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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글방글베시시 Nov 08. 2015

모든 순간이 이야기가 되는 공간.

몰로비바잘, 알콩달콩한 작은 마을 이야기.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몰로비바잘로의 복귀.

아직도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다는 사무장님의 판단에

평소 타던 버스를 못 타고 회사차를 타고 왔다.

아무렴 어때. 그냥 좋았다.


돌아온 몰로비바잘은 내가 없던 한 달 사이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도 보냈나 보다.

예전보다 더 푸르러졌다. 더 풍족해졌다.

아 나는 진짜 이 시골과 깊은 사랑에도 빠졌나 보다.

내 눈에 안 예뻐 보이는 모습이 없다.


오늘의 주제는, 없다.

몰로비바잘에 도착하고 나서 보낸 나의 첫 하루.

그 속에 들어있는 몰로비바잘의 모습들.

꾹꾹 눌러 담아 나 혼자 보고 싶지만,

좋은 건 나누는 게 인지상정이라.

마음 가득하게 보여주고 싶은 예쁜 마을,

몰로비바잘 মৌলভীবাজার


누군가가 한 뭉태기 한 뭉태기씩 솜을 주물러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윙가디움 레비오사.

몽글몽글한 구름들을 하늘에 하나씩 올려 보낸 듯

환하게 퍼진 논 위로 구름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이 시골의 넘치는 지평선이 참 좋은 이유는,

바로 하늘과 땅이 맞닿는 선이 보이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넓은 하늘을 한 눈에 보는 순간,

숨 한 번 크게 들이키면

내 마음도 그렇게 넓어지기 때문에.


이 날은 마을 구석의 작은 학교를 방문하는 중이었다.

논과 논 사이의 둑을 걸어 다니는 일도 신명 나지만,

논과 논 사이에 길게 쭉 뻗은 곧디 곧은 길을

오토바이에 매달려 달리는 기분도 보통 상쾌한 게 아니다.

바람을 온 얼굴로 맞으면서

양 옆으로 뻥 뚫린 논이고 하늘이고 쳐다보고 있으면

세상의 절반이 내 시야 안에 들어온 듯한

커다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 동네의 좁은 골목 탓에 오토바이는 매우 중요한 이동수단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안 그래도 좁은 길에 넓게도 펼쳐 놓은 포대자루들.

옹기종기 모여있는 쌀알들은 가득한 햇살을  온몸으로 먹고 있었다.

이 동네의 추수 시기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이 길을 어떻게 가나 고민했는데

직원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스락거리는 쌀알 위로 달리셨다.

주인아주머니도 옆에서 그냥 환하게 웃고 계셨다. 얼라.


한창의 우기가 지나고 뜨거운 열기가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나무들도 힘이 뻗어 나는지

더 파란 이파리를 뿜어내고 더 곧은 줄기를 솟아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저 나무 사이의 조그마한 초록 차는 CNG.

세 개의 바퀴에 의존해서 덜거덕 덜거덕 달려오는 저 친구는

이 동네의 꼬마 자동차.

양 쪽에 문이 없어서 차를 타 있는데도 맘껏 손을 뻗고 머리를 내밀 수 있다는 게

우기에는 단점이었지만, 지금은 그만한 장점이 없는  듯하다.

자세히 보면 사진에도 팔이 빼꼼하고 나와있다.

승용차의 절반 크기지만, 신기하게도 저 안에는 10명도 넘게 탈 수 있다.


방글라데시, 특히 시골에서 더 자주 보이는  듯하는 이 모습.

유독 어깨  한쪽에 지탱해서 물건을 옮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내 눈에는 가라앉는 한 어깨가 걱정되지만,

이 분들은 나름의 리듬에 발맞춰서 터거덕터거덕 걸어가신다.

바구니만이 아니라 때로는 대나무를 지고 가기도 하신다.

저 분들의 바구니는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로 바다로 갈까나.

그물을 한 가득 지고 움직이는 저 청년들은

고기를 잡으러 어디로 갈까나.

갓 추수를 끝낸 논? 연못? 강?

그물의 크기를 보니 작은 물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아닌  듯하다.

바닷물고기보다 민물고기가 더 익숙한 이 나라 사람들에게

물고기잡이는 하나의 놀이이자 생계이다.


딸랑딸랑.

쾌하다기엔 다소 요란한 종소리가 딸랑딸랑 울리면

아, 이건 아이스크림 아저씨가 오고 있다는 신호.

우리나라의 찹쌀떡 메밀묵을 뒤잇는 종소리 아이스크림.

릭샤를 개조한 세 발 자전거에 커다란 아이스박스 하나 싣고

종을 울리면서 달그닥달그닥 페달을 밟으면서 손님을 부른다.

오늘은 저 아이가 엄마 조르기를 성공했다.

조그마한 아이스크림을 받아 드는 아이의 얼굴에

짧은 막대기를 기필코 제대로 받겠다는 각오가 가득하다.

저건 내 거야.


이 날 방문한 한 선생님의 집.

도시보다는 깨끗한 환경 속에 지어진 집은

네모난 정원을 중심으로 여러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다.

특히나 친척끼리 한 집에 뭉쳐 사는 이 동네는

이런 ㅁ자 모양의 집들이 많다.

물론, 소를 위한 외양간도 꽤나 넓게 마련되어 있었다.

휴양지에나 있을법한, 멀리 솟아있는 열대 나무들이 약간의 이질적인 느낌을 추가한다면,

집 여기저기 줄 하나 길게 매달고 턱턱 걸어놓은 빨래들이 정겨운 느낌을 보태준다.


방글라데시는 물이 많은 나라다.

특별히 지도에 '여기 강이 있어요'라고 적혀 있지 않아도

지역 곳곳에 이렇게 강이 흐른다.

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그냥 들어가도 아무 탈없이 반대쪽으로 나갈 수 있는 얕은 강이었다.

이 강도 사람들에게는 역시나 온갖 용도로 쓰이겠지.

물지게를 메고 첨벙첨벙 물을 휘젓고 들어간 저 아저씨는

밭에 뿌릴 물을 위해 양 쪽 지게 가득 무게를 담아서 몇 번을 왔다 갔다 하셨다.

들어가고 싶었는데.

운동화를 선택했던 오늘 아침의 내가 어찌나 얄밉던지.


사실, 몰로비바잘에 오고 나서 논은 많이 봤었지만

밭은 자주 보지 못했다.

날씨가 이제야 선선해지기 시작해서 그런지 요즘 들어 밭농사를 시작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고랑고랑 예쁘게 파인 굴곡들에 씨를 뿌리고 물을 뿌리고.

아저씨가 들고 있는 물뿌리개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맨발로 한 발 한 발 걸어 다니며 물을 뿌리시는데

스프링클러로 쫘악 뿜어내는 것보다 몇 곱절은 정성이 담긴  듯했다.

한 녀석이라도 물을 못 줄까 바닥만 보고 계속 물을 뿌리셨다.

강에서 갓 길어온 신선한 물을 먹은 저 녀석들은 쑥쑥 잘 자랄 것이다.


내게는 시계와도 같은 볏잎들.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황량하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허했던 벌판들이었는데.

어느새 모내기를 하고

어느새 길쭉한 볏잎들이 쑥쑥 파랗게 자라 오르더니

어느새 누런 기운의 무게에 못 이겨 고개를 숙여 벼가 되었다.

내가 이 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얼마나 더 남았는지.

흘러가는 시간을 눈으로 보여주었다.

곧 벼들이 추수가 되어 사라지면, 그건 아마

몰로비바잘과 나의  머지않은 이별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몰로비바잘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하루의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생각들이 쏙쏙 샘솟아 올랐다.

여기에 와서 좁아졌던 마음이 넓어지고 여유로워졌다.


몰로비바잘에 올 때면

어린 시절 순창을 갈 때 느꼈던 포근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여기만 오면 마냥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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