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결합되어 탄생한 해외파 길거리 음식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떡볶이, 순대, 호떡, 붕어빵 등이 전통 길거리 푸드이고 와플, 핫도그, 샌드위치 등이 해외파 길거리 음식이라고 하겠다.
프랑스에서 아주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가 크레프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가 있지만 파리의 경우 길거리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크레프가 마치 우리나라 붕어빵 팔 듯 팔린다. 길거리 음식이 그다지 많지 않은 프랑스 지방의 작은 도시 곳곳에서도 크레프를 팔고 있다. 아주 얇게 구운 팬케이크의 일종인 크레프는 대부분 밀가루로 만든다.
크레프는 흔히 백밀가루로 반죽해 살짝 달게 만든 ‘크레프 쉬크레(crêpes sucrées)’와 메밀가루를 재료로 하여 달지 않고 고소한 맛을 지니는 ‘크레프 살레(salées)’로 나눈다. 토마토, 치즈, 야채, 살라미, 감자나 고기 등을 넣어 든든한 한 끼 식사로 만든 것이 있는가 하면 초콜릿잼인 누뗄라(Nuttella) 쨈과 바나나, 딸기 등 과일과 생크림을 얹어 먹는 디저트용도 있다.
크레프는 프랑스 북서부의 브르타뉴 지역에서 유래하였다. 브르타뉴 지역은 척박한 땅으로 인해 빵을 구울 만큼 밀이 충분히 생산되지 못하는 까닭에 얇은 크레프에 다른 여러 가지를 올려먹는 것이 탄생하였다. 지금은 프랑스 및 다른 나라에서도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서쪽 브르타뉴에서는 백밀가루로 만든 크레프를 즐겨 먹고 메밀을 넣어 반죽하여 갈색이 나는 크레프는 갈레뜨라고 해서 브르타뉴 동쪽 지방에서 즐겨먹는다. 일반적으로 크레프 드 사라생(crepes de sarrasin: 메밀이라는 뜻)은 좀 더 짭짤하여 내용물을 좀 더 무거운 재료들을 넣어 식사용으로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주요리로 먹지는 않지만 디저트용으로 생크림, 과일 등을 얹어 달콤한 크레프를 파는 것은 간혹 볼 수 있다.
디종(Dijon)에서 머무를 때 주말마다 서는 시장에서 몇 번 마주치게 되어 얘기를 나누게 된 프랑스인이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한 음식점도 크레프 전문식당이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희멀건 크레프를 보아왔던 나는 크레프가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어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디종의 맛집을 검색하면 어김없이 ‘La Chouette’라는 음식점이 많은 여행객들의 추천리스트에 올라있는데 이 집의 메인 요리가 크레프였다. 또한 디종의 현지인들이 강력히 추천한 것도 바로 이 곳의 크레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방문했던 나는 놀라고 말았다. 여행객들의 칭찬이 무색하지 않게 친절했던 주인의 서비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염소치즈와 진한 토마토 소스, 호두가 가득 올려진 크레프는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그런데 파리로 올라와보니 길거리 곳곳에서 피자 못지 않게 한 끼 식사로 충분할 만큼의 내용물이 가득 든 크레프부터 달콤한 디저트용 크레페까지 정말 그 다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파리의 학교 근처에 가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해 보이는 두툼한 크레페를 사 먹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거리에서 긴 줄을 서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또한‘먹어보지 않은 이는 있어도 한 번만 먹고 마는 사람은 없다’라고까지 얘기하는 중독성 강한 초콜릿 크림 스프레드인 누텔라(Nutella)를 바른 디저트용 크레프도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완소 먹거리 중 하나이다. 크레프 사이사이에 크림을 넣고 수십 층으로 쌓아서 케이크로 만든 밀크레프(mille crêpe)도 인기 있는 케이크 중 하나인데 이미 이 케이크는 90년대 초반에 한국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꾸준히 케이크 전문점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테디셀링 아이템이기도 하다.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쉬운 요리이기도 하지만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무한한 변형이 가능한 크레프. 이젠 프랑스 여행에서 먹었던 가장 맛있었던 추억의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요즘은 서울 명동 길거리 곳곳에서도 크레페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맛에서는 현격한 차이가 나겠지만...
오늘 저녁엔 토마토 소스에 치즈를 얹은 크레프를 만들어 와인 한 잔과 함께 지난 여행의 맛있었던 추억을 되새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