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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ung Mun Oct 24. 2019

의사결정과 가치 비교의 사이에서

때론 생각해보면 보편적 가치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최근 스마트폰을 바꾸었다. 그리고 조금은 오래된 스마트폰을 처분하기 위하여 그 스마트폰의 악세사리를 모두 덤으로 구매자에게 함께 주기로 하였다. 그간 알리바바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꽤 멋지거나 귀여운 휴대폰 케이스를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심지어 그것들이 무료배송인 경우도 많아서 나는 그 케이스들과 함께 스마트폰을 성공적으로 판매하였다. 그런데 어젯밤 잠에 들려고 침대에 부스럭 거리며 눕던 순간 이불 속에서 그 구형 스마트폰의 케이스가 하나 튀어 나왔다. "아뿔싸! 케이스가 많아서 이게 있는걸 몰랐네!" 하지만 이미 그 스마트폰은 밝은 표정으로 입양해가신 새 주인을 만났고 그렇다고 당근마켓으로 구매한 그 구매자에게 구태여 다시 톡을 보내서 케이스를 하나 더 주겠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원래 줘야하는 거래 대상 품목에 있지도 않았으니...)



결국 내 손에는 나에게는 쓸모가 없는 스마트폰 케이스가 하나 남았다. 귀여운 악동 스티치가 그려진~ 그리고 고민은 시작되었다. 이 폰케이스를 어떻게 할 것인지. 처음 내 생각은 다시 당근 마켓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도 겨우 천원 혹은 천오백원을 지불하고 구매한 이 케이스를 다시 누군가에게 천원 혹은 그 이하의 가격이라고 해도 판매한다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눔을 하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그 방법은 폰케이스를 받아가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좋은 일이었지만 나를 기준으로 보자면 단 1원도 벌 수 없는 행동에 당근마켓에 글을 올리고 약속을 잡고 하는 모든 행동이 ROI가 나오지 않는 행동들이었다. 0원의 기대수익을 위해서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었다.


나눔을 포기하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은 그 폰케이스를 버린다였지만 멀쩡한 케이스를 버리는 행동인 지구에게 미안한 행동이었다. 난 또 지구에게 미안한 행동은 잘하지 않는 편이다. 집에서도 가족들이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은 바로바로 플리마켓으로 내다팔고 남들이 잘쓰지 않는 제품들도 괜찮은 물건들을 플리마켓에서 잘 사오곤 한다. 책의 경우도 알라딘을 통해서 사는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이런 행동들 역시 ROI가 나오는가를 생각한다면 금전적인 관점에서는 택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플리마켓에서 물건을 팔고 플리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흥정/거래/사회활동의 범위가 포함되기 때문에 ROI 이외의 가치향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혼자 남는 폰케이스는 그런 행동과는 조금 거리가 먼 거래 행위로 생각외는 것이다.






참으로 이런 말같지도 않은 고민,

즉 그 까짓 케이스 버리던지 아니면 남 줘버리면 되는 간단한 결정 속에서 난 혼란에 빠졌다. 가치 비교의 관점이 단순히 돈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의미와 가치와 실익 사이에 혼재되어 있고 사실 이런 현상은 단지 휴대폰 케이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 모든 경험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을 맞이한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빌게이츠가 100달러를 떨어뜨리면 그것을 줍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사실 그 이야기를 처음들었을때 "빌게이츠는 길가다가 100달러 떨어뜨리면 안줍는데! 왜냐하면 어차피 스스로 집중하고 있는 생각을 계속 유지하는게 빌게이츠에게는 훨씬 도움이되니까!"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실제로 빌게이츠가 초당 100달러 이상의 이윤이 창출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100달러는 눈에 보이는돈이고 눈에 보이는 돈을 줍는 것은 그런 가치비교의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햄버거를 사고 이를 즐겨먹는 빌게이츠가 100달러를 줍는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물론 빌게이츠가 100달러를 줍지 않고 그 논리가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 또한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빌게이츠가 돈을 줍던 안 줍던 틀린 행동은 없는 것이다.


이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미디어에서는 연례행사로 스포츠 스타들 중에 먹튀 사례들을 이야기 한다. 그 소재는 항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우리가 만지지 못한 돈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특히 야구 또한 투수의 경우에는 1승당 비용 지불을 계산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연봉을 300억 받고 있는 선수가 시즌에 3승 밖에 못했다면 그의 1승당 지불 비용은 100억인 셈이다. 그럼 바로 사람들은 "와! 어떻게 1경기에 100억을 받어?"라며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그런 표현은 객관적인 가치비교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 선수는 그 1승을 위하 많은 경기를 뛰고 또한 경기 이전에 훈련을 하고 또한 훈련장이 아닌 곳에서 관리를 하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처럼 가치판단, 사고의 흐름,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은 때론 아주 작은 언어의 장치들에 의해서 왜곡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런 왜곡이라는 표현 역시 상대적일뿐이다. 세상 모든 것이 상대적이듯이 말이다.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결론이 세상 모든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내용으로 도달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보편성을 추구한다. 나와 남이 모두 다르다는 이야기로 세상을 살기에는 그런 범위 밖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게 이렇고 저게 저런데 제 말이 맞지 않아요?"라고 한다. 본인의 말을 다른 사람들은 이게 이렇지 않고 저럴 수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바로 그런 사람들 말이다.


잘 모르겠지만 당연히 나 역시 그런 상대적인 옳고 그름에 있어서 탄력적인 사람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아니!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세상은 복잡하고 사람들의 생각 역시 복잡하다.


그리고 집에는 오갈데 없는 스마트폰 케이스 뿐 아니라 잘못 배송이 와서 오갈데 없는 스마트워치의 밴드가 있다. ^^ 이제 고민은 두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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