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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나 Oct 05. 2020

유튜버가 되었다, 남편과 함께.

Intro

음,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 돌이켜보니 어느 날 갑자기 유튜버가 되자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과 나, 우리 두 사람이 나눈 사소한 이야기들과 고민들이 하나둘 쌓여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결혼하고 약 6개월이 지난 2020년 새해, 남편과 나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둘 다 회사를 다니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연한 걱정이 들었다. 누군가 회사 명함을 떼고 나를 봤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게 된다고 했던가. 우리는 회사 명함이 없이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다만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잘 몰라서 헤매고 있었다.




남편은 아이슬란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런 남편 덕분에 신혼여행을 아이슬란드로 갈까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아무래도 신혼여행은 휴식이란 생각에 몰디브에 갔고, 작년 겨울 여행을 갈 때도 11월의 아이슬란드는 너무 춥고 낮이 짧다는 내 말에 뉴질랜드에 갔었다. 그리고 다가온 새해, 남편은 본인이 더 나이 들기 전에 꼭 아이슬란드를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데 올여름은 아이슬란드로 휴가를 가자. 곧바로 우리는 7월 아이슬란드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둘 다 답답한 고민은 잠시 접고 신나게 여행 계획에 몰두했다.


남편은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담기에 핸드폰 카메라는 너무 부족한 것 같다는 얘기를 꺼냈다. 크고 뚱뚱하고 무거운 진짜 카메라를 사고 싶다고.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사진과 영상으로 제대로 담아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사면 그만인 것을. 왜 그런 카메라가 필요한지, 여행을 위해 사기에는 큰돈이 아닌지, 무겁고 뚱뚱해서 막상 여행 가서 들고 다니기 귀찮지는 않을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남편에게 꼭 카메라를 사야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친한 친구가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영상은 회사나 조직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살아남을 힘을 길러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대부분 이런 영상이나 글의 결론은 별로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 나도 알아. 근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하는 삐딱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가 그렇게 궁금해하던 '어떻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실력을 쌓기 위해 무언가를 배우고, 배운 것을 활용해서 실천하는 것의 반복. 그러니까 맨날 고민하고 공부만 하기보다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결과물을 만들고, 시도해 보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실력이 자연스럽게 쌓인다는 것이다.


사실 너무 당연한 소리다. 레시피만 보는 것보다는 요리를 한 번이라도 해보는 게 더 좋고, 책으로 와인 산지와 종류에 대해 공부하기보다는 실제 와인을 마셔보는 것이 그 맛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운동도 그렇고. 그런데 이 당연한 이야기가 그 날따라 강력하게 내 마음에 콕 박혔다.




집에 가는 길에 남편에게 이 영상을 보여줬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우리 둘이었기에 남편 역시 이 영상을 보고 잠시 말이 없어졌다. 아마도 나와 비슷하게 약간의 찔림, 약간의 반성 같은 것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우리 둘 다 나름대로 다양한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면서 관심이 있던 것들을 공부를 했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나는 요리를 잘 하고 싶어서 다양한 레시피를 공부했지만, 매번 비슷한 요리만 했다. 인테리어도 예쁘게 하고 싶어서 다양한 사진을 봤지만, 막상 집에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것은 망설이고 있었다. 문득 어떤 책에서 읽었던 글귀가 생각났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시도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막연하지만 일단 시도해보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 함께 해보자.


남편이 얘기하던 카메라를 사기로 했다. 그 카메라로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관심갖고 공부해온 것들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아,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우리만의 스토리와 실력이 쌓일 거라고 믿으면서. 그렇게 며칠 뒤 우리 집에는 카메라가 배송되었고, 우리는 유튜버가 되기로 했다.


아, 그나저나 7월로 계획하던 아이슬란드 여행은 결국 코로나 때문에 떠나지 못했다. 인생이란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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