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퇴근은 당연한 것이다.
'워라밸'
'Work-Life Balance'의 줄임말로 구직자들이나 직장인들이 특정 직장의 일과 삶 사이의 균형성을 평가할 때 쓰는 말이다. 워라밸이 좋으면 야근이 없는 직장이고, 워라밸이 나쁘면 야근은 물론 집까지 일을 떠안고 와야 함을 일컫는다. 온라인 상에서 떠돌던 말이 '알쓸신잡'에 출연한 정재승 교수의 입을 타며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 이 단어의 존재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은 정해진 시간만큼만 일을 해야 하고 퇴근 이후에는 직장과 완벽히 분리되어 여가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나처럼 생각하는 직장인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특히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오기 힘든 속도로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뤄낸 세대 앞에서는 워라밸의 '워'자도 이해시키기 힘들 것이다. (실제 경험으로도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 9115달러로 세계 30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한창 경제 성장을 이뤄내던 때에 비해 훨씬 나은 살림살이를 영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세상은 변화했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도 변화하고 있다. 이른바 '요즘 것'들은 월급이 많은 직장보다 저녁이 있는 삶은 선호하는 세상이 됐다.
몇 해 전 서울대 졸업생이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서울대 대나무 숲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화제가 됐었다. 응당 서울대 출신이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판검사, 변호사, 의사 등 잘 나가는 직업을 택하기 마련인데 그 녀석은 9급 공무원이 되고 자랑스럽다고 글을 올렸다. 9급 공무원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선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사례였다. 그 녀석이 9급 공무원을 택한 이유는 오직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서였다. 급여가 적더라도 말이다.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선보이며 스타트업 성공의 상징이 된 우아한형제들에는 퇴근과 관련된 규칙이 하나 있다.
'퇴근할 땐 인사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절대 들어볼 수 없었던 문구다. 왜 퇴근할 땐 인사를 하면 안 될까? 아무리 조직문화가 수평적인 기업이라고 해도 모든 회사에는 상사가 있다. 또한, 수직적 조직문화가 평범한 우리나라에서는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후배 사원들도 눈치를 보며 야근을 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지켜져 왔다. 이 같은 문화를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나 예능 등 TV 프로그램을 통해 조기교육(?)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불쌍한 우리 직장인들은 구글에 데려다 놔도 상사 눈치를 보며 야근을 한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자 퇴근할 때 인사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백번 이백 번 곱씹어봐도 맞는 말이다.
실제로 업무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이 상사 눈치 보며 야근하는 직원보다 생산성이 높다. 지난해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069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멕시코 (2255시간) 다음으로 길었다. OECD 평균(1763시간)은 물론 과로사가 사회문제가 된 일본(1713시간)을 크게 웃돌았다. 요약하면 과로사하는 나라보다 일을 많이 하지만 생산성은 낮다는 것이다.
오늘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다. 난 오늘 야심 차게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퇴근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퇴근할 때 인사하지 않기' 캠페인을 벌여 우리 팀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문화를 만들 계획이다. 이 작은 변화가 우리 팀의 생산성을 높여 사내 가장 일 잘하는 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