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작년을 처음으로 올 해로 두 번째 가는 수능감독.
사실 가기 전 날까지도 걱정이 앞서는 허리 통증과 무료함, 수험생들의 인생의 무게를 나눠 지게 되는 중압감 때문에 가기 싫다를 되뇌는 역할이다.
그래도 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기에 당일 아침 '싫다'라는 말을 삼키고 '잘해보자'라는 생각을 채워 이른 아침 출발을 한다.
나는 정작 수능을 보러 갔던 이 년 동안 그 등교길?이 그리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까지다'라는 생각에 무게가 있으면서도 가벼운 발걸음을 총총 옮겼더랬다.
나는 묘하게도 수능 감독을 가는 이 년 동안 그 출근길?이 슬펐다. 도시락을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수험생들을 볼 때, 수험생을 배웅나온 가족들을 볼 때, 교문에 응원나온 후배들을 볼 때, 하물며 혹여 모를 상황을 대비해 버스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는 경찰 오토바이를 볼 때까지. 혼자 울컥울컥 올라오는 마음을 쓸어내리며 학교로 향했다.
마음 속으로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면서.
이번 고등학교는 문과 남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학교.
뒷문 앞 맨 뒷자리 앉은 학생이 시계가 없다고 했다. 얼라? 생각이 들었지만 착실하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어련히 방법이 있겠구나 싶었다.
종료 10분 전임을 알리는 방송이 울렸다. 마킹을 안 한다. 얼라?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가 생각한 때가 있겠지 싶었다. 내 손목의 분침이 움직일수록 내가 초조했다. 마킹 좀 하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2분 전 즈음이 되자 싸인펜을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조차 느려서 내 마음이 다 초조했다. 종료 종이 울렸다. 결국 10문제 가량을 마킹을 못하고 제출을 했다. 내가 그 시험지를 걷었다.
내가 다 속상하고 마음이 안타까웠다. 정작 아이는 표정이 덤덤했던 것 같다.
정감독. 공고 학생들 16명이 있는 교실이었다. 시험 시작 종과 동시에 찍고 눕는 아이들이 많았다. 끝까지 푸는 아이는 4명 정도. 그 모습이 기특했다.
인상 깊었던 아이는 시험 시작하고 20분 정도 풀고 다 푼 냥 엎어졌다가 종료 40분 전 쯤 다시 일어나서 끝까지 풀었던 아이. 수학을 풀고자 했던걸까 포기하고자 했던걸까.
찍은 자도 푼 자도 그 시간을 견뎌내느라 고생했다.
한국사 시험지를 걷는데 한 아이가 시험지 표지에 적은 문구가 내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엄마 아빠 미안해. 난 이게 끝인가봐.'
아니야. 이건 끝이 아니야. 힘을 내. 라고 간절히 전달하고 싶었다.따뜻하게 머리를 쓰담아주고 싶었다. 그 아이에게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간절히 빈다.
아이들도 긴장이 풀리는 시간. 화장실을 오가는 횟수가 크게 늘어난 걸 보면 긴장이 풀린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시험이 끝나고 답안지 검토가 완료됐다는 방송을 대기하는 시간이 좀 길었다. 고생했어요라는 말을 계속 반복해도 시간이 남자 괜시리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국어 시험이 오죽 어려웠으면 감독관한테 말할까 싶지만 나에게 국어가 어려웠다고 하소연 하는 수험생.
너무 지쳐보여서 괜찮아요. 고생했어요. 오늘은 집 가서 맛있는 거 먹고 힘내요. 라고 말을 걸었더니 웃는건지 우는건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수험생.
나에게 대뜸 '안 기다리고 도망가면 어떻게 돼요?'라고 물어서 도망가면 내가 잡으러 가야하는데 나 달리기 느려요. 가지 말아요. 라고 대답하니 베시시 웃더니 주섬주섬 자기 주변 쓰레기를 총총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던 수험생.
현역 때보다 국어를 더 못 봤다고 하면서 속상해하다가 그래도 일 년 동안 나를 믿고 지원해 준 엄마한테 고맙다고 연락해야지 하던 속 깊은 수험생.
이 모든 이들에게 앞으로 좋은 일들이 있기를.
수능 한 번으로 자신의 인생을 판단하지 않기를.
한 명 한 명이 다 시험 하나로 판가름을 낼 수 없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걸 알고 지내기를.
스스로를 아끼고 스스로를 사랑하기를.
바라본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이 필적확인문구 말이 백 번은 옳다.
2018년 수능 필적확인문구 한 번 잘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