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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추뚭이맴 Nov 14. 2016

순천에서 마음 비우기

지치고 힘들 때 떠난 여행



사람은 누구나 지치기 마련이다.

그게 언제가 됐든 누구에게나 한 번쯤 인생이 버거운 순간이 찾아온다.

요 근래 그랬다.

일은 일대로 손에 잡히지 않고 하루 종일 우울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쭉 이어졌다.


위태로운 절벽에까지 몰리고 나서야 내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떠난 여행. 그곳은 순천이었다.

전에도 몇 번 가자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가본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솔직히 얘기하면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바람을 채우는 여행이기를 바랐다.






낙안읍성의 성곽에서 바라본 모습.



시티투어를 타고 순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드라마 세트장도 갔다 왔고 선암사도 갔다 왔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버스에 몸을 싣고 오는 사이 멀미가 났다.

두통약을 먹고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니 다음 여행지에 도착했다는 반가운 말이 들렸다.



하늘에는 구름이 많고 쉴 새 없이 나부끼는 바람을 온몸에 맞고 성곽을 따라 낙안읍성을 한 바퀴 돌아봤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한 줌 한 줌 마음의 짐을 가지고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평안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았다.



여행을 간다고 해서 내 마음의 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짐은 그곳에 항상 있었다.

하지만 지치고 우울해진 나 자신을 달래주며 새로운 공기를 맞을 필요가 있었다.

미련하게 기운도 없는데 굳이 짐을 짊어질 필요가 있을까.

때론 짐을 내려놓고 그동안 고생한 어깨며 다리도 주물러 주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며 기운을 차려야

다시 한번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을것이다.

 

그것은 절대 비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응당 해야 될 일이다.




위에서 낙안읍성의 전경을 바라보고 나니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



사회에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우울증'이었다.

2달가량 상담을 받아보아도 효과는 미비했다.

일을 하면서 얻는 스트레스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

힘들어도 웃으라고 강요받는 상황이 너무 슬펐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것이 비참했고 모든 것이 다 나의 잘못으로 비롯된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미웠다.


내 마음속에는 악이 가득했다.

긍정적인 것은 티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야 하는 이유도 나의 존재의 이유도 그 모든 것이 무의미 해졌다.



*******

'힘내. 괜찮아질 거야.'

'어떻게 힘내. 아니 괜찮아지지 않아.'

의미 없는 위로에 지쳐갔다.

그 누구도 괜찮아지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무책임한 상처가 될 말들로 생채기를 내기 바빴다.


순천으로 가는 기차에서도 내내 우울했다.

내가 왜 간다고 했을까. 순천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후회하고 다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난 그 누구보다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웃었다. 진심으로 즐거워서 내뱉는 웃음.


여행이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새로운 것을 보니 즐거웠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행복했다.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니 그 역시도 기뻤다.

********




낙안읍성을 지나 다음 여행지는 '순천 국가정원'이었다.

그 넓은 국가정원을 시간에 맞춰보려고 우리는 바삐 움직였다.

그 순간에도 쉴 새 없이 카메라를 움직였다.

즐거운 곳에서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그동안 겪었던 힘듬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이런 순간이 매번 반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천 여행의 꽃이라 말할 수 있는 순천만.

사방이 갈대 나무 천지였다.

바람이 불면 갈대가 나부끼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고요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 공간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았다.


갈대숲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했다.

어느 순간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숲이 내게 위로를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포근하게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순천 여행을 하면서 조금은 행복감을 느꼈다.

내가 힘들어하는 공간에서 벗어난 해방감도 있었고 새로운 것을 맛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여행은 그것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휴식을 갖으며 다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도 얻게 된다.


비록 내게는 아직 커다란 짐이 남아있다.

앞으로 여러 번 무너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잠시 멈춰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뒤돌아 갈 것이다.

내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잠시 동안 현실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절벽에서 한걸음 한걸음 멀어졌다.

여행이 끝나고  이제 다시 짐을 이고 일어설 준비가 됐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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