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 사람 문제가 아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네가 그러니까 내가 이런 거 아니야!', '이건 다 네 탓이야'. 이렇게 남을 원망하고 미워해 본 적 있으신가요? 아무리 그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해 보려 해도 매번 실망만 하지 않았나요? 저도 그렇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자꾸 그 사람 탓인 것 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제 주변에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참으며 피해 다녔어요.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애써 시선을 돌렸던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걱정을 하면서도 말이죠.
그러다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원망과 미움은 내 탓이라는 것을. 흔히 생각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명상을 하는 뭐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 형이상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논리적이고 바로 적용이 가능하며, 명쾌한 해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제가 '상자' 안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상자' 안에서 탈출하여 상자 밖으로 나오면 이런 원망과 미움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 '상자'라는 것이 뭘까요?
이 '상자'라는 것은 바로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 또는 태도의 기준입니다. 상자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은 합리화하면서 타인을 계속 비방합니다. '이건 전부 너 때문이야'라고 생각하죠. 동시에 타인의 존재를 나보다 더 가볍게 여기게 되고 다른 사람을 체계적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입니다. 반면에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식 합니다. 그 또한 나와 동일한 욕구를 가진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왜곡된 시선도 아니고 편견도 없는 사실 그 자체로 타인을 바라보고 이해합니다. 조금 어렵나요? 그렇다면 저의 실제 경험을 통해 한번 설명을 드려 볼게요.
저는 대체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가끔 아내와 싸우는 경우가 있어요. 그 원인의 대부분은 집안일에 대한 생각과 시선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주로 아들을 등원시키고, 요리를 하고, 목욕을 시킵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재우는 것까지 주로 제가 하는 일이에요. 아내는 그 외 나머지 일들을 모두 합니다. 퇴근 후 아들 하원 시키기, 빨래 돌리기, 설거지하기, 집안 정리하기 등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고 있죠.
그런데 아내가 저에게 다른 잡다한 집안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불평을 할 때가 많았고 저는 저 나름대로 아빠가 직장도 다니고 부업도 하면서 이 정도 하는 거면 많이 하는 거 아니냐는 논리를 폈습니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며 은연중에 서로의 영역이 굳어지기 시작했어요. 서로 각자의 일을 하면서 상대방을 감시하는 느낌까지 들었죠. 그리고 둘 중 한 명이 자신이 하기로 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미루면 그걸 트집 잡아 비난을 하며 싸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느 저녁이었어요. 퇴근 후 요리를 하려고 주방에 갔는데 어제 사용한 식기들이 싱크대에 쌓여 있었어요. 그 상태로는 도무지 요리를 할 수가 없었죠. '이것 봐. 설거지할게 많다고 맨날 불평하면서 사실은 매일 하지도 않잖아!'. 제 마음속에는 금방 불만이 차 올랐습니다. 딱 필요한 몇 개만 설거지를 간단하게 하고 저녁을 차리면서 아내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우리는 서로가 잘못한 점을 또다시 비난하기 시작했죠. 여전히 답이 없는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는 점심을 먹으려 들어선 주방에서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를 보며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것 봐, 또 안 해놨네. 언제 설거지 하는지 한 번 보자' 그렇게 벼르기까지 했죠.
제 모습이 상상되시나요?
이때 저는 분명히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빠로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에게 책 읽어주고 재우기까지 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큰 일이지만 아내가 하는 집안일들은 다른 엄마들에 비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나에게 불만을 품는 아내의 태도는 잘못되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아내의 탓이며 아내가 생각과 행동을 고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저는 분명 상자 안에서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저의 모든 행동은 정당화시키며 아내의 생각과 행동을 비난했습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은 정당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내를 비난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행동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아시나요? 바로 내가 상자 안에 들어 감으로써 아내 또한 상자 안에 들어가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아내 역시 자신의 상자 안에 들어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며 저의 행동을 비난하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상자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왜 상자 안에 들어갔을까요? 그건 바로 우리가 '자기 배반'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배반은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에 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자기 배반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상자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저의 이야기 기억나시나요?
재택근무를 하며 점심을 먹기 위해 주방에 들어섰을 때, 그때 아내가 쌓아둔 설거지 거리를 봤을 때 말이죠. 이때 사실 제 마음속에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이 뭔지 아시나요? 놀랍게도 저의 깊은 마음속에서는, '이 설거지를 내가 대신해 주면 아내가 아주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아내와 싸웠던 기억이 나며 애써 그 생각을 외면했습니다. 이 순간 저는 바로 '자기 배반'을 한 것입니다. 아내를 위해 내가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것이죠. 그 순간 저는 또다시 상자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또다시 내 행동을 정당화했고, 내 행동은 정당하기 때문에 아내를 비난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직장 상사와의 관계, 아내와의 관계, 자식과의 관계, 친구 또는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수많은 자기 배반의 순간이 존재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해야 한다고 느끼는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배반하는 것이죠. 그 순간 우리는 상자 안에 들어가게 되고 왜곡된 시선을 가진 채로 상대방을 평가합니다. 동시에 상대방도 상자에 들어가게 만들어 서로를 비난하고 끌어내리는 파멸적인 관계를 만들게 됩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일까요?
아빈저연구소에서 지은 <상자 밖에 있는 사람>에서는 그에 대한 해답을 다양한 측면으로 설명하고 해석해 줍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실천하기 쉬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자기 배반을 하지 않는 것이죠. 누군가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느낌이 들었을 때 그것을 그냥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내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가 사라지고 동시에 상대방을 비난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실천한 내용도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 배반을 좀 줄여 보기로 한 것이죠.
아까 말씀드린 부분 기억 하시나요?
재택근무를 하면서 쌓여 있는 설거지를 바라보던 저의 모습 말이에요.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놀랍게도 자기 배반을 하려는 그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며 '이 걸 내가 대신해 주면 아내가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하고는, 곧바로 다른 변명을 하며 애써 아내와 싸웠던 것들을 떠올리는 제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었죠. 그리고 이번에는 자기 배반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설거지를 시작한 것이죠.
설거지를 시작하고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내 일도 아닌데 그것을 하느라 엄청 짜증이 났을까요?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자기 배반을 하지 않자 더 이상 저를 정당화시킬 필요가 없었어요. 동시에 아내를 비난할 이유가 없어졌죠. 가장 가까운 사이인 아내를 비난하지 않으니 제 마음도 너무나 평온했어요. 퇴근 후 깨끗해진 주방을 보며 웃음 지을 아내 생각을 하니 마치 선물을 준비하고 설레는 기분이었죠.
아내가 퇴근 후 집에 왔습니다. 깨끗해진 주방을 바로 먼저 알아 보더라고요. 그리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언제 이걸 또 해 놨데~~?" 아내의 입가에는 분명 미소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번 어깨를 으슥할 뿐이었죠. 아내도 분명 쌓아 뒀던 설거지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골칫거리를 제가 없애 놓으니 기분이 좋을 수 밖에요. 그날 저녁은 아주 평온했던 기억이 납니다. 평소 같으면 아내가 잔소리했을법한 저의 작은 행동들도 그날 저녁은 아무 문제가 없었죠. 그렇게 저와 아내는 둘 다 상자 밖으로 나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방법을 안다고 해서 항상 자기 배반을 하지 않으며 상자 밖으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행동과 경험, 생각들이 굳어져 누군가는 항상 상자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 어떤 것에 대해서는 변하지 않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죠. 그러나 이 '자기 배반'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상자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것이 인간관계의 문제를 일으키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혹시 여러분도 친구, 혹은 직상상사, 동료, 연인, 가족과 자주 다투고 비난할 때가 많은가요? 그렇다면 여러분도 상자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된다면 내가 언제 자기 배반을 하는지 잘 관찰해 보시길 바랍니다. 딱 한번, 자기 배반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잡아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딱 한 번만 말이죠. 친구를 위해, 직장 동료를 위해, 연인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내가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그 순간, 그 지점을 파악해 보세요. 그리고 나 스스로 합리화하기 전에 그 생각대로 그냥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에게도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될 거에요.
인간관계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다른 사람이 계속 생각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그 사람을 바꿀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바로 나 자신을 바꾸는 겁니다. 타인의 상자를 찾기 전에 내 상자를 먼저 찾으세요. 한 번에 문제를 다 해결하려 하지 말고 어제보다 조금만 더 나아지는 것을 목표로 하세요. 하루에 딱 한 번만 자기 배반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실천을 해 보세요.
사실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상자 밖으로 나오는 경험을 해 보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많이 다투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관계 문제는 자기 배반을 하지 않으며 상자 밖으로 나올 때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 배반의 순간을 항상 감시하고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기 배반을 이겨내고 상자 밖으로 나가 소중한 관계를 회복시키는 기적 같은 경험을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쌤작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