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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Jul 10. 2024

같이 살 거면, 노력해야지, 남편과의 관계도.

아이들보다 더 피를 토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남의 집에 놀러 갔다 오면 꼭 남편에게 화가 나있었다.     

남편은 새벽 5시 50분쯤 출근해서 9시에 집에 왔다.     

남편의 직업은 급이 애매하게 높은 공무원이다.     

애 목욕만 겨우 시켜준다며 남편의 육아 참여도에 대해 비난을 하던 옆 동 엄마에게 나는 스스로 '싱글맘'이라고 생각하고 산다고, 남편은 내게 없는 사람이나 같은 존재라고 얘기했다.      

남에게 남편 욕을 하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고 생각했었던 나는, 육아를 시작했던 10년 전부터, 그 누구보다도 남편의 존재에 대해 열렬히 비아냥 거리고, 남편도 나의 비아냥에 응당한 행동을 지속해 나갔다. 어느 순간에는 비아냥을 넘어 우울증 상태에 이르렀다가, 그 존재를 지워버렸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헛된 기대로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하고 싶었던 일이 많은 영어교사였지만, 각각의 어려움이 있는 아들 둘을 잘 키워보고자 교직을 4년이나 휴직했고, 둘째의 성장에 따라 사직까지도 생각을 했다. 물론 휴직을 할 수 있는 직업임에 감사하지만, 나는 왜 그렇게 남들이 편하다고 하는(물론 막상 일을 하면 진짜 편하다고 한 사람 멱살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지만) 교직조차 사직을 할 생각을 하는데, 남편은 자기 직업이 인생의 1순위인지, 그야말로 집에서 코빼기조차도 보기 힘들다.                         


아이 둘을 혼자 케어하며 생활하는 것이 어느 정도 편해진 시점이 되니, 나는 남편이 집에 있는 것이 오히려 불편했다. 나는 남편이 눈에 보이는 게 진심으로 싫었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있다가도, 남편이 집에 오면 내 마음에 누가 불씨를 던져 놓은 듯 화가 났다. 그리고 남편이 뭐라도 한마디를 하면 그 불씨는 활활 불타올라 소방차가 와서 물을 몇 톤을 뿌려야 할 정도의 분노가 되었다.         


       

그렇지만 남편은 그냥 자기 살고 싶은데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남편의 공백에서 아이 둘을 척척 케어하는 방법을 몸으로 터득했고, 때로는 지쳐 쓰러질 질 것 같을 때가 있을 때도 쓰러지지 않는 법을 깨달았고, 화가 날 때도 그 화를 다스리는 법을 알았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철저한 내 편이 되었다. 아이들도 아빠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수준에 이르고 나니 그때서야 남편이 살짝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빈자리로 자신이 집에서 투명인간 취급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글퍼하기는커녕 더 일에 몰두하는 모습에 치가 떨렸지만, 그 또한 남편이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생존전략 아니겠는가. 남편은 그저 그릇이 작고, 감정이 메말랐으며,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일 뿐, 악한 사람은 아니다. (라고 쓰면서 왜 웃음이 터지지...)



나는 매일 아이들과 잘 지내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하고 애쓰면서, 남편에게는 항상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 잘 지내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남편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하고 애쓰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몇 배 이상의 고통이 따를지도 모르겠지만, 그 또한 내가 내려놓아야 할 마음의 짐이다. 어찌 내가 아닌 사람이 내 생각대로 해주길 바라겠는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남편에게는 예의를 지키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친절하게 말하도록 하자. 그가 딱히 나쁜 짓을 하진 않지 않았던가. 매스컴을 보면 얼마나 미친놈들이 많은데, 우리 남편은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남편이 내가 해야 할 일을 척척 해낼 것이라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의 온전함을 인정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은 우리가 어쨌든 잘 지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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