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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나 Oct 12. 2020

#1 채널명부터 쉽지 않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일, 쉽지 않지만 설레는 일.

유튜버가 되기로 했으니 이제 채널명은 무엇으로 할지, 그리고 어떤 콘텐츠를 만들지 정할 차례였다. 하지만 이건 마치 서로 약속은 했지만 알고 보니 약속 장소를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남편과 나는 함께 유튜버가 되기로는 했지만, 막상 그 안에 담아낼 내용은 상당히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 전에는 생전 요리한 적이 없던 나는 지금은 밥 먹고 식사를 준비하는 재미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냥 요리를 하는 것 자체도 좋지만, 남편과 '함께' 요리하고, 정성을 쏟아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그 시간이 나에게 커다란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재료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고, 새로운 요리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유튜브를 한다면 자연스럽게 '요리'와 관련된 내용일 거라 상상했다. 초보 신혼부부의 요리 채널, 재료에 대한 이야기 등등 담아낼 내용이 끝이 없어 보였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어떤 콘텐츠를 만들면 좋을지 처음으로 남편과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남편의 생각을 물었다. 남편은 설레는 목소리로 여행과 풍경을 멋있게 담아내는 영상미 가득한 콘텐츠를 떠올렸다고 했다. 아, 큰일 났다. 내가 생각하던 요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이런 것을 두고 동상이몽이라고 하는 건가. 게다가 나의 계획을 들은 남편은 '촬영과 편집'만 하는 역할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며 조심스럽게 반대를 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나만 생각했던 모습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요리'로 가득 차있었고, 요리가 아닌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생각하니 막막했다. 게다가 한번 맞다고 생각한 것은 쉽게 바꾸기가 어려웠다.


한편 남편의 아이디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코로나 상황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이탈리아에서는 봉쇄령이 내려졌고, 호주에서는 출입국 제한이 걸렸다. 결혼식을 준비하던 친구들은 결혼을 미루거나, 하객을 최소화해서 결혼식을 진행했고, 장례식에 조문도 함부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행은커녕 집 밖에 나가기도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본업이 있는 회사원 두 사람이 매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고 편집을 하는 건 사실상 무리가 있었다. 유튜버는 꾸준함이 생명인데 말이다.


다음 날 회사를 가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하면서도 우리는 평소와 달리 새벽 늦은 시간까지 침대에 누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다행인 점은 나는 남편과 나누는 이런 대화가 너무 재밌다. 이렇게 대화를 하고, 솔직하게 생각을 나누다 보면 결국 서로의 의견을 보완한 그럴싸한 결론에 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조금씩 서로의 의견을 맞춰 나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일단 중요한 큰 방향을 정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로 한 것이었다.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는 채널보다는 우리 두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채널을 만들어보자고. 이렇게 정하고 보니, 결국 우리의 이야기 속에 내가 생각했던 요리도, 남편이 생각했던 여행도 다 담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나의 이야기도, 남편의 이야기도 모두 우리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둘의 이야기, 소소한둘.




유튜버가 되기로 한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두 사람이 하나의 채널을 운영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도 수많은 의견 차이가 있을 테고, 그때마다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피곤하고 지치기도 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내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이뤄간다는 것은 정말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이 도전의 끝에 어떤 결과가 있던지, 과정 자체로 너무 좋은 추억이 될 것이고, 아마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성장해있을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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