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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해 Jan 02. 2022

2021년 (개인적으로) 돌아보기

유부녀가 되었고 이사를 했다. 그리고 많이 성장했다.

브런치가 어느 순간부터 회사 글로 채워지면서 개인적인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졌다. 면접 볼 때 이걸 보고 오신다는 분들이 많더라^^; 그래도 올해는 한번 남겨보고 싶었다.

작년에는 아홉수였나 싶을 정도로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겪는 바람에 올해는 조금 긴 터널을 나오는 시기였다. 올해는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는 한 해였다. 가장 큰 변화로는 결혼을 했고, 개인적으로 성장을 많이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개인적인 회고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결혼식을 치렀다.

나는 원래 결혼식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공주처럼 꾸미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너무 어색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거기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이 아까웠다. 그런데 해보고 나니 알겠다. '아 이래서 하는구나.'

오 내 눈빛 꿀..

결혼식이 Ritual(의식, 의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회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많은 의식을 치르며 살아간다.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국민의례를 하고, 교과 과정을 이수하고 새로운 학년이 될 때의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 졸업식을 한다.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들어가면 애사심과 유대감을 만들어주기 위해 연수 교육을 하기도 한다. 의식을 통해 은연중에 어떤 가치관을 부여받는다. 결혼식은 두 사람에게 엄청난 추억과 행복을 안겨주는 세레모니인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보면 핵심기억(Core Memery)에 대해 나온다. 수많은 기억이 뇌 속에 저장되었다가 사라지지만(망각) 어떤 기억은 우리 무의식 깊숙한 곳에 박혀서 성격과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어떤 핵심기억은 긍정적인 무드의 주황색이고, 어떤 핵심기억은 부정적인 무드의 파란색이다. 그리고 극이 진행되면 더 입체적이고 성숙한 메시지를 주는데, 어떤 기억은 구슬 안에서 두 가지 색깔이 섞인다.

사람에게 무수히 많은 핵심기억 구슬. 노란 구슬이 나이를 먹으면 줄어드는데 이렇게 어른이 되는 현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다. 슬픈 기억이 담겨 있는 파란 구슬.

이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결혼식은 나와 남편에게, 혹은 부모님에게까지도 참 큰 추억과 행복을 주는 의식이자 핵심기억인 것 같다. 나를 위해 전혀 일면식도 없는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축하를 해주고 있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네? 너무 감사했고 행복했다. 물론 내가 3시간을 꽉 채워서 그럴 수도 있지만.. 예쁜 드레스, 근사한 식장, 남편의 축가, 다 좋았지만 이 행복 충만한 감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우리의 2부 이벤트가 조금 독특하긴 했지만..ㅋㅋㅋ MC 봐준 친구들 다시 한번 고마워!


결혼을 하면 심리적 안정감이 생긴다던데..

흔히들 이야기한다. '결혼하면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긴다.' 나는 어렴풋이 그 말을 어떻게 이해했냐면,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 줄 가족이 생겼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것도 맞다. 정말 짓궂고 나를 종종 화나게 하는 우리 남편도 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며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힘든 일이 있어도 바로 말을 안 하는 습관이 생겨서 한참 뒤에 소식을 전하곤 했는데 "동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이야기해도 돼."라고 해줬을 때 꽤나 감동이었다.

출처: 연애의 과학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평생 써왔던 감정 에너지의 한 축을 소거한 느낌이다. 20대 때는 새로운 만남, 연애에 대한 설렘과, 이별에 대한 불안감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친구를 만나면 남자 친구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했고 결혼할 사람인가 아닌가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니 애초에 생각 자체가 안 든다. 어떤 자리를 나가더라도 다른 이성과의 연결로 일말의 가능성도 없어졌으니 편하다. 그렇다고 내가 연애를 하면서도 매일 침을 흘리고 설렌 것은 아니나, 법적으로 묶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조금 있는 것 같다ㅋㅋ 나 너무 솔직한가..?

그래서 결혼하면 안정감을 찾고 자기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그 감정이 소거되어서 아쉬워할 수도 있겠지만^^;


2인 가구가 되었고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결혼식 전부터 같이 살아서 이제 8개월 차에 접어든다. 달콤한 신혼 생활 이런 것 말고, 현실적인 거주 조건을 피부로 느꼈다.

나는 서울에서 10년 동안 자취를 했다. 고시원, 원룸 월세에서 투룸 빌라 전세까지 살다가 지금은 25평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다. 도시에서 혼자 사는 1인 가구에서 2인 가구가 된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다. 두 다리를 저벅저벅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고, 더 좋은 가구와 가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밥을 같이 먹을 사람도 생겼다. 처음엔 집안일의 물리적인 양이 두배가 된 느낌이었다. 식기도 두배, 빨래도 두배, 집도 넓어졌으니. 그런데 살다 보니 의외로 내가 하는 시간 자체는 혼자 살 때보다 줄었다. 나 대신해줄 사람이 있으니까..?

집밥 2인분을 하고, 반려식물도 키우고, 보일러에 문제가 생기면 고쳐줄 사람도 있다.. 공돌이 남편은 쓰임새가 많다..

또한 2인 가구가 되면 소득은 늘어나고, 비용은 줄어든다. 10년 간 내가 쓴 전월세 비용이 아깝다 아까워. 재테크의 속도가 달라졌고 공동의 목표로 대화할 수 있는 재테크 메이트가 생긴 점은 재밌다.


또 하나 큰 변화는 김포에 가까운 인천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다시 서울로 가긴 하겠지만 남편 회사가 인천공항에 있고, 그는 회사 생활이 주는 소셜 라이프가 너무 좋기 때문에 평생 다닐 거란다. 무튼 그래서 앞으로도 서울 서부 쪽에 살아야 할 것 같다. 이마저도 사뭇 신기하다. 평생 인천시민이 될 것이라 상상도 못 했고 강남과 가까운 쪽에 살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늘어난 출퇴근 시간이 다 좋다곤 할 순 없지만, 덕분에 유튜브나 책 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었다. 원래는 회사에서 그냥 일했을 시간인데 오히려 개인 시간이 늘었다.

덕분에 운전도 익숙해졌다. 면허를 엄청 어렵게 따서(ㅋㅋㅋ) 처음에 겁이 많았는데 일단 올해는 주말에 회사 가는 정도는 익숙해져 보자는 소소한 목표는 이룬 것 같다. 평일은 아직.. 마음의 벽이 높다..


2021년은 양적 성장은 여전히 더뎠지만 앞을 향해 나아갔다.

개인적인 회고에서 회사 이야기가 완전히 빠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작년과 비교하면 코로나 환경이었던 것은 비슷하고, 이 어려운 환경에 회사가 또 2 자릿수 성장을 했다.

2020년은 파도를 직접 맞으면서 땜빵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다. 내가 압도당해 있었고 당황한 상태였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파도를 견딜 수 있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이 회사 내부에서도 갈렸던 것 같다.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이 견뎌준 분들에게는 한없이 고마웠고, 그들도 많이 성장한 것 같다. 그리고 결국은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은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2021년이 시작될 때 했던 생각이 있다. '작년처럼 지내면 안 된다.'

그래서 2021년은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실행을 많이 했다. 어려운 외부 환경에서 리더가 직접 나서서 헤쳐나가는 것과, 너무 많은 실무를 하면서 시스템 빌딩을 못 하는 것과 그 중간에서 아슬아슬하게 정도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나도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2021년에 준비한 것들이 모두 출시되거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는 않은 상태라서 2022년 1분기까지 열심히 달려야 할 것 같다. 아쉬운 점을 적자면 끝도 없고 또 회사 이야기는 잔뜩 쓸 것 같으니 이 내용은 여기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2021년에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들


도서: 크래프톤 웨이(배틀그라운드를 만든 게임 회사 크래프톤),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캘리최)

두 책 모두 창업가의 책이고, 단순히 경영서적이라고 모두 영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 실패담의 비중이 높고, 전체적으로는 비전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 사실 켈리최 회장님의 생각은 책보다는 유튜브에서 더 많이 접한 것 같기도 하다.

비전의 중요성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 두 책 덕에 올해는 조직관리에 대한 나의 생각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 것 같다. 직접적으로는 채용 기준이 또 한차례 많이 바뀌었고, 더 일상적으로 비전과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크래프톤웨이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

비전 수립과 제시의 중요성

지식 근로자의 개념과 우수한 인재의 기준, 역량보다 태도가 우선한다.

작은 성공과 큰 실패 이후 경영진과 회사의 노력. 처절한 자금조달과 개발 이야기.

참패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문화

냉정한 성과주의, 퀄리티에 타협하지 않는 태도

이사회 의장과 CEO 간의 R&R 밸런스

인재 파트는 너무 좋아서 사업가가 아닌 사람이라도 읽어보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경영진의 회의록과 메일 내용을 가감없이 공유한 형식도 파격적이고 흥미로웠다.


재테크 공부: 성취감을 주는 또 다른 취미가 생겼다.

그간 회사가 최고에 투자라 생각하면서 따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대에는 사치하지 않으면서도 경험과 배움을 쌓는 데에 집중했다면, 30대에는 자산 자체를 불리는 재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과정에서의 배움도 있었는데, 지식의 씨실과 날실이 엮여서 통찰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또한 부자(아주 성공한 투자자)들의 마인드를 접하면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방정식은 투자자든 사업가든 결국은 관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존경하고 존중해주는 내 주변의 사람들. 역시 사람.

어려운 일도 참 많은 시기였다. 무조건적인 지지가 꼭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시기 질투하지 않고,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수많은 분들께 여전히 감사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 팀원들, 내가 성장시키고 나를 성장시키는 임직원들, 오랜 투자자분들, 사업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지인분들, 오랜 시간 함께 한 친구들.. 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2021년에 아쉬운 것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남는다. 나는 러닝커브가 빠르고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것이 장점이라 생각한다. 그러려면 배울 수 있는 환경에 나를 집어넣고 인풋을 미친 듯이 박아야 아웃풋이 나온다. 그런데 2020년에는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져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결과가 있는 것이지만 너무 박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2021년에는 밖으로 나오려 했고, 실무 강의나 공부도 하긴 했지만 지나고 보니 충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결혼 준비에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기에 내년에는 좀 더 많은 분들을 만나서 배워야겠다.


그 외에 다른 아쉬운 점들..

결혼식이 거리두기 4단계와 딱 겹쳐서 많은 분들을 초대하지 못했던 것

본식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거리두기 단계 영향도 있어서 풋살을 거의 못 했던 것 (소중해..)

신혼여행을 못 간 것

결국 다 코로나 때문이잖아? (할말하않)


1월 1일이던 어제 찰리와 결산 회의를 3시간이나 했다. 우리가 잘한 것들, 못 했던 것들을 충분히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2022년에는 이러이러한 것들을 꼭 해내자며, 올해도 수고했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이 2011년 12월이었으니 이제 우리 인연도 10년이 된 것이다. 찰리 왈, "나의 10년보다 너의 10년의 변화가 더 큰 것 같다. 동해 많이 성장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고 공감했다. 누구나 20대는 격변의 시기가 아니겠는가?

앞으로 맞이할 10년에 또 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연차가 7년쯤 되면 매너리즘과 관성대로 움직이고 호기심 자체가 줄어든다고 한다. 나는 그렇진 않은 것 같고.. 많은 성장통을 겪은 만큼 또 더 나은 미래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오늘은 경건한 마음으로 집 청소를 하며 남편과 먹을 저녁 메뉴 고민을 해보아야겠다. 2021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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