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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토끼 Apr 26. 2024

희생이 아닌 헌신하는 부모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끔씩 뒤돌아보면, 꼭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던 한국 사회의 주요한 가치인 무덤 가기 전까지는 '부지런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진실해야 한다' 와 같은 부모님 잔소리가 4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고, 온 몸으로 이 말의 참뜻을 깨닫고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정성’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몇 년 전에 흥행했던 <역린>이라는 영화에서도 나왔듯

'정성'이란 결국 상대방을 향한 나의 반듯하고 귀한 마음과 에너지이며 그 진실된 마음의 정도에 따라 내가 행하고 있는 일의 모든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고수 맘들의 일상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그녀들의 가족을 향한 매일의 정성을 자주 엿보게 된다. 나의 경우 친정 엄마가 징애인 아빠의 약국일을 손빌이 되어서 도와야 하는 워킹맘이셔서 자라면서도 살림에 대해 세세히 배우지 못했고, 나 또한 얌전하게 살림하는 주부 스타일은 아니었다.  20대 중반 어린 나이에 우리 과 최초로 결혼을 하고, 본의 아니게 전업 주부로 겨우 살림만 꾸려나가면서 남들이 취집이라고 비아냥거리며 맞벌이보다는 훨씬 육체적,심리적으로 편하다고 하는 전업주부의 역할이 때때로 힘들게 느껴졌고,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왠지 모를 우울감이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 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더 이상 내 서툰 살림솜씨가 가족을 위한 희생이 아닌 헌신하겠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보다 깊은 배려의 마음으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주부의 일상을 조금씩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대부분 주부들의 소비 패턴을 보면 가끔 입는 정장이나 가방 등에는 돈을 아끼지않고 적극 투자하면서도 되레 일상에서 사용 빈도가 잦은 집 안의 각종 패브릭이나 그릇을 사는데는 알뜰이라는 명목 하에 돈을 심하게 아끼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런 편이었다.  예전에 책 잘 읽는 아이가 영어도 잘한다는 베스터셀러를 낸 선배 육아맘이 일상 생활을 형편되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격조 있게 품위 있게 살면서도 모조품이나 소위 짝퉁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상당히 엄격했던 것이다. 그 때는 남들 다 한 두 번씩 써보는 짝퉁에 대해 이 분이 너무 엄격한 기준을 가지는 게 다소 유별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이 또한 이해가 되었다. 짝퉁 식기, 가방, 비디오 테이프의 경우 타인은 몰라도 구매자인 나는 정확이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진품처럼 조심히 다루기 보다는 다소  함부로 다루게 되고 그 에너지를 아이도 자연스레 옆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데이비스 홉킨스 박사가 의식혁명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이 진실은 거짓이나 가짜에 비해 힘이 세고 에너지 파장도 높다는 것이었다. 짝퉁의 경우 설혹 주변에서 진품인지 가짜인지 알아채지 못한다 해도 이미 내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짝퉁을 대할 때마다 내 자신의 행동이 가벼워지고 에너지가 쉽게 달라지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과 남편도 가정의 중심인 엄마가 쓰는 사소한 언어에서, 이런 작은 몸짓과 변화된 행동에서, 일상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에서 본인들도 알게 모르게 물들어가며 배우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한 가정의 기둥이 과거에는 아빠였다면 이젠 엄마가 되어야 한다.


막상 식기류를 예쁘고 고급스런 나만의 스타일로 바꾸고 나니 설거지 하더라도 막연히 쌓아놓기 보다는

행여 이가 나갈까 깨질까  아기 다루듯 손길이 조심스러워지고 자주 미루던 설거지도 바로 바로 즐겁게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착하고 순종적인 딸로 친정엄마 취향의 이불이 아닌 나만의 개성이 담긴 예쁜 침구를 마련하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로 살림의 환경을 조금씩 바꿔가다 보니 단순히 노동으로만 여겨졌던 집다한 집안일들이 좀 더 즐거워졌고, 특히 매일매일의 식사 준비가 조금씩 더 즐거워졌다.


하루 종일 애쓰는 가족을 위해 제철 식재료로 정성을 들인 요리도 중요하지만 예쁜 그릇과 플레이팅을 더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부의 단순 반복 가사노동도 어느새 즐거운 놀이가 된다는 걸 최근 몇 년 사이에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주부로서의 이런 나의 배려와 정성은 굳이 말로 표현 하지 않아도 가족들을 조금씩 감동하게 만든다. 집에서 라면 한 그릇을 끓여 먹더라도, 그냥 냄비 통째로 대충 먹는게 아니라 고급 까페 같은

분식집에서 나오는 것처럼 제대로 차려 먹으라는 말이 이런 이유에서 연유 된 듯하다.


어떤 힘든 사항에서도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 정성껏 대하는 사람은 제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나락으로 결코 떨어지거나 망가지는 법이 없다. 어떤 일을 하든 희생과 헌신의 에너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이 우주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희생과 헌신의 차이는 과연 뭘까? 마더 테레사나 간디 같은 위인들에게 우리는 '희생'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헌신을 했다고 표현한다.

내 아이들에게 인위적으로 늘 연출된 의도적인 앞모습이 아닌 (짜증나서 굳은 얼굴에도 다소 어색한 억지미소, 눈빛은 노려보면서 말투만 친절한 영혼없는  등)자연스런 뒷모습이 항상 노출되는 부모들의 경우도

희생이 아닌 헌신의 에너지를 사용하며 일상을 살아간다면 우리 아이들도 자연스레 물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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