세기의 유럽이 어떠했고 어떻게 지금까지 발전해 왔는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있었더라면, 좀 더 많은 이해를 하고 있었더라면, 훨씬 더 풍요롭고 감성적이고 많은 것을 보고 배워가는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각주, 참고문헌을 제외하고도 정확히 846페이지에 달한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그 어떤 책 보다 두껍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그 두께와 깊이에 두려웠지만 책을 끝내갈 무렵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게 아쉬웠다. 올랜도 파이지스 교수는 '하나의 유럽이 어디서 시작됐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너무 오랫동안 유럽의 역사를 연구해 언제부터 이 책을 집필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있는 책인가. 19세기 유럽의 발전을 폴린, 루이, 투르게네프라는 세 사람들 통해 하나로 엮어내는 파이지스 교수의 책은 정말로 놀랍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책도 현대 고전문학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다시금 유럽여행을 오랫동안 할 기회가 있다면 다시 이 책을 펼쳐 들고 중요한 부분을 읽어야겠다. 그리하여 좀 더 깊고 오래된 유럽의 역사를 느끼고 배우고 오고 싶다는 작은 하나의 꿈이 생겼다.

#체인지그라운드 #씽큐온 5기 #신영준박사 #고영성작가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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